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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5 18:46 수정 : 2014.03.25 20:57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곽병찬 대기자
가로림만 포구 어딜 가든 마찬가지로 유현하다. 오죽 그윽했으면 자궁 같다 했을까. 날새들은 떼지어 날아들고, 밀물에 실려오는 고깃배들. 조선에 실경화풍의 씨를 뿌린 안견, 그가 가로림만을 낀 서산군 지곡면 태생이 아니었던들, 소상팔경도는 그저 모작에 불과했을 터.

읍내 큰길에서 꺾자마자 드렁댕이 가느실 가느물이다. 큰어름들 작은뚜지를 거쳐 장현가람물길 망미산길 지나 번두고개를 넘으면 왕산포. 포구로 가는 길은 그렇게 이름조차 깊고도 깊다. 벌말 대로 노룡 도성 가느실 호리 어도 활곡 만대…, 가로림만 포구 어딜 가든 마찬가지로 유현하다. 오죽 그윽했으면 자궁 같다 했을까.

이원반도에 해가 걸리면 포구마다 내리는 저녁노을, 날새들은 떼지어 날아들고, 밀물에 실려오는 고깃배들. 조선에 실경화풍의 씨를 뿌린 안견, 그가 가로림만을 낀 서산군 지곡면 태생이 아니었던들, 소상팔경도는 그저 모작에 불과했을 터. 어촌석조, 원포귀범, 평사낙안…은 실경과 진배없다. 그곳 사람들은 지금도 그 진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나니, 꿈과 현실이 따로 없다. 안평대군이 꿈속의 도원경을 이상향으로 삼았다면, 안견은 바다 산 날것 갯것 초목 그리고 사람이 한데 어울린 그곳을 이상향으로 삼았나 보다.

“참 바보였슈. 보상 몇 푼 받는다구 천수만 갯벌이 매립되는 걸 놔뒀은께. 태안읍에서 자전거 타면 15분 거리밖에 안 됐거든유. 가는 길도 아름답지만, 갯가에 서면 말도 뭇 했슈. 얼매나 뻘은 부드럽고, 갯내음은 향기롭고, 갯것들은 풍성한지…. 시상에 없는 것 없었구만유. 기어다니고 헤엄치고 붙어 살고, 이리 튀고 저리 날고. 갯벌에도 물길이 있어 그리로 물이 들어올 때면 환장한다니께유. 호미 하나만 들고 가면 양재기 하나 채우는 건 일도 아니었슈. 실컷 놀다가 바지락 고동 캐고, 굴 따고, 거북손은 긁고, 살조개는 그냥 주웠쥬. 그렇게 아름답고 부잔데 세상 부러울 게 어디 있간디유. 근데 막고 나니 어떻게 됐대유? 땅은 정씨가 다 가져가고, 갯벌은 모두 죽어버리고, 사람들은 떠돌이가 되었응께. 맨손 어업 하는 사람에겐 80만원인가 보상 준다 했는데, 그거 받는 데 15년 넘게 걸렸슈. 근데 그걸 누구 코에 붙인대. 우덜 참 바보였쥬. 막힌 사람들만 망했남, 방조제 바깥 천수만 저 아래쪽 사람들까지두 다 망했다구유. 안면도 끝 누동리 사람들도 많이 고향을 떴슈. 해태 양식으로 벌이가 쏠쏠했는데, 갯벌이 없어지고는 유속이 빨라져 양식도 안 되구, 산란장도 없어졌으니 고기도 없구, 갯벌 없으니 조개도 없구, 도리가 있남유.”

