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
곽병찬 논설위원
|
고양시 선유동 산기슭 어디쯤이지만, 엉터‘里’인지 신나‘里’인지는 일정하지 않다. 혹자는 땅보面 심으里라고도 한다. 다만 주말마다 여남은 중년들이 밭에 코를 박다시피 열심히 파고 심고 덮고 뿌리고 잡고 했다지만, 작물의 개갈 나지 않는 행색으로 보면 엉터리일 터이고, 또 그걸 농사라고 짓고는 푼수 없이 헤벌쭉 웃는 걸 보면 신나리이고, 그래도 코 박는 걸 보면 심으리다.
싸리나무 리장님 이하 맹추네 가족들이 그곳에 코를 박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도시농부학교 졸업 후 산너머 우보농장에서 이태 동안 보림을 한 동기생과 후배가 모였다. 올봄에야, 묵정밭 돌부리 캐고, 복토하고, 뒤집고, 밑거름하느라 넉넉한 소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싸리나무 리장님 이하 맹추네 가족들이 그곳에 코를 박기 시작한 건 3월부터였다. 도시농부학교 졸업 후 산너머 우보농장에서 이태 동안 보림을 한 동기생과 후배가 모였다. 올봄에야, 묵정밭 돌부리 캐고, 복토하고, 뒤집고, 밑거름하느라 넉넉한 소출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을 김장만은 자급하리라는 기대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들 열심히 부산을 떨었지만, 11월 다 가도록 무 배추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디 가서 텃밭 하네 소리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남들은 요강만한 배추도 뽑지 않는다는데, 속이 든 배추는 찾아보기 힘들고, 무는 알타리만하고, 김장 속으로 쓸 갓은 아예 땅에 깔려 있다.
지난봄 작물이 자랄까 걱정하며 밭을 만들 때를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랬지만, 허전한 속이 어찌 드러나지 않을까. 11월이 지났지만, 누구도 거둘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뽑아서 가져가 본들 누가 한 해의 수고를 치하할 것인가. 일거리만 가져왔느니 놀다 왔느니, 타박만 걱정할 뿐이었다.
남들은 미리 익혀 먹을 김치 식탁에 올릴 때쯤에야 비로소 맹추네는 부산했다. 배추 무 손질하랴, 쪽파 대파 갓 다듬으랴, 다듬은 양념류 무채 고춧가루 젓갈 등속 버무려 김치 속 만들랴. 추수할 생각도 않던 것들이 김장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격식을 갖췄을 리 없다. 절이는 과정 생략하고, 적당한 크기로 썬 배추와 무를 김치 속과 함께 버무리는 것이었다. 그래도 맹추네 탄생 이후 첫 김장이었으니, 흐뭇한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하긴 100일 가까이 자란 채소들을 버려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색이 ‘나도 농부’를 자처한 이들인데, 어찌 애써 자란 먹거리를 버릴 수 있을까. 집안의 타박도 무섭지만 하늘의 진노를 감당 못할 것 같아 일단 추수하기로 한 게 이달 초였다. 내심 ‘닭이라도 줘뿔자’는 요량이었지만, 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김장을 제안한 건 로즈님이었다. 집에선 양쪽 어머니의 시다에 불과했지만, 맹추네에선 막강 고수. 여름 김치 하듯 하자는 것이었다. 일단 말이 나오자, 김장이 주는 무게에 눌려 기가 죽었던 이들이 다들 반색했다. 콩밭님이 생새우 가져오고, 고고님이 3년 묵었다는 소금을, 싸리나무님이 고춧가루, 까만콩님이 마늘 생강 등속을 가져왔다. 고고가 산너머 우보농장에서 기른 배추까지 가져오니, 규모도 제법 됐다.
하지만 김장 덕 보자 기대했던 이는 없을 것이다. 주말이면 습관적으로 버스 지하철 그리고 마을버스까지 갈아타고 찾아오는, 오갈 데 없는 영혼이고 보면 하루 더 모여서 놀자는 심산이 컸을 것이다. 그 속셈이야 당일 만물박사 맹갑님이 수육용 돼지고기 준비하고, 싸리나무님이 통영굴 두 박스나 가져온 것을 보면 명확하다. 엉터리면 어떠냐 신나면 될 일! 그러했으니 남정네들은 일찌감치 솥 구하고, 나무해오고, 불 피우랴 분주했다. 물론 젯밥에 눈이 어두워 구해왔다는 솥엔 뚜껑이 없고, 해온 나무들은 썩었거나 물 젖은 물박달 따위였으니, 배춧국이라도 끓일 수 있을까, 그 모진 연기에 119 아저씨들만 달려와 불조심을 당부하게 했다. 구들님이 혀를 차며, ‘화덕 높이를 낮추고, 뒤쪽은 트고, 마른 가지만 골라 쓰시고, 솥은 당신 집에서 가져다 쓰시고…’ 하시는 말씀을 따르니 그제야 솥 안에 김이 서리고, 물방울이 오른다.
