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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8 17:36 수정 : 2014.05.19 18:05

[김규원의 도시잡기] 스페인<3>
자연 모티브로 부자연스럽게…동화나라처럼
3명의 유명건축가 건물 3채가 한곳에 나란히

안토니 가우디의 대표 건축 가운데 하나인 카사 밀라.

바르셀로나에는 안토니 가우디의 건물들이 매우 많다. 많은 여행 책자에서 가우디의 건물들을 돌아보는 코스를 소개할 정도다. 성가족 성당 외에 가우디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물로는 아파트인 카사 밀라(1910년 완공)를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바르셀로나의 도심 한복판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잡고 있고, 그 맨 위층엔 가우디 박물관도 마련돼 있다. 이 건물의 외형은 다른 가우디 건물과 마찬가지로 독특한데, 마치 물결치는 듯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사이사이에 창문이 나 있다. 이 물결치는 외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돌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려면 아마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카사 밀라의 내부 아래쪽에서 하늘을 바라본 모습. 카사 밀라는 4개의 크고 작은 원통형 건물을 붙여 놓은 모습이다.

건물 안 아래층에서 하늘을 훤히…지붕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내부는 얼핏 보면, 한 동그란 원통과 한 타원형 원통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두 원통을 두 개의 작은 원통이 연결하고 있다. 곧 네 개의 크고 작은 원통이 서로 연결된 모습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아주 정말 소박한 가우디의 머리 동상이 전시돼 있고, 그곳으로부터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통해 건물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돼 있다. 건물 내부 아래층에서는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건물 모양에 따라 원형, 타원형의 하늘을 볼 수 있다. 건물 안에서 직접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피맛골을 파괴하고 들어선 서울 르 메이에르 건물 안에서도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지만, 자연스러움이나 스케일의 적절함에서 카사 밀라를 따라갈 수 없다.

카사 밀라의 맨 꼭대기층에 있는 가우디 박물관(사진 위)과 자연물을 닮은 독특한 돌 조각들이 가득한 옥상.

이 건물의 꼭대기층은 가우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의 전시물들을 돌아보면 가우디 건축의 모티브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자연물이다. 이를테면 옥수수나 솔방울, 나무 줄기와 가지 같은 것이 모두 가우디 건축의 소재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가우디는 건물뿐 아니라, 가구도 만들었는데, 가구에도 그의 모티브들은 잘 살아있다. 이 건물의 중간에 한 층은 관광객들을 위해 전시실로 비워놓았다. 다른 층들은 여전히 `아파트‘로 쓰인다고 한다. 이 전시실로 들어가면 20세기 초의 부유층이 어떤 구조의 건물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 건물을 구경하는 순서는 먼저 밖에서 바라보고, 그 다음에 건물 안의 아래층에서 올려다보고, 마지막으로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것이다. 이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면 마치 디즈니랜드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환상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풍경을 만난다. 지붕에는 마치 이스터 섬의 석상이나 한국의 장승, 하르방과 비슷한, 기괴한 모습의 조형물들이 상당히 많이 만들어져 있다. 무슨 의도로 이런 조형물들을 이렇듯 많이 세워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건물의 지붕에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이 조각들을 따라 몇 번이고 돌게 된다. 사람들에게 어떤 흥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음식점 음악궁전 병원 박물관 등 곳곳에 근대 건축가들 건물

가우디의 또다른 유명한 작품은 구엘 공원(1914년)이다. 바르셀로나의 북쪽에 위치한 이 구엘 공원은 품위 있는 놀이터라고 할 만한 공간이다. 카사 밀라와 마찬가지로 많은 구조물에 가우디의 아이같은 상상력이 배어 있다. 이 공원은 들어가는 문부터 동화적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같은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독특한 문이다. 그 문을 통해 들어가면 역시 동화적인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올라가면 수많은 기둥으로 이뤄진 공간이 나온다. 가우디를 위한 일종의 제단이나 신전처럼 보인다.

가우디의 또다른 대표 건축물인 구엘 공원의 입구 계단, 위쪽으로는 수많은 기둥으로 이뤄진 신전 비슷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 건물을 보고 나면 주변의 운동장에서 쉬거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가우디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운동장 가의 벤치도 물결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우디다운 디자인을 가진 기둥들, 지붕들이 잇따라 나타난다. 가우디가 살았던 집도 이 구엘 공원 안에 남아 있다.

