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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1 11:16 수정 : 2013.06.19 14:16

김혜진 소설 <6화>



가게 내부는 아수라장이었다. 뒤늦게 뛰어든 오 번은 가게 한가운데에 우뚝 멈춰 섰다. 누군가는 각목을 휘두르는 사내와 대치 중이었고, 또 누군가는 청년들에게 둘러싸여 진땀을 빼고 있었다. 살 만하다 싶으면 여자들이 나타나 돌을 던졌고, 재를 뿌렸고, 뜨거운 물을 퍼부었다. 나중엔 누가 누구를 때리고, 누가 누구에게 맞고 있는지조차 헛갈렸다. 각목과 배트, 쇠파이프 같은 것들이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무차별적으로 가격할 때마다 날카로운 소음이 솟았다. 가게 내부가 뜨거워졌다. 오 번은 허둥거렸다.

-여러분!

그리고 누군가 사과 상자를 디디고 올라섰다.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퉁퉁한 여자였다. 여자는 한 손에 조그마한 쪽지를 들고 여러분, 여러분, 외쳐댔다. 여자가 악을 쓸 때마다 사과 상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며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명백한 불법 폭……. 아, 종이.

여자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우물쭈물했다. 쪽지를 놓친 거였다. 반으로 반듯하게 접힌 종이가 가게 바닥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여자는 난감한 듯 미간을 찌푸리곤 상자에서 내려왔다.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미처 여자가 다 내려오기도 전에 사과 상자 귀퉁이가 부서졌다.

-아, 이 골 때린 년, 또 있네.

사 번이었다. 사 번은 사과 상자를 걷어차고, 순식간에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허리가 꺾인 여자가 사 번의 허리를 껴안았다. 씨름이라도 하는 자세로. 여자가 사 번을 떠다밀었다. 중심을 잃은 사 번이 휘청거렸다. 여자가 사 번의 옆구리를 깨물고. 악. 비명과 함께 사 번이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여자의 몸이 사 번의 몸 위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저만치 서 있던 오 번이 뛰어들었다. 사 번과 여자를 향해. 고마워할 줄 알았던 사 번은 여자의 몸에 깔린 채 손사래를 쳤다.

-아, 아저씨 저리로 가요, 가라니까.

-네?

-아, 내가 할 수 있다니까, 가라고요, 딴 데도 많잖아.

-도와주려고 그러죠. 자, 일어나 봐요.

사 번은 여자의 몸을 떠밀고 냉큼 일어났다. 그사이 여자가 배트를 가로채 몸을 일으켰다. 여자의 품에서 배트는 아담해졌다. 깜찍한 배트를 쥐고 여자가 사 번과 오 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결심한 듯 배트를 휘둘렀다.

-주, 죽을래? 내, 내놔. 내놓으라고.

배트는 사 번의 손가락을 가격하고 어깨, 허벅지, 정수리 같은 곳을 재차 겨냥해왔다. 사 번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목소리를 키웠다. 쇠파이프를 쥔 오 번도 자꾸 물러나기만 했다. 여자는 두 사람에게 다가오며 배트를 마구 휘둘렀다.

-딴 데도 많잖아. 저리 좀 가라고요. 좀, 가라고.

-내 일 네 일이 어디 있나요. 다 같이 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아가씨? 그러지 말고 이리 줘요. 그거, 너무 위험하잖아. 아가씨가 그런 걸 쥐고 있으면 어쩝니까.

배트가 날아왔다. 사 번의 헬멧을 향해서였다. 딱, 소리가 났고, 둔중한 느낌이 사 번의 머리통을 붙잡고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오 번이 쇠파이프를 휘둘러보기도 전에, 또 배트가 날아왔다. 딱. 다시 사 번의 머리통이었다. 결국 오 번이 쇠파이프를 내던지고 여자에게 뛰어들었다. 여자의 허리를 힘껏 껴안았다. 숨이 막히도록.

-내 몸에 손대지마!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아가씨, 그게 아니라. 아가씨가 자꾸 우리를 때리니까.

여자가 몸부림칠 때마다 깡마른 오 번의 몸이 들썩거렸다. 오 번이 여자의 손을 제압하고 뒤에서 여자를 끌어안았다. 사 번이 여자에게서 배트를 빼앗아 들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말라니까! 아저씨. 이거 놔요! 놓으라고요!

-야, 너 가만있어. 아, 이 미친년.

사 번이 배트를 세워 여자의 몸을 찔렀다. 어깨나 가슴, 배처럼 폭신폭신한 곳을. 여자가 악을 썼다.

-어때? 아프지? 아가리 안 닥치면 콱 터트리는 수가 있어.

사 번이 배트로 여자의 가슴을 꾹 눌렀다. 오 번의 두 팔 안에서 여자의 횡격막이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팀장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거기! 놀러 온 줄 알아? 제대로 처리 못 해?

그는 늙수그레한 중년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 가게를 빠져나가는 참이었다. 사 번과 오 번은 상체를 잔뜩 구부린 채 끌려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대로 겁을 줘야 할 거 아니야. 겁을. 도대체 며칠째야. 아, 아, 저 미친년 아직 살아 있네.

과장은 배트를 든 사 번과 여자를 안은 오 번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너네 내일도 일하고 싶지? 그년이 내일 안 보이면 일하고, 아니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

팀장이 중년 사내의 목덜미를 잡고 가게를 완전히 빠져나갔다. 사 번과 오 번도 끌려 나오지 않으려는 여자를 끌고 가게를 나왔다. 울긋불긋한 경광등 불빛이 황량한 건물 위를 어지럽게 떠다녔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디선가 자꾸 플래시가 터졌다. 셋은 가게 앞에 잠깐 멈춰 섰다.

-아, 아무래도 여기선 곤란하겠는데요. 이런 데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그렇지요?

-산으로 가죠.

-산이라뇨?

-아저씨, 다들 산에 가잖아. 영화나 뭐 그런 거 보면.

사 번은 낄낄 웃었다. 그곳으로 데리고 가 겁을 준 선례가 있다고 기억을 더듬거리기도 했다. 두 번인가, 세 번쯤인가, 아무튼. 그래요, 그럼. 사 번과 오 번은 여자의 양팔을 끌고 동네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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