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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11 18:40 수정 : 2014.03.11 22:17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곽병찬 대기자
수화기로 신호음이 울린다. 한번 두번 세번….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시 속의 그곳이라면 상상할 일이지.”

노은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훈화하곤 했을 보련대에 기대어 서성인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운동장 중간 왼편과 오른쪽 모서리 하늘을 가리고 있다. 교문엔 문이 없다. 기둥 두 개가 자리만 일러준다. 이리로 드나드시게…. 아이들에겐 무문관이다. 생활지도 선생님이 서 있을 법한 자리엔 오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대신 서 있다.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 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점방에 앉아 있

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 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

“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 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점방에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 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 ~”(‘찔레꽃은 피고’)

은행나무 그 뒤에 섰다. 수줍은 소년의 작은 몸을 가리기에 충분한 둥치다. 지금은 식당 뒷담이 되었지만, 그가 학교 다니던 70여년 전엔 무성한 찔레꽃 넝쿨이 담장 노릇을 했나 보다. 신작로(노은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식당 맞은편엔 낡은 문방구 하나 있다. 쓰러질 듯한 슬레이트 지붕을 받치는 나무기둥이 오랜 풍상에 슬었다.

무심도 하지, ‘그 애’는 밤늦도록 하얀 찔레꽃 덤불 사이로 눈을 주지 않는다. 찔레꽃 향기가 그 애에게서 흘러오는 것이라고 위안하며 소년은 그날도 발길을 돌렸다. 전쟁이 날 때까지. “찔레의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이 나고, 그 애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 애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은 언제까지나 그 애를 응시하며 자랐다. 초여름 찔레꽃 향기에서 그 애를 보고 느꼈다. “오랫동안 그 애를 찾아 헤매었나 보다. 언제부턴가 그 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나루 분교에서, 산골읍 우체국에서, 활석 광산 뙤약볕 아래서, 서울의 뒷골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물점에서 “그 애를 거듭 보면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었다….”

그런 목마름 때문에 소년은 어려서부터 집에 붙어 있지 못했다. 노은면 연화리에서 앙성면 남한강변으로, 엄정면 목계나루로 그리고 광산으로 바다로, 바다 건너로. 하다못해 ‘메데진에서 디트로이트에서 이스탄불에서 끼예프 따위의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도 그 애를 찾았다.

근작시집 <사진관집 이층>에는 신경림 시인의 ‘그 애’가 셋 나온다. 어머니와 할머니, 아내 등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떠난 여인도 셋 나온다. 여인 셋은 제 핏속을 흐르는 사람들이고, 그 애 셋은 언젠가부터 제 마음에 깊은 물길로 흐르던 아이들이다. 애잔함을 견줄 수 없다.

이제는 파릇한 봄빛 새 교사, 그러나 70여년 전 교실은 삐걱이는 목조 교사였을 것이다. 거기서 소년은 꿈만 꿀 뿐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담임은 별을 좋아하는 여선생님이었다. “하루에 한두 번은 꼭 꿈을 꾸는 눈으로 별 얘기를 했다. 카시오페이아, 페르세우스 그리고 작은곰자리, 큰곰자리…./ 그 별나라들을 두루 돌고 싶다. 네 숨결을 타고, 열 살로 돌아가 네 부드러운 등에 업혀서….”(‘네 머리칼을 통해서, 네 숨결을 타고’) 담임선생님은 슬그머니 그녀가 되었다. 오호, 잔망한 것.

근작 시집 <사진관집 이층>에는 신경림 시인의 ‘그 애’가 셋 나온다. 어머니와 할머니, 아내 등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떠난 여인도 셋 나온다. 여인 셋은 제 핏속을 흐르는 사람들이고, 그 애 셋은 언젠가부터 제 마음에 깊은 물길로 흐르던 아이들이다. 애잔함을 견줄 수 없다.

“강언덕에 위태롭게 앉은 집이 사공이 사는 오두막이었다. 다리를 저는 사공이 기우뚱대며 배를 미는 동안 그의 딸은 이마를 덮는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빈대떡을 부쳤다. 종일 그 집 툇마루에 앉아 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강물을 구경하고 싶다는 내 생각은 한 번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 그 툇마루에 가 앉아 있고 싶다, 네 등 뒤에 숨어./ 네 가슴팍 사이에 숨어, 너로 해서 비로소 스무 살이 되어.” 뱃사공 딸이다. 바람에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만 보아도 살구꽃 냄새가 나던 그 애. 철들면서 그는 강 건너 나루에서 생각으로만 건너 보며 가슴앓이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땐가 당숙의 손에 이끌려 목계나루를 건너 목계장터엘 처음 갔다. 나이 들어서 그가 그곳을 서성일 때는 수배자 신분이었고, 그가 경찰에 체포된 곳은 그 목계나루 근처였다. 구렁이처럼 꿈틀대며 흘러가는 강물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엔 지금도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이는 주막이 있다. 늙은 여주인은 무슨 사연인지, 주막 입구에 목계장터 시비를 세웠다.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삭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목계장터’)