가우디가 살던 집도 구엘 공원 안에 있는데, 이것 역시 동화같은 집이다.

이밖에도 가우디의 건축은 바르셀로나 신시가지 곳곳에 남아 있는데, 가르시아 거리에 주택으로 지어진 카사 바트요(1899년)가 있다. 카사 바트요에서는 사람의 머리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기괴한 베란다를 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바로 옆에는 바르셀로나의 또다른 유명 건축가인 호셉 푸이그가 설계한 주택 카사 아마트예르(1900년)가 있다. 또 이 블록의 남쪽 끝에는 바르셀로나의 또다른 유명 건축가인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의 카사 레오 모레라(1906년)가 있다. 이렇듯 3명 건축가들의 유명한 건물 3채가 한 거리를 따라 한 블록에 있다는 것은 매우 부러운 일이다. 한국 건축가로 치면, 김수근과 김중업, 김석철의 건물이 같은 블록 안에 놓인 셈이다.

현재는 음식점으로 사용되는 가우디의 카사 칼베트.

역시 바르셀로나의 신시가지 쪽에는 현재 음식점으로 사용되는 카사 칼베트(1899년)가 있는데, 이 건물은 성가족 성당이나 구엘 공원,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단정해 보인다. 외부의 선이나 장식이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처리돼 있다.

가르시아 거리에는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오른쪽에서 두번째 건물)와 역시 유명 건축가인 호셉 푸이그의 카사 아마트예르(오른쪽에서 세번째 건물)가 나란히 서 있다.

바르셀로나에는 가우디 말고도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활약한 많은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작품이 도처에서 서 있다. 마치 우리가 뉴욕에 가서 여러 현대 건축가들의 마천루들을 찾아볼 수 있듯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여러 근대 건축가들의 건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루이스 도메네크의 산트 파우 병원 건물.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다음으로 유명한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인데, 그의 유명한 건축으로는 바르셀로나 도심에 있는, 외부도 화려하고 내부도 아름다운 카탈라나 음악 궁전, 바르셀로나 북쪽에는 산트 파우 병원의 여러 건물들이 있다. 모더니즘 시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 동물학 박물관(1888년)은 원래 바르셀로나 박람회를 위해 루이스 도메네크가 설계한 지어졌다.

또 한 명의 유명한 바르셀로나 건축가는 호셉 푸이그는 앞에서 말한 카사 아마트예르 외에도 바르셀로나 모더니즘의 중심이었던 카페 엘스 콰트레 가츠가 들어있는 카사 마르티(1896), 카사 마카야(1901) 등을 설계했다.

바르셀로나의 또다른 유명 건축가인 호셉 푸이그의 카사 마르티. yearofthedragon.

모더니니스트라기보다 아르 누보 건축가가 더 어울릴 듯

물론 이들 모더니즘 건축가 가운데서도 가장 튀는 것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가우디의 건물들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건물들은 좀더 수수하고 실용적으로 보였다. 사실 모더니즘 건축의 본질을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을 버리고, 단순하고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때 가우디를 모더니즘 건축가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사조로 일어난, 좀더 장식적인 ‘아르 누보’의 건축가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물론 가우디도 시대에 따라 그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의 후기, 완숙기 시절의 건축 스타일은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우디의 건축은 매우 화려하고 장식적이고 상징적이고 비유적이다. 그의 건축은 자연물의 디자인으로부터 나왔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움과도 거리가 있다. 아마도 가우디는 자연물을 모티브로 삼아 동화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건물을 보면, 동화나 만화영화, 디즈니랜드, 환상 영화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의 건축물을 만나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즐거워지고 뛰놀고 싶어진다. 그런 매력이 사람들이 굳이 바르셀로나를 찾아가 가우디를 찾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외국인들이 바르셀로나를 찾아가는 이유를 꼽는다면 가우디는 아마도 아주 상위에 들 것이다.

그러나 가우디의 건축이 과연 사회에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우디의 건축은 현실보다는 자연이나 초현실에 발딛은 것으로 보인다. 여행이나 답사로 그의 건물을 찾아가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이 그의 건물에서 살아가는 것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의 건물들은 조금 안정감이 부족해 보이고, 조금 자연스럽지 않기도 하다. 성가족 성당에서 봤듯 그의 건물들을 짓는 데는 엄청난 건축 비용과 기간이 든다. 보통의 건축주, 시민들이 누리기에는 너무 부담스런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건축은 삶을 담기보다는 꿈을 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글·사진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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