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31 09:29
수정 : 2014.10.31 09:31
‘부조화의 조화’처럼 낯선 어울림으로 감동
클래식 오페라 팝 등 장르 안 가리고 ‘애용’
|
아델 ‘썸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jCya1yiFFP4
|
“나요? 난 일종의 학자죠. 전공은 당신이고. 오대수학 학자. 오대수 권위자.”
2004년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 역의 유지태는 오대수 역의 최민식에게 위와 같이 말을 하죠. 오대수를 감금한 15년간, 그리고 감금을 준비한 또 몇 년의 기간 동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관찰하고 그 자료를 분석하여 오대수만이 가진 행동과 심리의 법칙을 발견해냈다는 얘기인 겁니다.
‘오대수학’에서 불법성과 비인간성을 쏙 빼내고 대상에 대한 접근 방법을 좋은 쪽으로 180도 바꾸면, 이러한 일종의 ‘개인학문’이나 ‘민간과학’은 음악에서도 똑같이 연구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 감동의 과학’을 연구한 영국의 심리학자 존 슬로보다처럼 수십 명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좋겠지만, 특정한 1명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해도 나름 의미있는 법칙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개인적 ‘민간 음악과학 연구’를 진행해보는 것이죠.
‘뭐, 혼자서, 혼자를 대상으로, 혼자 연구를 진행하는 게 과연 과학이 될 수 있겠어?’라는 의문이 당연히 뒤따르겠지만, ‘김치과학’의 사례를 보면 꼭 그렇게 낮추어 생각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 중 어떤 분이 김치에 시험 삼아 젓갈을 넣었더니 김치가 엄청 감칠맛이 나더라. 이게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젓갈을 넣어 김치를 담그게 됐더라. 또 어떤 분은 젓갈이 없어 무를 대신 넣었더니 역시 감칠맛이 나더라. 나중에 국립수산과학원 전통식품연구소에서 이유를 살펴봤더니 김치에 젓갈이나 무를 넣었을 때 알파 아밀라제 효소가 활성화되어 아미노산과 유산균의 함량이 높아져서 감칠맛이 더한 것이더라.’
뭐 이런 방식으로 개개인이 민간 음악과학을 진행한다면 그게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큰 학문으로 발전 되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요.
‘난방투사’ 김부선씨가 미시적인 영역에서 ‘생활정의’를 추구하듯, 음악 애호가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나름의 작은 ‘음악과학’을 진행해보는 것도 음악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한 민간 음악과학 차원에서 음악감동의 법칙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역시 지난주 글에서 언급했던 ‘아포자투라’를 다시 한번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음악세상’→‘사람을 감동 먹게 만드는 음악의 법칙’ 참조
http://plug.hani.co.kr/appsong/1968782 )
아포자투라는 ‘기대다’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 말에서 유래 된 것인데요. 말 그대로 아포자투라는 불협화음(코드 밖의 음)으로서 협화음에 ‘기대어’ 새로운 음악적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C코드(구성음 도, 미, 솔)라는 서로 잘 어울리는 소리들끼리의 묶음이 있는데 여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 F#이 들어가면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협화음을 좋아하는 동물이니까요.(하물며 진회론적으로 인간에 가장 가까운 침팬지조차 협화음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음악세상’→‘코끼리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를 좋아한다’
http://plug.hani.co.kr/appsong/1753688 참조) 하지만 불협화음도 아포자투라 방식으로 잘 쓰이게 되면 뭔가 특이하면서 별난 음악적 느낌이 들게 되는 겁니다. 그 훌륭한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레너드 번슈타인의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수록곡 ‘마리아’입니다.
|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수록곡 ‘마리아’ 동영상 출처 http://www.youtube.com/watch?v=11SfC1VvGFs
|
위 동영상 도입 부분 악기연주와 1분10초에서 처음 등장하여 곳곳에서 반복되는 가사 “마리아”에서 아포자투라 기법을 잘 느끼실 수 있습니다.
2009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솔로 팝 보컬상을 수상하고 ‘롤링 인 더 딥’ 등의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델의 ‘썸원 라이크 유’에도 아포자투라와 비슷한 기법이 쓰였습니다. 코러스 속에서 아델이 “유(you)”라고 발성하는 부분이 바로 그 곳입니다.
코러스가 시작되면 아델의 목소리는 옥타브를 뛰어넘어 급격히 높아진 볼륨으로 음표가 터질 듯이 발성합니다. 화성이 다른 화성으로 바뀌기 전까지 긴 음표의 끝부분에서 음정을 조절하며 작은 롤러코스터처럼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가 다시 해소 시킴으로써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만족감을 갖게 해주고 있는 것이죠.
캐나다 맥길 대학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자토레 박사에 따르면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으면 뇌의 보상충추에서 도파민이 분비되는 데, 그 효과는 섹스를 하거나 마약을 복용할 때와 비슷할 정도라고 하는데요. 아델의 ‘썸원 라이크 유’와 같은 슬픈 노래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개인적 민간 음악과학자로서 우리들도 아포자투라 기법처럼 협화음 안에 불협화음을 집어넣어 멜로디를 만들거나 자기만의 코드를 구성하는 등 자기 나름의 실험을 꾸준히 계속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음악적 감성과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감동 법칙을 만들기 위한 음악 관찰과 실험은 법률이나 윤리적 가치에 어긋날 가능성도 없고 무엇보다 돈을 거의 쓰지 않고도 비싼 돈으로도 얻기 힘든 행복 호르몬 도파민을 구할 수 있다고 하니, 지금 당장이라도 스마트폰을 열고 피아노앱을 한번 뚱땅거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1978068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