“안개는 많은 것을 감추고 조금만 보여주어/ 빈 쪽배가 보이고 산 넘어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내가 좋아하던 아이는/ 저 쪽배를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강마을이 안개에 덮여’에서) 처음으로 ‘내가 좋아’했다고 고백한 아이다.

그토록 마음속에 바람이 가득했으니, 소년은 지긋이 붙어 있질 못했다. 집 앞의 느티나무를 돌고 마을 앞을 지나 신작로 나가면 정미소가 있고, 연초조합이 있고, 말강구네 밤나무집이 있고, 친구 어머니가 빈대떡 부치는 술집, 양조장과 문방구와 잡화점과 포목점이 있고, 그 길 끄트머리쯤 할머니가 국수틀을 돌리던 가게가 있었다. 그때 그 아이에겐 숨이 차도록 먼 길이었지만, 그 애가 있는 점방이 있고, 어디선가 마주칠지 모르는 그 애가 있고, 별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었으니, 풀방구리처럼 쏘다녔다.

그러면 쪽배를 타고 떠난 아이는? 그 뒤를 잇는 건 어머니와 할머니가 가신 길이다. “저 오솔길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쉬엄쉬엄 요령 소리에 얹혀 넘어가던 길이다// 이윽고 쪽배도 오솔길도 덮으면서/ 안개는 안개만을 보여준다.”(‘강마을이 안개에 덮여’)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는 쪽배와 상여…, 그 그늘이 서늘하다.

하지만 시인이 서 있던 곳은 연화리 마을 한포천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곳은 물안개에 제 몸을 숨길 만큼 넓지도, 나룻배가 아이와 보호자를 태우고 흘러갈 만큼 깊지도 않았다. 돌아서면 보련산 신씨 문중 묘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보이지만, 그 아이를 데려간 곳은 한포천이 아니다. 거기엔 서러운 저의 울음을 대신 울던 갈대도 없다.

초등학교 뒤, 논을 질러가면 그의 집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언덕밭까지, 고향살이 서른 해 동안 오직 그 길만 오갔다. 마을 길을 지나 신작로를 질러 개울을 건너 언덕밭까지, 꽃도 구경하고 새소리도 듣고 물고기도 들여다보면서. 돌아가신 뒤에는 언덕밭 너머 뒷산에 묻혔다. “집에서 언덕밭까지 다니던 길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

그 신작로를 따라 보련산을 오르면 하남고개, 고개 너머엔 앙성면, 능암온천을 지나 다시 양지말산 고개를 넘으면 조터골. 강 건너 복탄나루와 마주하고 있는 조대나루가 있었다. 곁엔 온통 갈대뿐인 비내섬. 열병으로 몸살을 앓던 한 수줍은 소년 혹은 청년이 갈대밭 수수대는 소리에 저의 울음을 감추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갈대’)

양지말산 남쪽 할미바위에서 봉황섬을 오른쪽에 두고 강변으로 돌아서면, 산기슭이 남한강 모래톱과 만나 손금처럼 이어지는 오솔길. 또 다른 청춘은 지금도 그 유장한 풍경에 눈물을 무던히도 뿌리겠지만, 돌아온 시인에게 그 길은 이제 슬프지 않다. 슬프지 않아도 아름다운 곳. 외롭지 않아도 사무치는 곳. 그곳에서 지켜보는 그 옛날 소년의 설렘, 기다림, 그리움, 슬픔 따위는 얼마나 싱그럽고 눈부신가. 비내길 강변 갈대와 숲 속 나무 사이사이엔 그런 보석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이렇게도 노래할 수 있었나 보다. “살얼음 속에서도 젊은이들은 사랑하고, 손을 잡으면, 숨결은 뜨겁다~.”(‘정월의 노래’)

자신보다 자기를 더 사랑했던 아내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갔다. 이제 다만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애와 낙타와 고래가 있는 곳으로. “그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첫날을/ 다시 삐걱대는 사진관집 이층에 머물고 싶다.”(‘사진관집 이층’에서) 그것이 어찌 시인만의 꿈일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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