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소설 <10화>
1811년에서 1817년 사이,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영국에서는 네드 러드의 이름을 딴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일자리를 잃고 분노한 노동자들이 망치를 들고 공장을 습격한 것이다. 복면을 쓴 이들은 자신을 소외시킨 기계를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공장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공장주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비록 정부에서 투입한 수만 명의 군 병력에 의해 스물세 명이 교수형을 당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투옥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역사학자인 토마스 하버 박사에게 러다이트 운동은 강자의 발전에 저항하는 약자들의 몸부림이었다. 어쩌면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과감하게 거부한 인간의 마지막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네드 러드는 자신의 행위 속에 담긴 그런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토마스 하버 박사가 차갑게 식은 마지막 홍차 한 모금으로 마른 목을 축일 때쯤, 파란 새벽빛이 밀려와 연구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네드 러드의 일기를 다시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구름을 배경으로 우유처럼 뿌연 안개가 런던이라는 도시를 우울하게 뒤덮고 있었다.
“찰스 군, 커피 한잔 부탁하네.”
그날 아침 토마스 하버 박사는 찰스 군이 타준 커피를 마시며 에드먼드 크럼프턴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곧 강의가 있기 때문에 통화를 길게 할 수 없다며 에드먼드는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우선 네드 러드의 일기라는 흥미로운 자료를 열람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자네 때문에 어제 한잠도 못 잤다네.”
“아직 그만한 열정이 있다는 건 몸이 그만큼 건강하시다는 증거겠죠. 안심입니다.”
간단한 안부조차 생략한 채 토마스 하버 박사는 바로 질문을 던졌다. 밤새도록 토마스 하버 박사의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이었다.
“자네가 보내준 네드 러드의 일기 말인데……. 진짜 네드 러드의 일기가 맞나?”
하지만 에드먼드 크럼프턴 교수가 들려준 대답은 토마스 하버 박사에게 실망만 안겨주었다.
“저도 우연치 않게 손에 넣은 거라 아직은 모릅니다.”
자료의 진위에 대한 토마스 하버 박사의 생각은 회의적이었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회의이기도 했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네드 러드의 일기를 입수하게 된 에드먼드 교수의 경위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의 강의를 떠올렸다.
“제군들, 역사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된 문자의 총체입니다. 즉 역사란 문자요, 그 문자가 이루고 있는 사건인 것입니다. 누군가 허위의 사건을 문자로 기록했다고 칩시다. 그럼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역사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화두는 문자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 제군들,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책을 펴십시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수업 중에는 책에 적혀 있는 문자를 믿으십시오. 그래야 진도를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생각에 감겨 있던 토마스 하버 박사는 자신을 부르는 에드먼드 교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토마스 박사님, 듣고 계세요?”
“미안하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었어.”
“여전하시군요. 또 한 번 안심입니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에드먼드 교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한때 자네는 네드 러드에게 푹 빠져 있었지. 혹시 자네가 쓴 소설은 아닌가?”
“에이, 설마요!”
에드먼드 교수와는 체스 약속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원본은 그때 만나서 확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토마스 하버 박사에게 원본은 중요하지 않았다. 원본의 진위에도 관심이 없었다. 토마스 하버 박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강의 내용을 떠올렸다. 역사는 믿는 자의 것이었다.
“수업 시간 오 분 전입니다, 교수님.”
토마스 하버 박사는 교재를 들고 연구실을 나섰다. 교정은 여전히 짙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그 안개 속으로 이백 년 전 런던의 공장 노동자 네드 러드라는 소년이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산업혁명이라는 역사의 반대 방향으로.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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