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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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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아이들이 숲 속에서 죽은 토끼를 발견했다. “왜 죽었을까.” “포수가 쏘고 간 게 아닐까.” “그런데 그냥 두고 가도 돼?” 아이들은 풀로 덮어주고, 토끼 그림을 그려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밟지 않지.” 다른 아이는 꽃 몇 송이를 그 위에 얹어주었다 아이들과 요정이 논다고? 임재택 교수 말에 속으로 뀌던 콧방귀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부산대 부설 어린이집 아이들은 요정과 함께 놀고 있었다. 임 교수는 그걸 아는 몇 안 되는 어른이다 이숙희 원장이 비밀 하나를 보여주겠다며 이끌고 갔다. 2층 보육실 벽면의 ‘대동산책지도’였다. 쥐라기공원, 해울못, 개미공원, 바위공원…. 임재택 명예교수(부산대, 생태유아교육)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사람에겐 육안, 심안, 영안이 있어요. 육안은 물체를 보지요. 심안은 마음을 읽습니다. 영안은 영혼과 교감하지요.” 사물에 깃든 정령과 소통하는 것이 영안이라는 것이다. 서로를 알아보면 공감이 일고 공감하면 소통한다. 대동산책지도는 부산대학교 부설 어린이집 아이들이 부산대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영안으로 보고 감응한 것들을 그린 것이었다. 그곳은 동화의 나라이고, 다른 생명의 친구들과 노는 비밀 아지트였다. 어린이집은 오른편 아래 귀퉁이에 있다. 지도 중심을 채우고 있는 것은 그런 아지트였다. 어른들 세계인 미술관, 박물관, 중앙도서관, 대운동장, 10·16기념관 등은 이정표 수준으로 처리됐다. 반면 아지트는 함께 논 이야기까지 그려넣었다. 어린이집 왼편의 ‘넉넉한 터’, 그 옆의 ‘바위공원’이 그랬다. 바위공원엔 무지개문이 있고, 새, 지렁이, 달팽이가 있고 바위와 나무가 그려져 있는 걸 보면, 동화 속 외계 행성이었다. 실제의 쥐라기공원 터엔 공룡 모형조차 없다. 그러나 지도엔 육식공룡 두 마리가 마주보고 으르렁거리고, 거대한 초식공룡 등에서 아이들이 논다. 아이들에게 그건 실제 상황이다. 손톱만하게 표시된 미술관 오른편의 ‘해울못’에선 물레방아가 돌고 물고기가 뛰어논다. 아이들도 물고기가 되어 있다. 인근 박물관은 풀벌레마을이나 장승터와 비교하면 코딱지 수준이다. 실제의 ‘개미공원’은 손바닥만하지만, 인근 대운동장보다 곱절은 더 크다. 텃밭의 허수아비가 웅장한 중앙도서관을 내려다본다. 이 어린이집 아이들이 하는 일이란 노는 것. 새와 다람쥐, 물고기와 잠자리가 그렇듯이, 빛과 바람과 물과 나무 그리고 흙 속에서 노상 논다. 사육되는 양계장 닭이 아니라, 멋대로 뛰어노는 토종닭처럼 자라도록 돕는 게 이 어린이집 교육 목표다. 그래야 신체 발육을 정상화하고, 사회성을 높이고, 다른 생명과 소통하게 하며, 잠재된 창의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발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침 어울림숲반 아이들이 숲 속 교실로 떠나던 참이었다. 4살에서 6살 아이들이 어울려 숲에서 노는 반이다. 점심까지 숲에서 먹으며 놀다가 어린이집으로 돌아온다. 오늘은 과제가 하나 있다. 지팡이를 만드는 일이다. 제 손목만한 굵기의 나무가 하나씩 아이들 손에 들려 있다. “개울 건너 숲으로 가자/ 숲을 지나 산으로 가자/ 개미 풍뎅이 노는 숲으로/ 참새 토끼 노래하는 산으로….” 출발이다. 돌담을 끼고 골목길로 들어선다. 담 너머는 텃밭. “씨 씨 씨를 뿌리고/ 꼭 꼭 물을 주었죠/ 싹 싹 싹이 났어요.” 엊그제는 상추, 들깨의 씨를 뿌렸다. 토마토, 고추, 가지 모종도 심었다. 지난해 들깻잎을 따던 준서의 하소연에 선생님들이 ‘빵’ 터졌다. “선생님 깻잎이 너무 많아요. 이거 따다가 늙겠어요.” 돌담식당 지나 돌계단에 오르면 숲이다. 아이들의 인사가 쏟아진다. ‘나무야 안녕’, ‘구름아 안녕’, ‘제비야 안녕’…. 상준이는 새파랗게 물오른 플라타너스 잎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기 상추 잎 무지 많아요.” 아이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선생님이 응원 한마디 했다. “바람이 부니깐 정말 시원하다 그치?” “선생님 천국 가는 길 같아요.”(진희) “천국? 우리가 지금 천국으로 가고 있구나.” “구름도 움직여요, 우리보고 인사하는 것 같아요.”(태희) ‘쉬었다 갈까?’ 선생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흙바닥에 주저앉는다. 벌렁 눕기도 한다. 다른 어린이집 엄마들이 보면 기겁할 일이다. 세탁하는 것도 귀찮지만, 혹시 세균에 감염될까 걱정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흙놀이. 