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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2 10:44 수정 : 2013.06.19 14:16

김혜진 소설 <7화>



-이렇게요?

오 번이 여자의 뺨을 때린다. 두껍고 거친 오 번의 손바닥이 여자의 볼에 살짝 닿았다가 금방 떨어진다. 여자의 동공이 커진다.

-장난해요?

사 번이 가래를 돋우어 침을 뱉는다.

-그럼 이 정도?

오 번이 다시 여자의 뺨을 때린다. 이번엔 좀 더 세게. 여자의 고개가 약간 틀어졌다가 정면으로 되돌아온다. 여자는 입술을 꼭 다물고 오 번의 두 눈을 노려본다.

-아저씨, 사람 때려본 적 없어?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마누라나 한두 번 때려봤지. 모르는 사람을 때릴 수가 있나요. 그것도 젊은 아가씨를. 초면인데, 아무래도 곤란하지요.

오 번이 대답한다. 사 번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가격한다. 이렇게, 이렇게요. 이 정도는 되어야지. 사 번의 손바닥이 차갑고 컴컴한 공중을 가른다. 훅훅하는 바람 소리가 빠져나온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른 게, 나는 엄두가 안 나네요. 그럼 그, 저기, 제가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아무나 잘하는 사람이 하면 그만이지.

-저기요, 이런 건 신참이 하는 거라고 몇 번 말해요?

여자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다. 오 번이 다시 손바닥을 펼치고 여자의 뺨을 조준한다. 시범적으로 공중을 두어 번쯤 때려 보면서.

-처음부터 이런 데 안 나왔으면 좋았잖아요, 아가씨.

오 번은 한 손으로 다른 쪽 손바닥을 주무르며 눈치를 본다.

-이거 참. 미안해요. 미안한데, 아가씨도 아까 들었다시피 이런 것도 내 일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오 번은 여자의 뺨을 때린다. 한 번, 두 번, 반대쪽으로 세 번. 여자의 고개는 오뚝이처럼 금세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오 번은 한 손으로 여자의 턱을 붙잡는다. 아저씨. 아저씨. 오 번은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여자의 눈동자가 부풀어 오른다.

-이렇게, 이렇게 있어요. 움직이지 말아요. 이번엔 좀 아플 수도 있어요.

짝. 그니까 이런 데 안 나오면. 짝. 좋잖아요, 나도 일이라 어쩔 수가 없어요. 짝. 아파요? 미안해요, 이런 것도 일이라고. 짝. 나도 오늘 처음 왔어요. 짝. 안 오면 좋은데. 짝. 돈을 벌어야 할 거 아닙니까. 짝.

침이나 땀이나 눈물 같은 것들로 여자의 얼굴이 축축해진다. 오 번이 젖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른다.

-아가씨, 울어요?

오 번이 손바닥으로 여자의 젖은 볼을 만진다. 여자의 볼이 뜨겁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나한테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여자의 발음이 한꺼번에 뭉개진다.

-잘못이 왜 없어. 거기서 설쳐댄 게 누군데. 미친년.

사 번이 여자의 눈앞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댄다. 여자가 한꺼번에 콧물을 들이켜고 목을 가다듬는다.

-거기 있으면 안 돼요? 먼저 쳐들어와서 때리긴 왜 때려. 사람을 왜 때리느냐고.

사 번이 검지를 세워 여자의 이마를 한 번, 두 번 민다. 여자의 머리가 나무둥치를 콩콩 때린다. 오 번이 사 번의 손을 슬며시 물리친다.

-아가씨, 내가 말했잖아요. 이게 일이라고. 일에 이유가 어디 있어. 근데 아가씨는 도대체 왜 거길 자꾸 오는 겁니까? 안 오면 좋잖아요. 이렇게 얼굴 붉힐 일도 없고 힘들게 산에 올라올 필요도 없고.

여자가 크게 숨을 내쉰다. 입술 새를 빠져나온 입김이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아저씨.

-있잖아요. 저도 이게 제 일이에요. 저는 뭐 오고 싶어서 오는 줄 아세요? 거기 얼마나 추운데요.

-까고 있네.

사 번이 위협적으로 배트를 휘두른다. 여자가 움찔한다.

-이런 거 경험 있으면 취직 잘 된다고 해서 하는 거라고요. 저도 삼 학년인데. 이런 거 하고 싶겠어요.

-에, 아가씨 대학생이야? 근데 그런 이야기는 또 처음 듣네. 거기 있는 게 취직에 도움이 됩니까. 우리 딸은 그런 이야기 없던데.

-그냥 시민단체 같은 거예요. 나도 잘 모른다고요. 왜 나한테, 나한테만.

시민단체요, 하면서 오 번이 사 번을 돌아다본다.

-시민단체는 무슨. 일 있다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깽판 치는 새끼들 모아놓은 데 아냐.

사 번은 여자 앞으로 다가와 맞아, 아니야, 하면서 볼을 톡톡 두드린다. 여자의 두 눈이 물기를 머금고 부풀어 오른다. 사 번이 히죽거린다.

-깽판 치니까 좋지. 엿 먹이니까 좋지. 미친년. 그저께는 이만 원이나 깎였어. 너 때문에!

-근데 아가씨, 그럼 아가씨도 따로 돈을 받고 그럽니까?

오 번이 질문하고 여자가 울먹인다.

-아저씨, 근데 나 이거 돌멩이 언제 치워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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