구들님 부부는 맹추조합의 산파. 부군은 도시농부학교 교장이시니 맹추네 큰 스승이고, 땅도 그 덕택에 마련했다. 농사 공동체를 꿈꾸던 마음씨 좋은 한 독지가(한의원 원장)가 선유동에 묵정밭을 구입해 공동체 영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제공하도록 맡겼고, 그는 지금의 맹추들에게 농장을 맡긴 것이었다. 그러니 구들님 지청구는 한 귀로 흘려버릴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날 맹추네는 몹시 우울해야 마땅한 날이었다. 닭장 짓고 닭 15마리를 옮겨온 게 엊그제였다. 그런데 이사 첫날 닭장 안에서 일대 학살이 벌어졌던 것이다. 우보농장 시절부터 농막 한쪽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여주 바보숲농장 홍일선 시인이 방목해 기른 중닭을 분양받아, 1년 넘게 금지옥엽으로 기른 닭들이었다. 순번을 정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물과 모이를 주러 농장을 들러야 했다. 올봄 드디어 닭들이 알을 품기 시작해 병아리 10여 마리를 부화했을 때의 기분이란 늦둥이 봤을 때의 기쁨이 그럴까.
맹추네는 10월 말 밭농사가 얼추 마무리되면서 닭과의 이중살림을 끝내기로 했다. 콩밭이 닭장을 설계했다. 연극영화를 전공했다지만 무대 위보다는 무대 아래서 소품 제작에 열심이었다는 콩밭님. 공학도 산지기와 고고가 시공하고, 준 소목장 싸리나무가 감리를 맡았다. 그렇게 대한민국 최초의 원목 치킨텔이 탄생하자, 다들 닭들의 신세를 부러워하며 축복을 아끼지 않았다.
그랬던 것인데, 불과 하루 만에 여섯 마리는 닭장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됐고, 한 마리는 실종됐으며, 중상을 입은 한 마리는 하루 뒤 사망했다. 솔방울이 아이들에게 닭과 농장 자랑하려고 왔다가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치킨텔은 모든 닭의 무덤이 될 뻔했다. 달개비(닭 애비) 고고, 콩밭, 솔방울이 반쯤 정신이 나가 있어, 산지기와 싸리나무가 닭장 보수에 매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김장 팀이 배추를 버무리기 시작할 때쯤에야 배춧국은 끓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파 생강을 넣고 진간장으로 간을 한 맹갑 스타일의 수육은 여전히 불 위에서 낮잠 중이다. 불은 약하고 솥은 컸다. 굴은 아직 개봉도 못했으니 남정네들 마음은 급하다. 김장팀 로즈와 까만콩이 힘든지, 뒷짐지고 허리 펴는 일이 잦아졌다. 대형 대야에다 배추 무 김치 속을 한꺼번에 넣고 뒤섞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슬렁거리던 남정네 하나가 고무장갑을 대신 꼈다. “버무려야지 빨래 빨듯 하면 어째요.” 미란님의 핀잔이 떨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비빈다. 그의 심산이 두 여성에 대한 배려보다는 속히 한잔 마시기 위해 일정을 재촉하려는 것임을 알기에 미란님도 핀잔을 거둔다. 어이그 저 욕심 많은 미숙아….
드디어 배급. 아무래도 속도전엔 기술보다는 힘이다. 김치통이 줄지어 있다. 들이대는 통마다 가득가득 채운다. ‘언닌 혼자면서 통이 너무 큰 거 아니야’ 혹은 ‘통이 너무 작아요’ 따위의 핀잔과 격려가 오가는 중에 들이댄 통과 비닐봉투에 김치가 모두 찼다. 로즈 김치통은 농장 냉장고에 넣고 겨우내 먹기로 했다. 석박지 열심히 얻어먹던 남편이 불만스러운지 볼이 나왔다.
누군가는 모든 건 꿈에서 시작한다고 했지만, 농사는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거둔 것 먹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파종보다 갈무리가 기본’이라는 구들님의 핀잔을 다들 그렇게 새겨들었다. 상에 배춧국이 오르고, 이어 수육도 오르고, 제법 취흥이 오르자 굴도 올라왔다.
누군가는 모든 건 꿈에서 시작한다고 했지만, 농사는 먹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거둔 것 먹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파종보다 갈무리가 기본’이라는 구들님의 핀잔을 다들 그렇게 새겨들었다. 상에 배춧국이 오르고, 이어 수육도 오르고, 제법 취흥이 오르자 굴도 올라왔다. 총회가 예정됐지만, 배 든든하고 등 따신데 무슨 회읜가. 그저 구들님의 교훈 한마디만 새기면 될 일이었다. 씨 뿌리고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갈무리 시기 놓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 게으른 맹추조합의 갈무리는 그날로 끝나지 않았다. 늙은 호박 네댓 개와 비닐하우스에 쌓아둔 콩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호박 즙 내고, 콩 까는 건 다음주로 미뤘다. 도리깨질은커녕, 쪼그리고 앉아 콩 꼬투리 하나씩 잡고 씨름하는 꼴을 상상하니, 하품만 난다. 하지만 달리 엉터‘리’ 맹추조합인가. 그렇게 맹추네 한 해는 간다. 소출이 개갈나지 않는다 하여 아쉬워하는 이 없다. 상처에 새살 돋듯 거친 흙에서 온갖 씨앗이 싹을 틔운 것만도, 저마다 삶의 상처를 이겨내는 은총으로 여긴다. ‘안녕하신가’고 묻는 젊은이들의 물음이 가슴에 상처를 내며 지나가지만,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갈아엎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게 세상일.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