흙은 아이들의 우주이고, 흙놀이는 아이들이 우주가 되고, 우주가 아이들이 되는 놀이다. 집도 짓고, 요리도 하고, 친구도 만들고, 장난감도 만든다. 텃밭의 흙은 신비 그 자체다. 상추·배추·고구마 등이 자라고, 지렁이·콩벌레·사마귀 등이 산다. 그런 흙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집중력이 뛰어난 관찰자가 되고, 발명가가 되고, 예술가가 된다. 언젠가 어울림반 시하가 놀다가 얼굴에 상처가 났다. 놀란 엄마는 울먹이며 물었다. “시하야 괜찮아. 안 아팠어? 안 울었어?” “엄마, 괜찮아. 피가 조금 나긴 했지만 안 울었어.” 시하는 대신 엄마에게 나뭇잎을 내밀었다. “나뭇잎이 예뻐서 엄마 주려고 가져왔어. 선물이야.” 지원이 엄마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엄마, 오늘 흙산에서 넘어져서 아팠어요. 그런데 엄마, 우리 어린이집에는 정말 재미있는 장난감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 바로 흙이야 흙.” 아토피는 아이들이 흙에서 멀어져 갔기 때문에 생긴다고 선생님들은 믿는다. 은채는 아기 때부터 턱에 진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데 어린이집 들어오고 반년 정도 지나자 진물이 사라졌다. 은채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흙장난이었다. 10분쯤 더 올라가자 올챙이강이다. 몇몇 아이들은 다짜고짜 개울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찾는 건 도롱뇽 알. 이맘때면 알들이 떠내려와 주변에 많이 걸린다. 아이들이 올챙이강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올챙이강을 건너면 제법 가파른 벼랑길. 어른들은 마음을 졸이지만,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걷는다. 벼랑길을 지나면 밤송이 함정이 있고, 그 위에 숲교실이 있다. 개울이 흐르고 개울 주변은 바위투성이다. 아이들은 가방을 벗어놓기 무섭게 제각각 놀이를 찾아 떠난다. 물속에서 나뭇잎으로 배 놀이를 하는 아이, 선생님과 물장난을 치는 아이, 바위에 넙죽 엎드려 명상하는 아이,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애벌레들을 관찰하는 아이…. 아이가 하소연한다. “먹이를 주려고 했는데,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아이 얼굴이 슬프다. 배트맨이 나타났다. 점심을 날라 주시는 아저씨다. 오늘 메뉴는 찰수수밥, 콩나물된장국, 한우불고기, 상추, 쌈장, 김치다. 가장 많이 손이 가는 것은 상추와 쌈장 그리고 불고기. 처음 어린이집에 온 아이들은 그저 소시지와 햄만 찾았고, 피자·햄버거·콜라가 없다고 칭얼댔다. 된장국과 김치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입이 미어터지도록 쌈밥을 싸서 먹고, 된장국과 김치를 곁들인다. 식재료는 생태유아공동체에서 납품한다. 임 교수가 생태유아교육의 일환으로 결성해 전국에서 활동하는 단체다. 철저하게 검증된 유기농 우리 농산물만 쓴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씨 뿌리고 모종을 심어 기르고 수확한 것들은 아이들의 요리 놀이에 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입맛이 어른들보다 섬세하다. ‘저 상추는 무르고, 이 상추는 아삭아삭 맛있어요.’ 먹는 것만 아니라 요리도 한다. 상추 장떡, 돌나물 비빔국수, 딸기우유도 만들고 진달래화전도 부친다. 선생님과 함께 취나물 된장무침, 돌나물 오이무침도 한다. 완두콩으로 밥을 짓고, 볶은 김치와 달걀프라이를 얹어 추억의 도시락도 만든다. 수린이는 식탁 기도를 이렇게 한다. “땅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고 해님은 곱게 익혀주었지요. 좋은 땅 좋은 해님 감사합니다.” 언젠가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숲 속에서 죽은 토끼를 발견했다. “왜 죽었을까.” “포수가 쏘고 간 게 아닐까.” “어린이집에서 탈출했는데 집을 못 찾아서 그런 거 같은데.” “그런데 그냥 두고 가도 돼?” 아이들은 풀로 덮어주고, 토끼 그림을 그려 그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밟지 않지.” 다른 아이는 꽃 몇 송이를 그 위에 얹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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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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