“백화산이 가로막고 있어 천수만으로 댕겼지만, 천수만이 저 지경 되구선 백화산 돌아 가로림만으로 갔구만유. 다행히 가로림만은 똑같아유. 요즘 꽃게가 되게 비싸다지만, 그땐 어른 손바닥맨한 것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왔으니 줍기만 하면 됐제. 요즘도 사시랭이(중간 크기 꽃게) 같은 건, 불만 비추면 건질 수 있구만유. 삽만 들고 가면 낙지두 캐구. 어릴 땐 나무막대 끝에 낫굼댕이(짧은 낫) 묶어서, 갯벌에 박고 뛰어다녔쥬. 그럼 뭔가 딱 하는 소리가 들려유. 영락없이 주먹만한 대합이었쥬. 지금도 괜찮아유. 물때와 물길만 잘 알면 한 저녁에 한 동이씩 건질 수 있다니께. 갯바위 많은 청산리 어은리 중왕리 바닷가에 가면 낚시로 망둥이, 깔때기(어린 농어), 모쟁이(어린 숭어)를 숱하게 건지구. 봄엔 놀래미, 간재미 도다리 쭈꾸미 꽃게 여름엔 농어 도미 뱀장어 그리고 6월부터 낙지, 8월부터 민어 봄가을엔 꽃게, 꽃게 허면 서산 아닝겨? 오징어 갈치 겨울엔 굴 바지락 동죽 모시조개 살조개 맛조개 키조개 소라 고둥 등 어패류 권패류가 지천이고 숭어도 물 반 고기 반이여. 사철 먹을 게 많은께 황새, 넓적부리도요, 청다리도요사촌(이상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열댓종의 도요새, 그만한 종류의 갈매기와 기러기와 각종 백로 그리고 종다리 지바뀌 등 새들 천지쥬.”

저걸 막는 게 전기 때문이라는데, 지금 서산 사람덜 쓰는 전기의 40%밖에 안 된대유. 그런 전기 맹글려구 가로림만 갯벌을 쥑여? 아이구, 참 속 터지유. 저기서 나는 조개니 낙지니 물괴기만 혀두 서산은 뭐유, 충청도 사람덜 죄다 먹구두 남쥬. 정부라는 게 워째 그리 실없대유?

“요즘 점백이 물범 이야기 많이 하는데, 4월부터 늦으면 11월 초까지 벌말 앞 솔섬에서 여나믄 마리 놀다가쥬. 타포닌가 뭔가 땜에 환경부 지정 특정도서인 옥도 앞 모래톱에서 놀기도 하고, 가로림만 저 안쪽 어은리 쌍도까리에 가서 놀기도 한대유. 옛날엔 그놈들 참 쌨쥬. 30년은 지났을 껀데, 물범들이 얼매나 많았으면 포수들이 떼로 몰려오곤 했대유. 그때 너무 심했던지 언젠가부터 보기 힘들다가 요즘 동네 사람덜이 잡덜 못하게 하니께 다시 돌아와 놀더라구유.”

“그럼 뭐한대유? 물 막히면 끝이여. 저걸 막는 게 전기 때문이라는데, 그게 태안화력발전소 연간 발전량의 2.7%, 지금 서산 사람덜 쓰는 전기의 40%밖에 안 된대유. 그런 전기 맹글려구 가로림만 갯벌을 쥑여? 아이구, 참 속 터지유. 저기서 나는 조개니 낙지니 물괴기만 혀두 서산은 뭐유, 충청도 사람덜 죄다 먹구두 남쥬. 우리 같은 늙은이덜 호미만 갖고 나가면 1년에 3000만원은 버는데. 굴이니 김이니 양식하는 사람은 말도 못 하쥬. 정부라는 게 워째 그리 실없대유? 2002년 서해안 해안 중 자연성이 가장 좋은 곳이 가로림만이라고 한 게 환경부 아닌겨. 2005년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갯벌 중 가장 건강한 곳이라고 했구, 2007년 전국 습지 환경가치평가에선 가로림만 1등 했쥬. 한려해상공원 한강하구 우포늪 낙동강 하구가 그 댐이구. 작년 정부에서 갯벌의 연간 평균 생산가치가 ㎢당 63억원이라고 했으니께, 가로림만 생산 가치는 5040억원이 되는 거 아닌겨? 쥐꼬리만한 전기랑 그걸 어떻게 비교해유. 머리 좋다는 놈덜이 죽자사자 공부혀서 고시 떡하니 붙고 나면 꼭 저런 지랄 하니, 당최 알 수가 없네유.”

