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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08 16:40 수정 : 2014.10.08 16:40

은둔의 몰입에서 영근 합일의 풍경
선승의 선시나 과학자의 발견처럼

서태지. 한겨레 자료사진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5년만에 컴백한다고 합니다. 20여년 간 철저한 신비주의를 유지해 온 그답게 이번에도 아이돌 가수 아이유를 통해 신곡 중 하나인 ‘소격동’을 먼저 들려주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공연을 진행한 뒤 그 다음날 새 음반 ‘콰이어트 나이트’를 발매하는 등 비밀스러운 베일을 차례차례 하나씩 벗겨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결혼 및 득녀 소식 등을 통해 사생활의 많은 부분이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미지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신비주의 안개 속에 휩싸여 있는 듯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의 신비주의가 단순히 음반 판매를 위한 마케팅을 넘어, 그가 뮤지션으로서 음악에 대해 가진 개인적 자세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신비주의는 원래 종교적 의미로 쓰이는 용어인데요, 신비주의를 뜻하는 영어 ‘미스티시즘(Mysticism)’의 어원 자체가 눈 또는 입을 다무는 것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myein’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명상 등의 종교적 방법을 통해 자기 내면에서 인간을 초월한 절대자와 직접적으로 합일하는 체험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신비주의인 것이죠.

서태지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최고 실재가 바로 음악이고, 그 음악을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 만나 자기 자신과 온전히 하나로 만들기 위해선 세상으로부터의 은둔과 자기 속으로의 집중이 꼭 필요한 것인 셈이죠.

실제로 서태지는 한번 앨범작업에 임하면 몇달 동안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연락도 없이 지낸다고 하죠. 마치 수도원으로 수행하러 들어간 가톨릭 수사나, 화두를 들고 동안거에 들어가는 선승처럼 말입니다.

음향심리학과 신화학, 그리고 교육학적 관점에서 음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로버트 워커는 ‘음악적 믿음(Musical Beliefs)’이란 글에서 “음악적 의미란 특정한 소리에 대해 학습된 믿음 체계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소리 하나하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음악적 믿음체계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며 그렇게 연구한 결과 음악에 대한 문화적 믿음은 대부분 정신적인 영역과 관련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죠.

‘교실 이데아’에서 인간성을 훼손하는 교육에 대해 비판하고 ‘시대유감’을 통해 창작자의 자기검열을 강요한 사전심의 제도의 폐지를 이끌고 ‘발해를 꿈꾸며’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 록(Rock) 문화에 바탕한 음악적 믿음체계의 사제로서 서태지가 신명을 다해 음악작업을 진행했던 것을 보면, 그의 음악 배경을 이루는 정신적 영역이 종교적 신비주의의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이젠베르크(왼쪽)와 닐스 보어. 위키피디아

신비주의처럼 자기 내면으로 몰입하는 모습은 종교와 음악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여집니다. 과학자들 또한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 이론을 발견하거나 검증하기 위한 실험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곤 하죠. 오류가 없는 실험 방법을 설계하기 위해선 이 실험방법이 과연 정확하고 정밀한 것인지 자기 내면에서 계속 떠오르는 의문에 극도로 집중하여 답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강력한 증거를 보여주어, 나중에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 클라우 옌손 등의 물리학자들이 빛뿐 아니라 모든 물질의 근본 중 하나인 전자 또한 파동의 성질과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는 양자역학 원리를 세상에 내놓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영국 물리학자·의사·고전어학자 토마스 영의 이중 슬릿(slit 좁은 틈) 실험방법 또한 이러한 시간을 잊은 자기 집중에서 비롯된 것이죠.

과학자의 몰입에서는 말 그대로 신비주의만큼 신비한 과학적 결과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위의 양자역학에 따르면 모든 물질의 근본 요소인 전자와 빛은 관측되기 전까진 파동으로 존재하다가 사람에 의해 관측되는 순간 입자로 발견된다고 하죠. 한마디로 모든 물질은 입자이자 파동이란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전자와 빛은 관측되기 전엔 이중 슬릿, 즉 두 개의 슬릿 중에서 어느 한 쪽의 슬릿에 있는지 모르는 확률적 존재인 파동 상태로 있다가(이 상태는 슈뢰딩거 방정식의 파동함수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스크린에 도달하여 관측될 땐 입자로 관측된다는 것입니다.

전자와 빛이 파동으로 있다가 입자로 관측되는 현상은 음악에 있어 작곡과 작사 과정과도 상당히 유사하다는 비유적 깨달음을 줍니다.

작곡도 어떤 감정이 멜로디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의 슬릿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주파수대의 확률적 소리로만 존재하다가 목소리나 피아노 건반이나 신디사이저 등으로 음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관측할 때 비로소 확정된 음들로 이뤄진 멜로디로 존재하게 되니까요.

작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정서를 멜로디에 맞춰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의 슬릿을 통과하기 전까지는 여러 가지 확률적 상태로 존재하던 비언어와 언어 사이의 구름들이 어느 순간 빗방울처럼 떨어져 내려 적혀져 작사가의 눈에 관측되고 뇌에 인지되는 순간 드디어 하나의 확정된 단어와 문장이라는 구체적인 언어 입자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서산 청허 스님. 두륜산 대흥사 홈페이지
이런 비유적 깨달음을 통해 때론 음악과 종교와 과학 사이에 열린 커다란 문 같은 틈을 보게 됩니다.

저 드높이 빼어난 이여

개울 소리는 법문이 되고 산은 법신이 되어

비로자나불의 게송을 누설하니

돌사람이 이 소식을 세상에 전해 주네

-서산 청허 스님(1520~1604)의 선시-선시,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조계종 출판사)

개울물 흐르는 소리와 산의 모습 등 일상생활의 풍경 속에 우주 모든 곳에 두루 편재하는 불법(비로자나불-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과 비슷한 개념)이 있다는 깨달음을 읊은 선승들의 선시를 볼 때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기서나 저기서나 어떤 대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의 신비주의적인 몰입 상태에서 진정하고 절대적인 그 무엇을 만나 합일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195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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