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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06 19:22 수정 : 2014.05.06 21:49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바다를 떠나, 산으로 갔네. 부서지는 파도 뒤로하고, 반짝이는 신록 속으로 들어갔네. 통곡은 털어버리고, 갖가지 새소리로 가슴 채웠네. 하늘은 투명하고 바람은 자유로웠네.

소원 하나 있었지. 백담사 무금천, 과거도 현재도 없는 물길 옆에 돌탑 하나 세우고 싶었네.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 맑은 공기와 찬란한 햇살, 포근한 녹음 그리고 반짝이는 새소리.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르고/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오세영 ‘강물’)던 그 물가에 무심하고 텅 빈 돌탑 하나 보태고 싶었네.

시간과 맞서고 있다는 백담사 무금선원 수좌들은 보았겠지?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고은 ‘꽃’) 시인처럼 아이들이 떠나고서야 나는 알았네. 얼마나 아름다웠고, 얼마나 충만한 기쁨이었는지.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천진과 웃음과 노래를 하나둘 쌓아올리려는 것이었네. 이제 잘 가시라, 평안하시라. 더는 돌아보지 마시라, 남은 이들을 걱정하지도 안타까워하지도 마시라.

살다보니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그땐 권력과 언론이 눈과 귀를 막아 그 참혹한 죽음 몰랐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눈앞에서 아이들 몸부림치다가 떠나가는 것까지 속수무책으로 지켜봤으니, 더 이상 무엇으로 핑계를 삼을 건가.

하여 설악 무산 스님께 법문 한마디 청했네. 진작에 ‘설악산 물소리 새소리, 동해바다 해조음이나 듣고 가시게’ 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채근했네. “시키는 대로 새소리 물소리 해조음 한 나절 들었어도 아이들 소리만 들려요, 아무리 골똘히 귀 기울여도 그 애들 웃음소리만 들리더이다, 어찌해야 합니까?” 따졌네.

스님의 눈은 한참이나 서성였네. 먼 데 하늘을 쫓는 것이, 구름을 잡으려나, 바람을 잡으려나, 나비 노란 날개에 실려 떠나는 영혼을 잡으려나. 문득 망월동에 다녀와 남긴 글 하나 떠올랐네. “…죽을 일이 있을 때는 죽은 듯이 살아온 놈/ 목숨이 남았다 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나/ 내 지금 살아 있음이 욕으로만 보여.”

살다보니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그땐 권력과 언론이 눈과 귀를 막아 그 참혹한 죽음 몰랐다고 변명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눈앞에서 아이들 몸부림치다가 떠나가는 것까지 속수무책으로 지켜봤으니, 더 이상 무엇으로 핑계를 삼을 건가. 금강경 사구게 한 줄 들렸네. “일체 만물의 생멸은 꿈같고 환상같고 물거품같고 그림자같고, 이슬같고 번개처럼 일순이니, 그렇게 볼 것이니.”(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슬퍼도 어쩌겠는가. 원통해도 어쩌겠나. 어른의 탐욕과 비굴을 욕하고,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규탄하고, 제 가슴을 아무리 치며 통곡한들, 아이들이 돌아오겠는가, 그 죽음 대신할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그렇게 들이쉬고 싶었을 그 맑은 공기, 누가 대신 들이쉴 수 있겠는가. 그렇게 토하고 싶었을 저 짜디짠 바닷물, 누가 대신 마실 수 있겠는가. 살아남은 게 욕이고 죄라고, 아무리 자책한들, 아이들의 죽음을 어찌 대신할 수 있겠나….

셰익스피어는 사람을 걸어다니는 허깨비라고 했네. <금강경>은 아지랑이라고 했으니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네. 과거도 없고 오늘도 없고, 삶도 죽음도 없는 법인데, 무엇에 집착할 것이며 무엇을 잡으려 할 것인가. 붙잡으면 사라지고, 움켜쥐면 빠져나가는 게 세상만사, 돈도 권력도 명예도, 하물며 자식도 배우자도 그러한 법. 붙잡으려 말고, 오로지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고 쏟아야 할 뿐.”

하여 염장이 이야기는 시작되었네. “…사람들은 시신을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외려 산 사람이 무섭지, 시신을 대하면 내 가족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 자신을 보는 듯하고, … 극락을 갔겠다는 느낌이 드는 시신은 대강대강 해도 맘에 걸리지 않지만, 죄가 많아 보이는 시신을 대하면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눈시울이 뜨뜻해지니더. 이렇게 갈 것을 그렇게 살았소? 하고 물으면, 영감님 억천 년 살 것 같아서, 가족들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니더…. 그렇듯 시신과 정을 나누다가 보면 어느 사이 시신 언저리에 남아 있던 삶의 때라 할까, 뭐 그런 것이 걷히고 비로소 내 마음도 편해지거든요. 결국 내 마음 편안하려고 하는 짓이면서, 남 눈엔 시신을 위하는 것으로 비치니, 나는 아직 멀었습니다.”(‘염장이와 스님’)

“선지식이고, 팔만대장경이 어디 따로 있겠나. 염장이 말엔 제행무상의 진리, 화엄경 법화경의 진수가 다 들어 있었지. 팔만대장경이 별건가. 그건 문자이고 말일 뿐. 그것이 가리키는 건 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라네. 착하게 살아라, 부모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고, 그들 뜻을 네 뜻처럼 존중하라. 팔만대장경에 수천 수만의 수행자들이 빠져 죽었지만 어찌 말과 글에 진리가 있고 부처가 있겠나. 절에는 부처가 없고, 진리가 없다네. 지금 여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이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들 속에 진리가 있고 부처가 있는 법이지.”

