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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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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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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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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신경림의 ‘파장’)
흑백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현실의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안산역 지하도 건너 원곡본동에 발을 딛는 순간 시인의 장터는 기적처럼 현실이 된다. 영화 세트인가?
못난 사람들…. 노동으로 하루해가 짧아도 가난은 더 깊어가고, 아이들 월사금 제때 주지 못하고, 아픈 어머니 지켜만 봐야 하고, 아내 박하분 한 번 사주지 못하는 사람. 고향 떠나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열흘 한달 장터를 쫓아다니던 장돌뱅이, 방물장수, 옹기장이. 지금은 그들보다 아득하게 더 먼 곳으로 밀려온 이주노동자들. 오죽 못났으면, 새벽부터 밤까지 뼈 빠지게 일하고도 임금 떼이고, 항의하면 눈두덩이 밤탱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그렇게 맞고도 할 말 못하고, 다른 일자리 알아보면 미등록 혹은 불법체류라 하여 고발당하고, 돌이라도 잘못 걷어차면 폭력으로 입건되고…. 참으로 못난 사람들.
그러니 얼마나 고향은 그리운가. 부모 형제 애인 친구….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하지만 멀다, 멀어도 너무 멀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4818㎞, 나이지리아 아부자 1만1874㎞, 미얀마 랑군 3763㎞, 방글라데시 다카 3770㎞, 스리랑카 콜롬보 5803㎞, 타이 방콕 3675㎞,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5241㎞, 필리핀 마닐라 2580㎞, 캄보디아 프놈펜 3591㎞,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4416㎞,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4883㎞, 몽골 울란바토르 1999㎞, 중국 베이징 947㎞. 외국인주민센터 앞 방향탑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고국의 서울은 차라리 절벽이다. 뱃속의 허기야 장터 국밥이나 빵으로 채운다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서러움은 어찌할 건가.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소릉조’) 천상병 시인보다 못난 사람.
그런 이들이 모여 살고 또 주말이면 각지에서 모여드는 원곡본동, 그 중앙로에 그리운 것들 쌓이니 장터가 어찌 이뤄지지 않을까. 1차선 좁은 도로는 행인 차지이고, 인도는 행상 차지이고, 행상 뒤로는 즐비한 온갖 나라 음식점, 식료품 가게들. 그리고 귀에 익은 말, 익숙한 소리, 그리고 온갖 정겨운 냄새. 광장에 둘러앉아 오가는 사람만 쳐다보아도, 점포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만 귀 기울여도, 마음은 벌써 고향이 지척이다.
제 이름 놔두고 ‘외국인’, ‘다문화’ ‘짱깨’, ‘깜씨’ 혹은 ‘어이…’로만 불리던 사람들. 그러나 그곳에 서면 비로소 후세인, 아짐, 산주 등 친숙한 억양의 제 이름을 찾는다. 똠얌까이, 쌀만두튀김, 브리야니, 양꼬치, 베르미첼리 등 온갖 고향 음식 앞에 앉으면 어머니의 따듯한 체취, 고향의 푸근한 정취, 벌써 고향에 당도했다. 게다가 제 나라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 자락까지 흘러나오니, 도대체 이렇게 값싼 귀향이 어디 있을까. 쾌활한 호명과 반짝이는 웃음 사이로 드러난 하얀 치아들이 한겨울 양지녘 바글거리는 햇살처럼 포근하다.
안산에만 74개국 6만여명, 그중에서도 원곡본동은 전체 주민 1만6000여명 중 1만1000여명이 외국인 주민. 그곳은 이미 국경이 사라진, 아시아의 원곡동이다. 올해로 13번째가 될 안산 월드컵이 해마다 열리고, 스무개 가까운 나라별 공동체가 있어, 공동체별 작은 축제 끊이지 않는다.
상주 외국인 150만여명, 안산에만 74개국 6만여명, 그중에서도 원곡본동은 전체 주민 1만6000여명 중 1만1000여명이 외국인 주민. 그곳은 이미 국경이 사라진, 아시아의 원곡동이다. 올해로 13번째가 될 안산 월드컵이 해마다 열리고, 스무개 가까운 나라별 공동체가 있어, 공동체별 작은 축제 끊이지 않고, 동네 청소, 자율방범, 불우이웃돕기가 이뤄진다. 그곳을 스리랑카의 캔디요, 시베리아의 옴스크요, 중국의 연변이고 네팔의 카트만두라고 한들 누가 까탈 부릴까.
