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3 06:01
수정 : 2018.05.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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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나우재단의 로고. 재단 이름 위에 있는 로마자는 숫자 10000을 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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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생각하자는 ‘롱나우’
미래를 현재 연장선상에서 생각
1만년 시계, 예측 게임 등 펼치며
책임있는 행동에 대한 각성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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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나우재단의 로고. 재단 이름 위에 있는 로마자는 숫자 10000을 뜻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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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이란 말은 얼마만한 시간 길이를 가리키는 표현일까? 1초, 1분, 1시간, 하루, 한 달?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이/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서 지킬 박사가 약물을 투여하기 전에 부르는 이 노래에서 ‘지금 이 순간'은 ‘오늘'이다.
그런데 장기적 사고 확산 운동을 펼치는 미국 롱나우재단의 시간개념은 독특하다. 과거-현재-미래를 따로 떼서 보지 않고 하나의 시간 단위로 본다. ‘지금 이 순간’은 말하는 순간 과거가 되면서 동시에 미래를 향해 가기 때문이라는 인식에서다. 세상을 좀더 길게 보자는 취지다. 이를 위해 이들은 롱나우(long now)라는 새로운 시간개념을 만들어냈다. 롱나우는 2만년의 시간을 포괄한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1만년 전부터 디지털 혁명기인 지금, 그리고 향후 1만년에 이르는 기간을 단절이 아닌 연장선상에서 보려 한다. 사실상 인류문명 전 기간을 하나의 시간 단위로 묶는 셈이다.
왜 이런 관점을 고안해냈을까?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장기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 변화 속도는 `더 빠르고 더 싼 것'을 우선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눈앞 효율에 치우치다 보면 장기적 생존기반이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더 느리고, 더 나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개념이 바로 롱나우다. 롱나우는 1만년 프레임에 맞춰 연도 표기도 다섯자리를 쓴다. 예컨대 ‘2018년’은 ‘02018년’이라고 표기한다.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롱나우재단은 몇가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1만년 동안 멈추지 않고 가는 롱나우 시계 제작 프로젝트가 있다. 일명 `1만년 시계'라고 불린다. 이 시계는 1년에 한 눈금, 100년에 한 번 종소리를 내고, 1000년에 한 번 뻐꾸기 알람 소리를 낸다. 현재 서부 텍사스의 한 산속에서 설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언어를 보존하는 로제타 프로젝트도 있다. 7천여개에 이르는 세계 언어 중 절반 이상이 다음 세기까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언어들이 사라지기 전에 한 장의 디스크에 담아 후손에게 전해준다는 프로젝트다. 소멸 가능성이 높은 언어의 샘플들을 손바닥만한 크기의 니켈합금 디스크에 저장한다. 현재 2500개가 넘는 언어로 된 7만여 페이지의 문서를 수집한 상태다. 디스크에 담긴 문서는 성서의 <창세기> 첫 3장과 세계인권선언문 등이다. 한국어도 물론 포함돼 있다.
멸종 동식물 복원 프로그램인 유전자 구조 프로젝트에선 현재 투구게, 여행비둘기, 매머드 등의 복원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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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과학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1만년 시계 시제품.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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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건 미래 예측에 돈을 거는 `롱베츠' 프로젝트다. 돈을 거는 이유는 책임있는 예측을 유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반적인 내기나 도박과 다른 점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긴 사람은 상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현재 750여건의 예측이 올라와 있다.
롱베츠 1호는 구글 이사 레이 커즈와일이 참여한 인공지능 내기다. 2029년까지 인공지능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것인가를 두고 2만달러가 걸려 있다. 전 구글 회장 에릭 슈밋은 2030년까지 조종사 없는 항공기는 출현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2000달러를 걸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 편집장 출신인 케빈 켈리는 2060년 세계 인구가 2003년보다 적을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다.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는 `2000년에 살아 있는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은 2150년에도 살아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밖에 2030년까지 중국이 달 소유권을 주장할 것, 2035년까지 체르노빌국립공원이 생길 것, 2025년까지 빅뱅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우주론이 나올 것 등도 눈에 띄는 예측들이다. 2020년까지 1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생물테러가 발생할 것이라는 음울한 예측도 있다.
억만장자 주식투자가 워런 버핏이 참여한 예측은 지난해 말 승부가 났다. 버핏은 2008년 1월부터 2017년 12월31일까지 10년 동안 에스앤피(S&P) 인덱스펀드 수익률이 헤지펀드의 펀드 수익률을 앞설 것이라는 데 돈을 걸었다. 헤지펀드의 명목 수익률이 높다 하더라도 각종 수수료를 고려하면 투자자들의 몫은 인덱스펀드보다 못하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승자는 버핏이었다.
롱나우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미래는 결국 오늘 우리가 하는 행동의 결과라는 점이다. 롱나우의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미래를 현재의 연장선상에 놓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미래 예측과 새로운 상상력을 토대로 더 바람직한 미래의 씨앗을 찾아내 키워나가려 하는 대안미래와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책임을 강조하는 롱나우와 상상을 강조하는 대안미래. 미래를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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