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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3 18:56 수정 : 2015.01.13 18:56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봉녕사는 사찰음식의 본찰 같은 곳이다. 선재, 대안, 우관, 동원 스님 등이 손맛을 이곳에서 익혔다. 후원 앞에 서면 입에 군침이 도는 건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접에 담기는 것은 그 나물에 그 조림 그 김치다. 세속의 입맛을 배반하는 게 봉녕사 밥상이다.

식재료의 풍미와 영양이 살아나는 것은 자연이 준 양념만 쓴 결과다. 사찰음식의 특별함은 식재료 선택에서 조리와 공양 과정 전체를 관철하는 그만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양주는 요리하는 게 아니라 자비심을 담는다.

신경림 시인은 남한강 갈대밭에 서서 ‘슬프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했고, 가수 김윤아는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픈’ 사람을 노래했다. 아름다움이란 그렇게 넓고도 깊다. 그러나 아름다워도 슬프지 않고, 맑고 밝아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수원 봉녕사 비구니 학인 스님들….

새파란 머리가 서럽긴 했다.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백석의 ‘여승’에서) 중년의 비구니에게서도 백석은 쓸쓸하고 서러웠는데, 꽃 같은 나이의 스님 앞에서야 어떠할 것인가.

그러나 그건 저의 감상일 뿐, 스님들은 맑고 밝았다. 칼바람 속에서도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들 같았다. 별식으로 나온 만두 두개에 입꼬리가 반달 형상을 그리며 눈초리에 붙어버리는 모습이라니, 가난한 밥상 앞에서의 평화가 달덩이처럼 밝았다.

새벽 네시 도량석이 울리면, 침소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사 장삼으로 받쳐 입는 소리다. 법고가 밤하늘을 흔들 무렵 처소에서 빠져나온 그림자가 하나둘 모여, 기러기 대열을 이루며 법당을 향한다. 법당은 문고리가 손이 쩍쩍 달라붙고 청수가 얼어붙었다. 그 송곳날 같은 한기도 입선에 든 스님들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예불문으로 시작해 천수경, 능엄주에 108배까지 하고 나면 1시간여가 훌쩍 지나간다.

아침은 발우공양. 발우를 내리며 염송하는 하발게를 시작으로 회발게, 전발게, 십념, 봉반게, 오관게, 생반게, 정식게, 삼시게, 절수게에 이어 해탈주로 공양을 마치기까지 1시간여 동안은 식사시간이 아니라 수행이고 고행이다. 발우에 담긴 밥 한 덩이와 김치 대여섯 조각, 시래기 무침, 두부 두세 조각 그리고 된장무국이 전부지만, 학인 스님들에게 그것은 천지의 생명과 수고와 은혜가 담긴 우주여야 한다.

그 초라한 밥상을 두고 지나친 것 아니냐, 저 음식으로 몸이나 지탱할 수 있을까 푸념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학인 스님들은 무조림 세 조각, 김치 댓 조각도 도업을 이루는 보약이라고 믿는다. 공양을 받는 마음이 지극하다.

사찰음식은 이제 한국의 상징적 브랜드가 되었다. 음식평론가 클로드 르베는 대안 스님의 음식을 맛보고는 “한번 먹으면 잊을 수 없는 첫사랑 같은 맛”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슬로푸드 세계대회에서는 세계인들이 잡곡밥, 비빔국수, 무맑은능이버섯국, 버섯강정, 연근찜, 제철나물 무침이 고작인 밥상에서 감동을 먹었다. 슬로푸드 운동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 회장은 “나눔 비움의 정신”을 맛보았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진관사에서 어깨너머로 사찰음식을 보고 배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셰프 샘 카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서 불고기 만드는 법을 배워 오라고 했는데 돌아가면 콩국수를 상에 올려야겠다.”

봉녕사는 그런 사찰음식의 본찰 같은 곳이다. 선재, 대안, 우관, 동원 스님 등 나름 일가를 이룬 이들이 손맛을 이곳에서 익혔다. 봉녕사 후원 앞에 서면 첫사랑의 설렘까지는 아니어도 입에 군침이 도는 건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대접에 담기는 것은 그 나물에 그 조림 그 김치다. 맛이라고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세속의 입맛을 가차 없이 배반하는 게 봉녕사 밥상이다.

“일체 만물은 식(食)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식(食)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증일아함경) 생명이 나오는 것도 밥이요, 도업을 이루는 것도 밥이다. 반대로 욕심을 키우는 것도 밥상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밥상이다. 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 등 오욕락이 그 밥상에서 나온다. 오욕락을 비우는 게 수행자의 길이니, 절집의 밥상은 역설적이게도 비우기 위해 섭취하는 법상(法床)이다. 탐심으로 찌든 입맛에 맞을 리 없다.