거기엔 한국인 엄마가 두 아이를 놔두고 떠난 조이(필리핀)네가 있고, 아빠가 방글라데시로 떠난 뒤 파키스탄인 아빠를 맞아들여 새 가정을 꾸린 알리네가 있다. 캄차카 반도에 두고 온 아이 때문에 틈만 나면 훌쩍이는 러시아의 타냐가 있고,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와 심장병을 얻어 방글라데시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카말이 있다. 누나는 저녁 8시에, 엄마와 아빠는 9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인도네시아 뜨구네도 있다. 그러나 모두 건강·행복·귀향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한국인 남편이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기고 떠난 뒤 쌀국숫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궁미네가 있고,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 베트남 국적을 포기하고 귀국했지만 지금까지 무국적자로 생활하는 라이따이한 김민수씨가 있고, 한국 공장에서 처음 배운 ‘빨리빨리’가 지금도 가장 부담스럽다는 방글라데시의 모하메드가 있다.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의 주인공으로 800:1의 경쟁을 뚫고 캐스팅돼 백상영화예술대상 남자신인상까지 탄 대한이는 지금도 그곳에서 친구 알리와 함께 초등학교를 다닌다. 스리랑카 아빠와 한국 엄마 사이에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두어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이제 아빠는 새벽에 나가 밤 10시에 돌아오고 휴일도 없이 일하며 가정을 지켜준다.
그런 작은 평화와 희망이 불편한 이들은 지금도 많다. 방귀깨나 뀐다는 이 사회의 권력자들은 그 기적의 마을을 달리 우려먹을 궁리에 몰두한다. 결과는 우범의 낙인을 찍는 것. 중앙통 광장 초입엔 컨테이너 박스 다문화거리 치안센터라는 것이 있다. 거기엔 이런 안내문이 3개 국어로 걸려 있다. “칼 등 흉기 소지는 금지됩니다.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단속 중이니 많은 협조 바랍니다.” 법 없이도 살 그곳 사람들에겐 깊은 모욕이다.
원곡본동이 있는 안산시 단원구의 이주민은 전체의 10%, 이들의 범죄율은 3.4%, 내국인 범죄율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주민이 70% 가까운 원곡본동은 차라리 범죄 없는 마을에 가깝다. 하긴 권력이란 것이 언제는 안 그랬나. 가난하고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이들이 모여 있으면 불안하다.
지난해 여름,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출신의 친구들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일어났다. 담뱃불이 발단이었고, 장난으로 던진 맥주 캔에 머리를 맞은 게 고작이었다. 경찰은 민족 감정에 의한 패싸움으로 규정했고, 선정적인 매체들은 3년, 6년 전 일까지 끌어들여 그곳을 범죄 온상으로 그렸다. 인터넷의 하이에나들은 ‘바퀴벌레, 원숭이’ 따위의 모욕적인 언사로 외국인 혐오감을 자극했고, ‘해 지면 각오하고 다녀야 할 곳’으로 각인시켰다. 치안센터는 이런 터무니없는 왜곡 속에서 세워졌고, 그런 낙인이 됐다.
그러나 그들도 잘 안다. 원곡본동이 있는 안산시 단원구의 이주민은 전체의 10%, 이들의 범죄율은 3.4%, 내국인 범죄율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이주민이 70% 가까운 원곡본동은 차라리 범죄 없는 마을에 가깝다. 하긴 권력이란 것이 언제는 안 그랬나. 가난하고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이들이 모여 있으면 불안하다. 자신들이 그들에게 한 짓 때문에 지레 마음이 찔리는 것이다. 혹시 그들의 분노가 확산되고 폭발하면 어쩌나. 그래서 관리 통제가 용이하도록 우범지대 낙인을 찍고, 가난한 내국인들의 불만을 그곳에 토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제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비 없어 저승도 못 갈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니 다툴 게 어디 있을까. 젠체하는 이들이 줄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두셋이 모이면 캄보디아·방글라데시 노사분규 이야기, 결국 고향으로 쫓겨간 친구 소식 따위를 나눈다. 서너명 더 모이면 기막힌 발재간으로 제기 족구를 하고, 그만큼 더 모이면 남녀노소 차별 없는 배구 경기로 광장을 들었다 놨다 한다.
겨울 휴일의 해는 왜 그리도 짧은지, 찬바람과 함께 어스름 밀려오면 하나둘 자리를 뜬다. 구제 파카 등 옷가지, 월남쌈 연변 순대 등 먹거리, 향채 등 식재료가 든 비닐봉지 하나둘씩 들려 있다. 부모님 힘든 게 걱정은 돼도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귀국하고 싶지 않은 뜨구, 배우가 되어 아빠가 고향을 그리워할 때 비행기표 사주고 싶은 대한이, 남편을 닮아 호수같이 맑고 큰 눈을 가진 아이들만 바라보면 모든 시름 잊는다는 아내가 기다린다. 하지만 그곳을 떠나는 마음은 모두 조금씩 절뚝인다. 다시 시작될 저 고단한 일상. “…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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