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소설 <4화>
D조는 3구역을 맡았다. 3구역은 좁은 도로를 끼고 있는 낡은 상가 골목이었다. 3구역 입구는 주차한 트럭과 폐기물 자재들로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다. 순서와 규칙은 다 외고 있지? 팀장의 나른한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릴 때마다 오 번은 나지막하게 순서와 규칙을 읊어보았다.
약속한 대로 대오를 짜고 가게 입구를 둘러싼다. 유리창을 깨뜨리거나 매캐한 연기를 흘려보내면 좋다. 신호가 떨어지면 일제히 뛰어든다. 실내에 발을 내딛는 즉시 배트나 파이프를 휘두른다. 스윙은 크고 시원하게. 대번에 부서지거나 깨지는 물건을 공략한다. 어떤 경우에도 망설이지 말 것.
과장의 지시대로 조원들은 텅 빈 가게를 차례로 지났다. 어둠 속 풍경은 황량하고 스산했다. 이미 오래전에 철거가 끝난 동네처럼. 망가진 자리를 드나드는 바람 소리와 한꺼번에 땅을 딛고 나아가는 발소리를 제외하면 골목은 죽은 것처럼 적막했다. 그리고 한참 만에 정적이 깨졌다. D조가 막 골목의 중간 지점을 통과할 무렵이었다. 희미한 노랫소리 같은 게 들리더니,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펄럭이는 깃발이 하나둘 나타났다.
-저게 뭐예요?
-아, 저 새끼들. 골 때리는 새끼들.
오 번이 말하고 사 번이 답하자마자 팀장의 목소리가 바짝 다가왔다.
-오늘 밤엔 꼭 해결하자고. 보너스 받으면 서로서로 좋잖아.
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게의 실체가 드러났다. 다 쓰러져가는 오 층 빌딩을 간신히 이고 서 있는, 일 층 귀퉁이 가게였다. ㅏ, 라는 모음 하나만 남긴 채 간판 속 글자는 다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유리창도 모조리 뜯겨 나간 뒤였다. 입구는 문 대신 얇은 비닐 막을 쳐놓아 멀리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고 사람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나무 각목을 손에 든 채로. 통 밖으로 불길이 치솟을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물들었다. 오 번이 심호흡을 했다. -막상 보니까 이건 좀 오싹한 일이네요. 이런 걸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이 자리에 이렇게 서 있으니 별생각이 다 드는 게 말입니다.
오 번이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누군가 대답을 해주겠거니 했는데 조원들이 우르르 달려나갔다. 연장을 높이 쳐들고. 오 번은 뛰어나가는 조원들의 어깨나 몸에 치이면서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조원들이 가게 내부로 모두 진입하는 동안에도 오 번은 제자리를 지켰다.
-이봐. 지금이라도 하기 싫으면 조용히 가도 좋아.
팀장이 이죽거리지 않았다면 일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팀장은 아예 소란스러운 가게를 등지고 서서 오 번과 눈을 맞추었다.
-괜찮다니까. 그냥 가도 좋아요. 일하려는 사람은 줄 섰다니까. 가요. 가란 말이오.
-아, 아니요. 해, 해야지요.
-자신 없으면 가라니까.
오 번은 과장을 밀치고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쇠파이프가 땅에 끌리며 탕탕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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