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양순씨의 우리원식품 마당 풍경. 98가지 유기농산 물과 산야초를 발효해 만드는 효소 항아리들이 죽 늘어서 있다. 효소액은 8~10년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보성군청 제공
|
[나는 농부다] 전양순 우리원식품 대표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되고 싶었다. 1984년 벌교로 내려와 유기농에 뛰어들었다. 모두가 통일벼를 심어 증산에 매달릴 때였다. 굶어죽을 각오로 시작했는데 벌써 30년이 됐다. 만물이 생장해 가득 찬다는 소만(小滿)을 지난 남쪽의 들녘. 지금이 벼농사하는 농부에겐 가장 바쁜 시기다. 전라남도 보성의 벌교읍에서 30년째 유기농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농부 전양순(54)씨도 그렇다. 써레질로 단정하게 다듬어 놓은 10만㎡의 논을 바라본다. 이제 긴 모내기 준비가 끝났다. 유기농 하다보니병충해에 강한 종자 필요했다
그래서 육종을 했다
개발한 종자만 287종이다
버려지는 농산물이 아까웠다
그래서 효소액 만들었다
이젠 25가지 농가공품 생산하는
농업계의 희망이 됐다 전씨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정성을 들이는 것이 땅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핵심은 ‘환원’이다. 추수한 다음부터 이듬해 모내기 전까지 쌀을 제외하고 논에서 나온 모든 것을 때를 맞춰 다시 논으로 돌려준다. “탈곡하고 나면 논에 바로 생 볏짚을 깔아주고 볏짚이 마르기 전에 로터리를 쳐요. 볏짚이 마르면 안 돼요. 여기에 다시 왕겨와 쌀겨를 펴주고 나서 물을 대주고 발효제로 효소액을 뿌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땅속에서 미생물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요.” 그렇게 다섯 번 논을 갈아주면서 온갖 유기물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들고, 써레질을 한 뒤 30일간 물을 깊게 대주면, ‘뜬모’(제대로 심기지 않아 물 위에 뜨는 모)가 생길 일도 풀을 뽑을 일도 없다. 모내기를 준비한다며 전씨가 보여주는 모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포트’에 모를 키운다. 모판에서 키운 모는 한 포기가 15개 남짓인데, 포트 모는 하나 또는 둘, 많아야 3개 정도다. 이 모를 널찍한 논에 듬성듬성 심는다. “모를 촘촘히 심으면 병충해에 약해요. 모 사이사이 벌레도 많이 생기고요. 듬성듬성 심으면 모가 자라 새끼를 치면서 대가 굵고 튼튼해져요. 꼭 부채꼴 모양이 되죠. 수확도 많아지고요.” 농부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병충해와 잡초, 느닷없이 찾아오는 태풍 같은 자연재해다. 전씨는 이 문제의 해답을 땅과 식물에서 찾았다. 병해충을 막고 풀을 뽑느라 애쓸 것이 아니라 병해충이나 비바람에 끄떡없는 벼, 그리고 그런 벼가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건강한 환경에서 강하게 키운 아이는 감기가 유행해도 잠깐 콧물이나 흘릴까, 끄떡없잖아요. 식물도 마찬가지인 거죠.” 1984년 1월, 유기농민들의 단체인 정농회 회원으로 활동하다 만난 강대인(2010년 작고)씨와 결혼했다. 함께 벌교로 내려오면서 전씨는 유기농 ‘농부’가 되었다. 유기농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더 많았을 때였다. “유기농 하려면 굶어죽을 각오, 3대를 무식쟁이 만들 각오 하라는 말이 있었어요. 통일벼를 심어 모두가 증산에 매달릴 때였잖아요. 유기농을 하다 보니 병충해에 강한 종자,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 강한 종자를 개발해야 계속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육종을 시작한 거예요. 고생스럽지만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종자 한 움큼으로 시작한 녹미를 비롯해 적미, 흑향미 등등의 토종 종자들을 육종하고 개량을 거듭했다. 지금 전씨가 보유한 우리벼 종자만 287종에 이른다.
|
전양순씨와 ‘농업계의 아이돌’로 통하는 딸 강선아씨가 활짝 웃고 있다. 보성군청 제공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