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14 15:52
수정 : 2014.08.14 15:53
말하는 좌뇌와 노래하는 우뇌
말하기 영역과 노래하기 영역 부분적으로 겹쳐
|
그림 출처: http://www.neuroskills.com/brain-injury/cerebellum.php
|
시를 읊는 것과 시를 가사로 하여 노래를 부르는 것, 운율에 맞춰 말하기와 선율을 갖춰 노래하기는 어떻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부분적으로 별개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말하기와 노래하기 과정은 부분적으로는 공통적으로 중첩된 처리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볼레로’ ‘세헤라자드‘ 등을 작곡한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가 모리스 라벨은 말하기와 노래하기에 있어 뇌의 중첩된 기능영역 연구에 있어 특별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50대에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면서 실어증을 앓았습니다.
|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I2BPi0xeERg
|
기존의 기억은 잃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전에 만든 곡을 다시 떠올려 낼 수는 있었지만 더 이상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말하기 능력의 상실과 노래하기 또는 노래 만들기 능력의 상실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사례가 되어 있는 것이죠.
음악 선율의 인식을 담당하는 오른쪽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주로 왼쪽 뇌에서 담당하는 말하기 운율이나 억양을 받아들이는 능력에 큰 장애는 없다고 얘기되는 경우가 있죠. 하지만 말하기와 노래하기를 부분적으로나마 함께 관장하는 뇌의 처리과정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음악 선율을 지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말하기에서의 운율을 지각하는 데도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결과에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은 뇌손상, 특히 음악 선율을 관장하는 오른쪽 뇌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주로 왼쪽 뇌에서 관장하는 말하기 억양이나 그 억양의 기능적 의미를 이해하고 전달하는 능력에도 손상을 입은 사례를 숱하게 접한다고 말합니다.
폭넓게 얘기하자면 노래하기와 말하기 과정에서 뇌 역할에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노래하기 과정에서는 오른쪽 뇌가 더 활성화 되고, 말하기 과정에서는 왼쪽 뇌가 더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래하기와 관련하여, 훈련된 가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보면 노래를 부를 때 청각피질 영역과 촉감, 온도, 고통 같은 감각과 관련된 피부와 내장으로부터 입력을 받는 뇌의 두정엽 중앙열의 뒤쪽에 있는 영역, 그리고 운동피질과 관련된 영역이 고도로 활성화 되어 음정을 정확하게 맞추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들은 말하기와는 상대적으로 큰 연관이 없는 영역들이라고 하는 군요.
반대로 말하기에는 대뇌 좌반구의 브로카 영역(위 그림 왼쪽 위 Broca‘s area)과 베르니케 영역(위 그림 가운데 부분 Wernike’s area)이 많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외과의사 폴 브로카가 대뇌 좌반구 전두엽을 다쳐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담은 논문을 발표해 알려진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를 관장하는 영역인데요, 전두엽의 운동피질(위 그림 위쪽 가운데 Primary motor cortex)에서 말할 때 입과 혀의 운동을 제어하는 부분과 붙어 있어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면 말을 이해하거나 읽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독일의 신경병리학자인 칼 베르니케가 브로카 영역과는 다른 대뇌 좌반구의 손상에 의해 언어기능에 장애가 생긴 사례를 발표해 알려지게 된 베르니케 영역은 대뇌 측두엽 표면 청각피질(위 그림 가운데 Primary auditory cortex) 뒤쪽에 있는 데요, 베르니케 영역은 말의 이해를 담당하는 영역으로서 이 부분을 다친 사람은 겉으로 보면 말을 잘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용이 모순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말하기를 할 때에는 뇌에서도 왼쪽 뇌의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이 노래하기를 할 때와는 다르게 훨씬 더 활성화 되는데 이 부분을 다치면 말하기에 커다란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죠. 맨 위에서 언급한 모리스 라벨의 경우 베르니케 영역을 다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르니케 영역은 뇌 왼쪽에 있는 것으로서 주로 말하기를 담당하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음악을 관장하는 오른쪽 뇌는 다치지 않았는 데 오른쪽 뇌에서 주로 담당하는 음악활동 즉, 왜 작곡을 더 이상은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쉽게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의 연구 사례들을 통해 추정해 보면, 뇌에는 말하기와 노래하기에 관련된 부분적으로 중첩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라벨이 주로 말하기를 담당하는 왼쪽 뇌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과도 겹쳐져 있는 뇌의 노래하기와 음악적 지각 능력에도 손상을 입어 작곡을 더 이상은 하지 못하게 된 것일 가능성이 큰 셈이죠.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1870777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