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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소설 ⓒ전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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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소설 <1화>
아저씨. 여자의 목소리는 간신히 입술을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저씨. 사 번과 오 번은 산을 오른다. 한 손에는 랜턴을, 다른 손으로 여자의 팔을 하나씩 붙잡은 채. 서늘한 새벽녘 고요 속에서 보이지 않는 먼지가 일어났다가 가라앉는다. 아저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여자의 육중한 몸이 가볍게 떨린다. 사 번이 먼저, 오 번이 한발 늦게, 여자를 끌어당긴다. 걷지 않으려는 여자의 두 발이 하릴없이 끌려온다. 아저씨. 여자를 잡아당길 때마다 오 번의 마른 몸이 휘청거린다. 사 번의 걸음이 꼬이고 여자의 체중이 한꺼번에 뒤로 기운다. 사 번이 여자를 끌어당겨 중심을 바로 세운다. 사 번이 랜턴을 들이대자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여자의 얼굴이 드러난다. 노란 불빛 속에서 여자의 얼굴은 부풀어 오른 빵처럼 크고 환하다. 사 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우, 우리 어디로 가요?
여자가 얼굴을 찌푸린다. 사 번이 랜턴을 더 바짝 가져다 댄다. 여자의 노란 피부 위로 뾰루지나 주근깨 같은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불빛이 여자의 번들번들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저씨. 여자가 한쪽 눈을 찡그린다. 아저씨. 사 번은 랜턴으로 여자의 볼을 한 번, 두 번 가볍게 친다.
-조용히 하라고. 조용히.
-아! 아저씨. 아저씨!
-아가씨. 미안한데. 그렇게 큰 소리를 내면 내가 놀란다니까. 아가씨. 나는 심장이 안 좋아요. 그리고 좀 걸어요. 본인이 얼마나 무거운 줄 모르죠?
심장이 안 좋으면 오질 말던가. 사 번이 오 번을 향해 중얼거린다.
-그리고 내가 말했죠! 저 여자한테 존댓말 쓰지 말라니까. 가뜩이나 기가 살았는데 자꾸 존댓말이야.
-그래도 초면인데 반말이라니, 좀 그렇잖아요. 사실 아가씨가 잘 걸어만 주면 말할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아가씨? 초면에 반말은 싫잖아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냐고요? 아저씨.
여자가 엉덩이를 빼고 버틴다. 오 번이 걸음을 멈추고 전방을 훑는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다. 랜턴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불빛은 어둠 속에 푹푹 꽂혀 사라진다. 오 번이 랜턴을 움직여 사 번의 얼굴을 비춘다. 헬멧 속에 갇힌 사 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근데 정말,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
-말하면? 말하면 알아? 아느냐고요, 아저씨. 그거 좀 치워요.
사 번이 랜턴을 쳐낸다. 랜턴이 길바닥으로 떨어진다. 오 번이 랜턴을 주워든다. 그리고 다시 여자를 잡아당긴다.
-자, 봐요. 아가씨. 나도 모릅니다. 나도 처음이라고요. 그래도 어둡긴 너무 어둡네요. 일단, 걸어요. 걸어봐요. 겁내지 말아요. 나도 이런 야밤에 이런 산길을 오르는 건 처음이란 말입니다. 우린 다 피차 똑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 번은 여자의 팔을 힘껏 잡아끈다. 여자가 천천히 끌려온다. 여자의 신발이 산길에 긴 자국을 남긴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흙이나 모래 부서지는 소리가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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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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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치킨 런〉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2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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