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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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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떠난 자는 남은 자의 가슴에 묻히고, 산 자는 죽은 자를 안고 살아간다. 산다는 게 한순간씩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이라지만, 무덤 같은 삶은 끔찍하다. 뱀이 제 꼬리를 먹고 들어간다고나 할까. 그러면 삶은 이 죽음의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을까. 죽은 자가 안식을 찾고, 산 자도 자유로워, 삶과 죽음이 서로를 복되게 할 수는 있을까. 진도 사람들의 오랜 고민이었다.
“창포리 바닷가에 제상이 차려졌다. 언저리엔 긴 종이깃발이 매달린 네 개의 대나무가 꽂혀 있다. 동해청제용왕 강인왕씨, 남해적제용왕 강예왕씨, 서해백제용왕 강의왕씨, 북해흑제용왕 강덕왕씨, 중앙황제 도솔천중제일용왕…. 제상 옆엔 5m 높이의 신대가 휘청인다. 꼭대기엔 대나무 가지가 묶여 있고, 망자의 생년월일과 이름이 적힌 베가 바람에 나부낀다. 신대 중간쯤엔 긴 질베가 묶여 있고, 그 끝에 종이로 오린 망자의 넋과 쌀을 담은 놋주발이 묶여 있다.”
“단골이 술과 밥을 버무려 바다에 뿌린다. ‘슬픔도 원통함도, 꿈도 한도 오늘 모두 씻을 텐께 어서 나오시오. 어서 나오시오. 나와서 한을 말해야 하지 않겠소.’ 연신 버무린 술밥을 뿌려 사해(四海) 용왕을 달래며 혼을 부른다. 복쌀을 상 주변에 뿌린 뒤 놋주발이 묶인 질베를 제물과 함께 바다 멀리 던진다. 징소리는 높아지고, 단골의 소리 또한 더욱 애절해진다. ‘에, 에이에, 서해용왕 남해용왕 동해용왕….’”
“단골은 신대를 쥐고 나비처럼 춤을 춘다. 신대는 망자의 넋이 타고 내려오는 길. 유족을 골라 신대를 잡힌다. ‘해동조선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불쌍하신 망자씨 영험있는 말소리 듣고 곤대각시님 모셨습니다. 영험 신령타키로 손대각시님을 모셨으니, 훨훨 내리소사 훨훨 내리소사….’”
“질베를 천천히 끌어낸다. 신대는 조용하다. 다시 질베를 던진다. ‘불쌍하고 가련하신 완산이씨 망자씨가 수중에 잠겼으니 삼혼구백을 맞아다가 해갈천도시켜 새왕극락 보내자고 삼혼구백을 맞으러 왔으니 싸게 오시오. 싸게 오시오, 서러워 말고 오시소서. 내 집 찾아 오시소서. 저기 오는 저 망자 게 어이 서럽던가 옥 같은 두 미간에 구슬 같은 눈물짓고….’ 징과 장구 피리 소리가 헐떡인다. 신대 끝 대나무 가지들이 흔들린다. 신대잡이 유족의 표정이며 눈짓이며 목소리가 망자로 바뀐다. 한바탕 망자의 한풀이가 이어진다.”
“제인들이 돗자리를 말아 세운다. 단골은 그 위에 주발을 올린다. 영돈, 망자의 형상이다. 향물과 쑥물로 영돈을 씻긴다. ‘불쌍헌 망제님 가신 길이 있어도 오시는 길 없다기에 옷 지어 영돈 놓았으니…, 상탕에 향물로 목욕하고 중탕에서 쑥물로 목욕하고 하탕에 청계수로 목욕하고 시왕전에 가옵소서….’”(곽의진의 소설 <꿈이로다, 화연일세> 중 넋건지기굿 장면)
북의 울돌목은 물살 세기로 한반도 제일이요, 남의 맹골수도는 두번째다. 날고 기는 어부라도 한번 휩쓸리면 용궁행이다. 바다만이 아니었다. 진도 땅은 삼별초의 난, 정유재란, 동학농민전쟁, 한국전쟁 고비마다 피바다였다. 진도의 비극은 되풀이됐다. 따져보면 살아남아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게 비극이다.
급창둠벙, 18세기 말 간척 이전 그 주변은 바닷가였다. 지금은 손바닥만하지만, 1271년 삼별초 전쟁 때는 연못이었다. 삼별초는 진도 용장산성에서 몽골과 고려 연합군에 일격을 당하고 퇴각하다 돈지리 벌판에서 떼죽음을 당한다. 아녀자들은 급창둠벙에 몸을 던진다. 소설 속 완산이씨가 급창둠벙 옆 창포리 바다에서의 죽음은 진도 여인의 그런 한 맺힌 삶을 상징한다.
위로는 해남 우수영이 지척이고, 아래로는 상하조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하지만 북의 울돌목은 물살 세기로 한반도 제일이요, 남의 맹골수도는 두번째다. 날고 기는 어부라도 한번 휩쓸리면 용궁행이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가난에 떠밀려 바다로 나아갔고, 한날한시 수중고혼이 된 이들이 많았다.
바다만이 아니었다. 진도 땅은 육지에서 패배한 이들이 저들의 요새로 삼아 재기를 꿈꾸곤 했다. 삼별초 외에도 백제 유민이 저항지로 삼았고, 동학농민전쟁의 농민군이 그러했다. 게다가 왜구는 중앙에서 소외된 그곳을 상습적으로 노략질했다. 특히 삼별초 난은 재앙이었다. 그곳에 행궁까지 세우고 반몽항쟁에 나섰지만, 불과 9개월여 만에 진도를 피바다로 만든다. 1차로 떼죽음당한 논수리 벌판을 흐르는 개울은 지금도 핏기내로 불리고, 돈지리엔 떼무덤이 그 처절한 최후를 증언한다. 전쟁 후 진도 사람 1만여명이 전리품으로 끌려갔으니, 진도는 죽음의 땅.
