강태식 소설 <9화>
“안녕, 제니?”
제니에게 가서 인사를 했다.
“네드구나. 오래간만이네.”
그리고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무엇을 먼저 물어봐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어두운 공장 안으로 바람이 지나갔다. 무섭고 슬프고 황량한 소리만이 제니와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나, 예전처럼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계속 그렇게 생각해 왔다.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제니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잖니, 네드.”
“새로 온 아이가 나보다 일을 더 잘해?”
“그거 하고는 상관없는 문제야.”
나는 제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고 묻는 내 목소리가 공장 벽에 부딪혀 메아리를 만들었다.
“모르겠니, 네드? 이제 넌 필요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니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고장 난 부품은 필요 없어. 넌 고장 났고, 그러니까 넌 필요가 없는 거야.”
천장 높이 쌓인 어둠의 무게가 내 어깨를 찍어 누르는 것 같았다. 공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유령처럼 지나가는 바람소리뿐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계속 제니의 말이 맴돌았다.
“이제 넌 필요 없어.”
그렇게 네드 러드는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괴물, 제니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일기의 마지막 줄을 읽고 난 토마스 하버 박사는 노트를 덮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는 제니를 증오한다.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내용이지만 네드 러드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홍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뒤, 일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후의 일들을 재구성해보았다. 제니를 증오하는 네드 러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핏발이 선 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그것은 단순히 네드 러드 개인이 느끼는 분노가 아니었다. 괴물에게 잡아먹힌 사람들,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분노였다.
어느새 토마스 하버 박사는 손에 망치를 들고 기계 앞에 선 네드 러드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드 러드는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의 망설임이 지나간 뒤, 네드 러드는 들고 있던 망치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지난 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했던 기계였다. 어디를 내리치면 부서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깨를 크게 휘둘렀다. 손에 든 망치가 무서운 속도로 기계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쾅! 최초의 한 방은 어디에 들어갔을까? 기계를 제어하는 조종간? 아니면 날카로운 이빨을 맞문 채 소름 끼치는 소리로 으르렁거리던 톱니바퀴? 어디가 더 치명적인 곳인지 토마스 하버 박사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네드 러드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고, 그 망치로 내리칠 때마다 기계는 조금씩 부서졌다. 쾅! 쾅! 쾅! 미친 듯이 기계를 내리치는 네드 러드의 모습을 떠올리며 토마스 하버 박사는 생각했다. 과연 네드 러드는 알고 있었을까,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토마스 하버 박사는 다시 한 번 다니엘 한슨 박사의 말을 떠올렸다.
“빌어먹을! 체스 실력이 많이 늘었군. 하지만 발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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