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학으로 본 ‘토토가’의 열광
첫 키스의 추억처럼 그때 그 시절 감정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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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사진. 출처 MBC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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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기획물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 즐겁게들 보셨나요?
김현정, SES, 터보, 쿨, 엄정화, 소찬휘, 이정현, 지누션, 조성모, 김건모 등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가수들이 대거 출연, 무한도전 최근 7년간 최고 시청률 22%를 기록하며 20~40대 시청자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뜨거운 반응에 대해, 1990년대 초중반 외환위기 이전 경제적으로 호황이던 시절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당시 가요가 지금 가요의 뿌리이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젊은층이 아예 처음 접하는 새로운 음악으로 인식해서 즐긴 것이라고 하는 얘기도 있구요.
군사정권이 종식되어 밝아진 사회 분위기 탓에 나올 수 있었던 ‘빅히트 스테디 셀러’(크게 인기 끌고 오래 사랑받는) 음악을 다뤘기 때문이라는 주장과 MP3가 퍼지기 이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음원수익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다양한 음악들을 틀어줘서라는 또 다른 해석에 더해, 음악과학적인 분석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을거 같습니다. 이른바 ‘음악의 기억 소환’ 이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음악의 기억 소환’ 이론에 따르자면 ‘토토가’의 흥행은 단지 문화적 현상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문화현상의 생물학적 기초를 이루는 인간 개개인의 뇌 신경체계에서 비롯된 부분도 크게 작용한다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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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에 출연했던 가수 김현정.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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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론에 의하면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의 1990년대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따라부르며 몸을 흔들고 발을 구른 이유는, 그 음악들이 청소년 내지 청년기에 뇌 신경계가 급격하게 발달할 때 들었던 음악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영국 리즈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12살~22살 사이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찾아 확립해 나가는 시기에 각인된 이미지들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기억의 돌출부’로 작용하여 평생에 걸쳐 두드러지게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 시절 들었던 음악들은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남아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처음 듣는 음악이 뇌의 청각피질을 자극하면, 그 음악의 리듬, 선율, 화성은 각각의 신호로 변환되어 긴밀하게 연결된 뇌 전체로 전달됩니다. 노래를 따라부르면 행동을 계획하고 조정하며 조직하는 전운동피질이 활성화 되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면 뇌의 뉴런들이 그 노래 비트에 동조화 됩니다. 가사와 악기 편성에 관심을 기울이면 서로 다른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두정엽피질 활동이 활발해지구요. 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넘쳐나는 성장 호르몬 탓에 감정이 더 들뜨게 되어, 감명 깊게 들은 노래를 훨씬 더 강력한 신경망으로 연결하여 기억으로 저장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젊은이들의 뇌 신경망 활동은 ‘뇌 불꽃놀이’로 불리기까지 하는데요.
‘토토가’를 연출한 김태호 피디부터 1974년생으로 20대 한창 젊은 시기에 1990년대 대중가요를 접했기 때문에 그 음악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이 프로그램 제작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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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에 출연했던 SES.(유진 대신 ‘소녀시대’ 서현이 출연)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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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인적 기억과 관련된 음악을 들으면 자신의 삶에 연관된 정보들을 유지하는 전전두엽이 깨어나게 됩니다. 20~40대 시청자들의 경우 1990년대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를 터보의 ‘러브 이즈’ 김현정의 ‘멍’ 엄정화의 ‘포이즌’ 쿨의 ‘애상’ 김건모의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와 같은 음악들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토토가’를 통해 그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리듬, 선율, 화음은 물론 기억 또한 동시에 소환되었던 것입니다. 노래가 불러다 준 기억 속의 감정, 좋았던 그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듯한 그 흥겨운 느낌에 저절로 노래를 따라부르고 어깨춤을 추게 되었던 것이죠.
여러 사연을 통해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된 음악들은 그 개인의 뇌 쾌락회로를 자극하여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과 그밖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여러 신경화학물질을 분비하게 만듭니다. 이때 함께 불려나온 기억들에는 감정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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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사람의 뇌를 찍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녹색은 귀에 익은 음악을 들을 때 반응하는 부분. 빨간색은 결정적 기억과 관련된 부분. 파란색은 음악이 즐겁게 인식될 때 활성화된 부분. 노란색은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위쪽 전전두엽의 안쪽 부분으로 귀에 익은 음악과 결정적 기억 모두에 반응하는 부분. 자료 출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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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뉴캐슬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노래가 소환한 기억들은 특징적이게도 긍정적인 감정이 수놓여진 기억들이라고 합니다. 또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음악과 기억의 관계에 대한 뇌 이미지 데이터를 분석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 연구진에 따르면,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위쪽 전전두엽의 안쪽 부분이 바로 음악을 듣고 기억을 떠올릴 때 ‘빨간 불’ ‘노란 불’ ‘녹색 불’이 켜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노래의 코드가 메이저(밝은 느낌의 화성)에서 마이너(어두운 느낌의 화성)로 바뀌거나 마이너에서 메이저로 바뀌는 것을 따라가며 반응하는 곳도 바로 이 ‘불꽃들’이 겹쳐서 켜지는 뇌 부분과 그 주변이었다고 합니다. 노래가 개인적 기억과 많이 연관되는 것일수록 이쪽 뇌 부분의 음악코드를 따라가며 반응하는 활동 또한 덩달아서 더 활발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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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에 출연했던 지누션.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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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에서 울려퍼지는 이정현의 ‘와’ 지누션의 ‘에이 요’ 소찬휘의 ‘현명한 선택’ SES의 ‘너를 사랑해’를 신나게 따라부르며 흥겹게 어깨춤을 추는 동안 그 사람들의 뇌 속에선 마치 나이트 클럽 미러볼 조명이라도 켜진 양 번쩍번쩍 ‘불꽃놀이’가 신나게 펼쳐졌던 것입니다.
그렇게 ‘뇌 속 불꽃놀이’가 가슴 벅차도록 휘황찬란하게 펼쳐졌던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 그 자체가 눈부시게 젊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061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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