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9.12 17:16
수정 : 2014.09.12 17:16
말이나 노래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 실험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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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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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은 송창식, 조용필, 조영남 등의 노래도 좋아했다고 합니다. 술자리는 물론 길거리에서도 일부러 음을 높게 잡아 큰 소리로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하죠. 물론 음악에 관한 시도 많이 남겼습니다.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천천히 탁자 아래로 쓰러졌다”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중에서)
“걸어가면서도 나는 기억할 수 있네 그때 나의 노래 죄다 비극이었으나 단순한 여자들은 나를 둘러쌌네 행복한 난투극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어리석었던 청춘을, 나는 욕하지 않으리”(‘가수는 입을 다무네’ 중에서)
“나에게는 낡은 악기가 하나 있다. 여섯 개의 줄이 모두 끊어져 나는 오래 전부터 그 기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때 나의 슬픔과 격정들을 오선지 위로 데리고 가 부드러운 음자리로 배열해주던’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가끔씩 어둡고 텅 빈 방에 홀로 있을 때 그 기타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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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이 좋아했던 가수 송창식의 ‘고래사냥’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WN4jT3gc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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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이 좋아했던 가수 송창식의 ‘왜불러’ (영화 ‘바보들의 행진’ 삽입곡)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5SWH1SP57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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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에서처럼 기형도 시인은 실제로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하기도 했는데요, 조카를 위하여 자장가를 만들고 군대 가기 전 이별의 심정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으며 자신이 즐겨 읽던 신대철 시인의 시를 가사로 하여 선율을 붙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기형도 시인처럼 노래나 작곡까지는 아니지만 기형도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살았던 식물들도 소리를 냈을 것입니다.
나무나 풀들은 체관이나 물관으로 영양분과 물을 빨아들일 때 작은 공기 방울을 터뜨려 소리를 내니까요 바람에 이파리가 스치거나 해서 나는 소리가 아닌 자체적으로 내는 소리 말입니다.
박테리아조차도 몸의 떨림을 통해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니 식물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는 것이죠. 나무들이 제 몸을 통해 물방울을 터뜨리는 소리는, 소리나 빛,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압전기 장치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초음파로 교각이나 건물의 갈라진 틈을 탐지해내는 데 쓰이는 이 압전기 장치는 팡하고 터지는 식물의 물방울 소리를 증폭시켜 오실로스코프(전류 변화를 화면으로 보여주는 장치)에서 그 파형을 볼 수 있게 합니다.
호주 웨스턴대학의 식물생리학자 개글리아노 교수는 “식물들이 소리에 반응하며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소리의 목적은 식물들끼리 서로 소통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그 소리들에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담겨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한 말소리의 의미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 우리나라에서 있었습니다. 2012년 프로축구단 포항 스틸러스팀은 숙소 식당 입구 양쪽에 각각 고구마 화분을 놓고 선수들이 한쪽 고구마에게는 “사랑스런 고구마야, 넌 참 예쁘구나“라는 말을, 다른 한 쪽 고구마에게는 ”못생긴 고구마야 넌 안 돼”라는 말을 60일간 반복해서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같은 공간에서 똑같이 물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말을 듣고 자란 고구마가 나쁜 말을 듣고 자란 고구마보다 훨씬 더 줄기도 많고 무성하게 잘 자랐다고 합니다. 긍정의 말이 가진 효과를 체감한 선수들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말을 건네며 그 힘으로 2012년과 2013년에 FA컵 우승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외국에서는 디스커버리 채널 ‘호기심 해결사’(MythBusters 직역하면 ‘신화파괴자’) 프로그램이 의미를 가진 말소리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60개의 콩 모종을 3개의 비닐하우스에 나눠 심고 한 곳에는 사랑스런 칭찬의 말이 담긴 노래, 다른 한 곳에는 잔인한 경멸의 말이 담긴 노래, 그리고 나머지 한 곳에는 침묵만 감돌게 했다고 합니다. 60일 동안 그와 같은 실험을 진행했더니 놀랍게도 아무런 말과 음악소리도 들려주지 않은 곳의 콩들이 제일 성장이 더뎠다고 하네요. 다른 두 곳 비닐하우스 콩들에 비해 콩깍지도 작고 줄기나 잎의 양과 무게가 적었다고 합니다.
특이한 것은 좋은 뜻의 말이 담긴 음악과 나쁜 뜻의 말이 담긴 음악을 듣고 자란 콩들의 품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람간의 관계에 있어 가장 나쁜 것은 무관심이라고 하는 데, 그 말이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죠. 식물과 관련된 무성한 시어들로 자기 시 세계의 한쪽을 별처럼 수놓았던 기형도 시인이 어떤 말과 노래들로 풀, 꽃,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었는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1917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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