조선조 정유재란 중에도 진도는 또 피바다가 된다. 이순신 장군은 울돌목에서 일본 해군을 대파(명량대첩)했지만, 열악한 군비를 확충하고 진용을 다시 정비하기 위해 통제영을 신안 당사도로 옮긴다. 이 사실을 안 왜군은 진도로 밀려들어와 주민들에게 보복의 살상극을 벌였다. 그때 순절묘역이 고군면 도평리에 남아 있다. 6·25의 참극 또한 그곳을 비켜가지 않았다. 인민군의 공세에 밀려 진도를 떠나던 경찰은 체포했던 보도연맹원 십수명을 바다로 끌고 나가 수장시켰고, 진도를 접수한 인민군은 피의 보복을 벌여, 군내면 세등리 곽씨 집성촌에선 73명이 처형을 당했다. 처형지는 지금도 칠삼골이라 불린다. 다시 국군이 수복하면서 역시 보복의 피바람이 불었다.
진도의 비극은 그렇게 되풀이됐다. 주민들에게 죽음은 일상이었고, 삶의 일부였다. 따지고 보면 죽는다는 게 비극은 아닐 터. 남아서 삶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해야 할 산 자야말로 비극의 주인공. 그것은 온전히 여인들의 몫이었다. 남정네가 귀했으니, 여전한 가부장제의 숨막히는 통제 아래서 종족 유지와 생존의 문제도 떠맡아야 했다. 논밭, 갯벌 일은 물론 때론 뱃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심지어 상여까지 멨다. 상여 나갈 때 지금도 앞뒤에서 긴 질베 끈 두 가닥을 여인들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잡아당기며, 여인의 만가에 따라 후렴을 메기는 건 그 흔적이다. 이승 저승을 잇는 건 당연히 여인네 몫. 한 맺힌 이가 다른 이의 한을 알고, 원통함을 겪어야 맺힘을 풀 수 있나니.
시시처처가 그런 고난이었으니 민속은 깊고도 질펀하다. “씨엄씨 잡년아 잠 깊이 들어라/ 느그아들 엽렵함사 내가 밤마실 돌이” “시압씨 호령은 갈수록 더하고/ 어린 가장 품에 안고 잠잔둥 만둥”(‘진도아리랑’에서) 시집살이가 오죽했으면 며느리도 시어미도 즐겨하는 사설이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은 남편의 외도나 죽음 등 사랑의 상실이었다. “임 떠난 그날 밤 달은 왜 이리 밝든고/ 우지마라 저 두견아/ 임 이별한 나도 있다…”(‘흥타령’에서)
그래서 여인들은 가는 곳마다 노래로 풀었다. “노다 가면 정분인가/ 오늘 밤을 가지 말고/ 자고 가야 정분이지” “내 미쳤네 내 미쳤네/ 넘의 사랑 넘의 님을/ 내 사랑 맺으려니/ 내가 정녕 미쳤구나”(‘사랑가’에서) 그 정한은 도홧빛이다. “서방님 오신 줄 알고 깨벗고 잤더니/ 문풍지 바람에 설사병이 났네/ 보고도 못 먹는 것은 그림의 떡이요/ 보고도 못 사는 것은 남의 님이로다/ 놀다가 가면은 친구가 되고요/ 자다가 가면은 정든 님 된다네.”
하늘로 올라간 할머니는 영등할미가 되었고, 남은 여인은 그 영을 받아 단골이 되었다. 그는 갈 수 없는 곳, 닿을 수 없는 곳을 가게 하고,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게 하고, 죽은 자를 씻겨 평안히 떠나게 하고, 산 자는 자유롭게 한다. 씻김굿이다.
진도 남쪽 모도와 마주한 고군면 회동리 해변엔 뽕할머니 상이 있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가운데 할머니는 모도를 바라보며 애절하게 기도한다. 호동마을 사람들은, 극악스런 호환을 피해 모도로 떠났다. 배가 작아 남겨진 할머니는 매일 뿔치바위에 올라 눈물로 가족과의 재회를 기도했다. 감복한 용왕은 음력 이월 그믐날을 점지했다. 마침 모도의 가족들이 식수가 떨어져 돌아와야 할 때였다. 그날 뽕할머니가 다시 눈물로 기도하자 바다가 갈라지면서 길이 드러났다. 가족들은 그 길로 돌아왔지만, 할머니는 기진해 쓰러졌고, 가족 품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영등이다.
설화의 상징은 자못 심각하다. 호랑이는 왜구, 혹은 삼별초의 난 등 외지에서 밀려온 각종 환란일 것이고, 할머니는 그 고통을 온전히 져야 했던 여인들일 것이다. 하늘로 올라간 할머니는 영등할미가 되었고, 남은 여인은 그 영을 받아 단골이 되었다. 그는 갈 수 없는 곳, 닿을 수 없는 곳을 가게 하고,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게 하고, 죽은 자를 씻겨 평안히 떠나게 하고, 산 자는 자유롭게 한다. 씻김굿이다.
“불쌍한 망제씨 이 굿 받어 잡수시고 천고에 맺히고 만고에 맺혔던 마음 천고를 풀고 만고를 풀고 백천고를 풀었으니 포부에 맺힌 마음 순중에 풀고….”(씻김굿 중 ‘길닦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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