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9화>
밤이다. 두 개의 랜턴이 산길을 내려온다. 반짝이는 눈알처럼. 랜턴은 동그랗게 어둠을 뚫고 걷는다. 요동치거나 흔들리는 법 없이, 가지런하고 나란하게.
-별일 없겠죠? -가고 있잖아. 여자를 둘러업은 오 번이 가쁜 숨을 내쉰다. 길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것만 같다.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건지 알 수 없다. 사 번과 오 번이 다급해진다.
-일이 잘못되면 일당 못 받을지도 몰라요. 모레가 밸런타인데이인데. 이번엔 꼭 커플링 사야 한다고요. 아, 씨발. 내가 그것 때문에 존나게 일하는지도 모르고. 씨발 년. 사 번이 투덜거릴 때마다 랜턴이 흔들린다. 겉으로는 상처가 없고, 고르게 숨을 쉬는 것으로 보아 여자는 잠깐 기절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다. 여자의 체온과 맞닿은 오 번의 등줄기로 더운 땀이 흘러내린다.
-근데 아저씨, 내일도 올 거예요? -와야지. -아저씨, 어디에서 타요? -구로. 오 번이 간신히 말을 뱉는다. 앞은 보이지 않고, 여자의 체중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무릎이 꺾인다. 눈꺼풀 주변을 뒤덮은 땀 때문에 좁은 산길이 촉촉하게 부풀어 올랐다가 푹 꺼진다.
-별일 없겠죠? 아, 근데 이러고도 얘 내일 또 나오는 거 아니야? 오 번이 잠깐 멈춰 서서 여자를 바투 업는다. 사 번이 여자의 몸을 오 번의 등 위로 떠밀어준다.
-그럼, 내일은 더 잘해야지. -잘해요? 뭘요? 뭘 잘해요? -뭐든. 잘해야지. 오 번은 찬 공기를 들이켜고 뜨거운 숨을 내뿜는다. 사 번이 앞장서고 오 번이 따라 걷는다.
-좀 빨리 걸을 수 없어요? 사 번이 자주 돌아다본다.
-지금 가고 있잖아. 여자는 축 늘어진 채 움직임이 없다. 사 번이 오 번 발밑으로 불빛을 비추어준다. 오 번이 발을 재게 놀린다.
(이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