흔히들 사찰음식이라고 하면 육류와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를 쓰지 않는 음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오신채를 뺀 채식일 뿐이다. 육류와 오신채를 쓰지 않는 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다 보니 그리됐을 뿐이다. 육류는 자비심을 없애고, 자극성이 강한 양념류는 음심과 분심을 일어나게 한다. 자연의 이치에 다가서고 따르는 것이 수행이다 보니, 첨가물이나 조미료 따위를 쓰지 않는다. 그것은 맛을 탐하게 한다. 사찰음식이 자연에 가까운 건강한 음식으로 꼽히게 된 것은 그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연식이 사찰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건 자연식일 뿐이다.

사찰음식에는 요리가 없다. ‘요리하지 않는 음식’이 사찰음식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인위적으로 맛과 멋과 영양소를 더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념이라고 해봤자 간장, 된장, 고추장 등 발효식품과 소금, 참기름, 들기름이 고작이다. 식재료의 풍미와 영양이 살아나는 것은 자연이 준 양념만 쓴 결과다. 사찰음식의 특별함은 식재료 선택에서 조리와 공양 과정 전체를 관철하는 그만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양주는 요리하는 게 아니라 자비심을 담는다.

가난했던 시절, 봉녕사 스님들은 학인의 먹거리를 위해 시장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배추 잎, 무청 따위를 얻었다. 농약 따위에 찌든 것들이니 식초를 탄 물에 하루 이틀 푹 담가 독성을 빼낸 뒤 삶아서 말려 썼다. 수원 도심 근처여서 지하수도 믿을 수 없으니 수돗물을 받아 참숯과 맥반석 황토볼을 넣은 항아리에 넣어서 정제한 뒤 음용하도록 했다. 숯은 절집에서 직접 구웠고, 양잿물에 담가 소독한 뒤 썼다. 소금은 천일염을 사다가 5년간 간수를 뺀 것을 한번 볶아 썼다. 가난했지만 정성은 지극했다.

장에는 특별한 신경을 썼다. 간장은 겹장을 썼다. 동지 전에 메주를 쑤어 음력 정월 말(午)일에 소금물에 담근다. 45일쯤 지나면 간장과 된장을 가른다. 꺼낸 메주는 곱게 찧고, 새로 삶아 으깬 메주콩과 섞어 숙성시켰다. 한번 우린 간장에는 이듬해 새로 쑨 메주를 담가 또다시 간장을 우렸다. 봉녕사표 겹장이다. 작년엔 콩 다섯 가마 분량의 메주를 쒔다. 메주를 쑤기 전엔 고추장을 담갔다. 멥쌀이 많은 메주를 으깨고 고춧가루 찹쌀죽을 섞은 뒤 숙성시킨다. 절에서 직접 고아낸 조청을 넣으면 맵싸하면서 달콤하고 짭조름한 봉녕사 고추장이 된다. 보통 사찰음식의 특징으로 청정, 유연, 여법을 꼽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지극정성이다. 봉녕사의 장이 꼭 그렇다. 마음의 독을 없애고 몸을 살리는 약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도업을 이루겠노라 다짐하는 학인들이지만, 저녁 공양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유배식으로 이루어지고, 가벼운 수다도 눈감아 준다. 반찬도 서너 가지 더 나온다. 새로 한 게 아니라 아침, 점심 공양 때 남은 찬들이다. 감자 샐러드가 나왔다면, 남은 감자된장국에서 건져낸 건더기를 으깨서 만든 것일 터다. 1주일에 한번씩 삭발할 때면 꼭 나오는 별식도 저녁 공양 때다. 가끔은 새파란 머리가 서럽기도 하겠지만, 어른 스님이 만들어주는 만두, 비빔국수, 떡볶이, 탕수버섯 등이 시린 마음을 따듯하게 매만져 준다.

공양을 받기만 하는 건 아니다. 1년 4학기 중 책거리나 사은회 그리고 일종의 축제인 ‘쑥데이’ 때마다 솜씨자랑이 펼쳐진다. 책거리에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음식을 내고, 사은회 때는 반별로 음식을 지어 은사를 대접한다. 참쑥이 마침 알맞게 자랐을 때 학인 스님들이 벌이는 잔치인 쑥데이가 다가오면 봉녕사 인근 꽃들이 벌벌 떤다고 한다. 그러나 식재료라야 산야초뿐이니, 예쁜 스님들의 도업을 위해 저를 봉헌할 수밖에.

곽병찬 대기자
엊그제 저녁 공양엔 김치비지국이 나왔다. 들기름 넣고 20분쯤 볶은 김치에 무, 표고, 다시마를 끓여 낸 채숫물을 붓고 끓이다가 미리 준비해둔 비지를 섞어 마저 끓여 냈다. 비지는 조리하기 전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갈아 냈다. 간은 김치 국물로 했다. 후식으로는 키위와 석류에, 먹고 남은 배를 갈아 만든 소스를 얹었다. 공양간 기둥마다 ‘묵언’ 두 자가 붙어 있지만, 후원은 환한 미소의 물결이 찰랑거렸다. 가난한 밥상 앞에서 스님들의 작은 평화와 행복이 맑고 고왔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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