“거짓말만 안 했으면 좋겄슈. 물 맥히면 부자들이 떼로 와 요트 타고, 그러면 요트만 닦아도 하루에 10만~20만원 벌이 할 수 있대나유? 그걸 말이라고 하남. 참 우릴 쑥맥으로 안다니께. 설사 그런들 내 몸 놀려 잘 먹고 잘 사는데 우릴 청소부 만들 일 있슈? 관광객 500만명이라구? 차라리 벌천포에서 만대포까지 다리나 놓제 뭐 하러 댐을 막어. 그럼 갯벌도 살고 관광도 헐 수 있는 거 아닌겨? 물 막아도 갯벌은 그대로라고 하는데, 우릴 천치로 아는감, 갑문 몇 개 남기고 죄다 막아야 하는데, 터빈 돌릴려면 물을 잔뜩 가둬야 하는데, 저 갯벌이 남아나기나 하겠냐구유. 맨손 어업 신고만 허면 보상한대니께, 읍내 사람덜 눈이 뒤집혀 난리래유. 그눔의 보상 때메 한 마을에서 싸움 걸고, 요샌 친목회도 동창회도 갈 맴이 안 생기유. 이웃 이장님한테는 낫 들고 덤비기까지 했대유. 마을이 절딴 나것슈. 할 일 없는 사람덜 관광시켜줍네 거짓말해서 관제 데모나 시키구.”

“천수만 어촌계장님이나 간월도 어촌계장님이 말했쥬. ‘시작했다 하면, 끝장유. 지금 보상 앞세워 꼬드기지만, 일단 막기 시작혀 봐유, 저 사람들이 입 싹 씻어유. 그거 받겠다고 싸움질한 걸 생각하문, 사람 망가지고 돈은 더 깨지구. 여럿 화병으로 죽지 않았는겨.’ 그러니 속 안 터지겄슈. 밀양 사태? 여긴 백배 더 커유.”

“그래두 천수만 땜시 다행인겨. 많이 깨었으니께. 물론 찬성하는 사람도 있제. 대처로 간 자석들 돌아올 생각 없구, 어장 물려줄 사람 없고, 그런 노인덜 중 보상받아 떠날려는 사람들이나, 돈 벌라고 여그로 온 사람들, 펜션 장사나 유스호스텔 장사, 그런 사람들이쥬. 허지만 막아선 안 된다는 사람덜이 열 배는 많아유. 어장 물려줄 자석 없는 노인 중에두 마찬가지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어장, 아이들 너댓씩 키워준 어장을 어떻게 팔아넘긴대. 그건 양심이고 생명이고 영혼을 파는 짓이라고 하쥬.”

“제발 그딴 짓 안 했으면 좋겄슈. 굳이 하겠다면 길 좀 다듬고, 편의 시설 맹글어 사람들 편히 오가게 하면 되유. 도시 나간 우리 애덜 주말마다 오가고, 직장 그만두면 돌아와 아부지 엄니 자리 채워 일하게만 하면 되지. 여긴 늙어도 몸만 움직이면 밥벌이는 한께, 도시 노인 문제 해결책도 될 수 있쥬.”

“갯벌은 날 낳아준 엄니 배나 한가지유, 그걸 어찌 숨통 조이려 한대. 잘났다고 허는디, 따지고 보면 시절들이유, 엄니 같은 바다 그렇게 맹글고 지는 잘 살 수 있겄슈? 여그 사람덜은 그렇게 안 살어유. 삽질도 함부로 않고, 물길 허투루 막지두 않구. 주는 것만도 넉넉한데 웬 지랄들이래, 어구 속상혀.”

지요하님, 정순선님, 박정섭님, 지윤금님, 이평주님 그리고 서산태안환경연합 식구들… 바다 닮아 말도 걸음도 계산도 느리지만, 이젠 속에서 열불 터지는데, 그걸 뭘로 끌까나.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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