스님은 저를 보고, 혀를 차고 있었네. 내 맘속의 불도 못 끄면서, 어찌 남의 불길을 끄겠다고…. “한나절은 숲 속에서/ 새 울음소리를 듣고// 반나절은 바닷가에서 해조음 소리를 듣습니다.// 언제쯤 내 울음소리를 내가 듣게 되겠습니까.”(‘헛걸음’) 이렇게 말을 이었지. “삶의 즐거움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평화를 위하여’)

봄철 농부는 논도 뒤집고, 밭도 뒤집고, 곱게 써레질도 하지. 농부가 아니라도, 그렇게 저와 세상의 묵은 마음, 굳은 성정, 썩은 제도를 뒤집고 갈아엎고, 써레질도 해야 하지. 그래야 우리 아이들 튼실하게 기를 것 아닌가.

부처님도 예수님도 실은 그런 염장이였다네. 부처님은 한 무더기의 뼈를 보고는 걸음을 멈추고 큰절을 올렸지. 제자들이 궁금해하자 이렇게 답했네. ‘그런저런 뼈 같지만 이 뼈의 주인은 과거 전생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형제 또는 일가친척, 이웃, 제자, 도반 내지 스승일 수도 있네.’ 부처님은 그 뼈 무더기를 화장하시고 주위를 청정하게 청소했네. 공생활 중 세 번 울었다는 예수님은 나사로의 주검 앞에서 비통하게 눈물 흘리며, 무덤 문을 열고 나사로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고 했네.

봄철 농부는 논도 뒤집고, 밭도 뒤집고, 곱게 써레질도 하지. 씨가 고이 뿌리내리고, 싹을 내어,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서지. 농부가 아니라도, 그렇게 저와 세상의 묵은 마음, 굳은 성정, 썩은 제도를 뒤집고 갈아엎고, 써레질도 해야 하지. 그래야 우리 아이들 튼실하게 기를 것 아닌가. 미당 말대로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말일세.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누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서정주 ‘무등을 보며’)

무설설(無說說) 무문문(無聞聞)이라, 말하는 바 없이 말하고, 들은 바 없이 듣는다고 했으니, 다시 기울여 보시게나. “칼산지옥 가면 칼산지옥 저절로 무너지고, 화탕지옥 가면 화탕지옥 저절로 무너지고, 지옥 가면 지옥은 저절로 고갈되고, 아귀들 사는 곳으로 가면 아귀들 저절로 배부르게 하소서. 수라들 사는 곳을 가면 투쟁심은 저절로 무너지고, 축생들 사는 곳 가면 스스로 큰 지혜 얻게 하소서…”(천수경 별원품)
곽병찬 대기자

그대 맑은 영혼 닿는 곳, 어둠은 밝아지고, 불길은 꺼지고, 엉킨 것 풀어지고, 쌓인 것 녹아지고, 미움은 스러지고, 슬픔은 사라지고, 그저 맑고 향기롭고 아름답게 하소서. 자본귀신 탐욕 벗고, 권력귀신 욕망 벗고, 명예귀신 허명 벗고, 불통귀신 귀 뚫리고, 오만귀신 겸손하고, 독불귀신 낮추게 하고…, 풍랑은 물결 되고, 폭풍은 미풍 되고, 폭우는 곡우 되어, 배고픈 이 배부르고, 아픈 이 건강하고, 외로운 이 사랑 찾게 하소서. 저절로 칼산지옥 무너지고, 화탕지옥 무너지고, 평화의 땅, 존중의 땅, 배려의 땅 이루소서….

바다를 떠나, 산으로 갔네. 설악산 백담사, 무금천 물가에 돌탑 하나 쌓았네. 돌 하나 올리고, 별 하나 얹고, 돌 하나 올리고 꿈 하나 얹고, 돌 하나 올리고 바람 하나 얹고, 돌 하나 올리고 시 한 편 얹고, 그 위에 눈물방울 떨어뜨려 소망의 돌탑 하나 쌓았네. 봄이 오고 꽃이 피면 날아와 그 위에서 쉬어 갈 벌과 나비, 새와 바람이여…, 그대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속에는/ 산 그림자 여전히/ 홀로 뜰 것”이라네.(이성선 ‘나 없는 세상’)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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