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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하이 호수가에 있는 콩이지 주점. 허우하이는 베이하이(北海)와 중국 수뇌부가 살고 있는 중난하이(中南海) 뒤쪽에 있는 호수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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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쯔하는’(돈 쓰며 즐기는) 이들이 찾는 허우하이
뜻밖에도 루쉰의 단편소설 ‘쿵이지’를 만났네
모순 가득한 그의 무거운 행보 떠올라
‘샤오쯔’처럼 가볍게 소흥주 한잔 걸칠 수 없었네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③ 베이징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꼭 들러보고 싶던 곳이 있었다. 바로 허우하이(後海)라는 곳이다. 이른바 샤오쯔(小資)에 속하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기 때문에 근자에 새롭게 부상한 곳이다. 샤오쯔란 원래 문자 그대로 소부르조아의 준말이지만 의미가 점차 변해서 요즘은 일정한 학력과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생활의 ‘격조’를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젊은이들을 지칭할 때 쓴다. 동시에 그들이 추구하는 생활방식이나 정취를 지칭하기도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심지어 동사로도 쓰이기도 한다. 가령 샤오쯔하자!(小資一下)라고 하면 돈 좀 쓰면서 즐기자! 라는 정도의 뜻이다. 짧은 일정에 이곳저곳 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종로에서 볼 일 마치고 잠시 인사동의 찻집을 들러보는 심정으로 허우하이를 찾았다. 그래 나도 잠시 샤오쯔 좀 하자! 생활 격조 찾는 젊은이 ‘샤오쯔’ 허우하이는 베이하이(北海)와 중국 수뇌부가 살고 있는 중난하이(中南海) 뒤쪽에 있는 호수라는 말이다. 스차하이(什刹海)라고도 하는데 다시 치엔하이(前海), 허우하이, 시하이(西海)로 나뉜다. 전체적으로 베이하이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34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상당히 커다란 호수다. 해질 무렵에 찾았는데 정말 운치가 있었다. 강추! 가서 보니 예전에 한번 와 봤던 곳이었다. 이 일대는 고궁의 뒤쪽이어서 과거엔 사실 웬만한 권력을 갖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쑨원의 부인 쏭칭링(宋慶齡), 유명한 역사학자 꿔모러(郭沫若)의 옛 집, 전형적인 쓰허위엔(四合院)으로 유명한 꽁왕푸(恭王府) 등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예전에 없던 술집이나 카페들이 ‘샤오쯔하게’ 호수 주변으로 꽉 들어차 있었는데 가끔 외국 관광객을 태우고 후퉁 투어를 하는 자전거 인력거가 10여대 씩 줄지어 호수 주변을 도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나도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 맥주 한 잔 하면서 천천히 저 멀리 호수 너머 시산(西山)에 지는 석양을 바라볼까 하다가 그냥 걷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 혼자 들어가기가 좀 멋쩍은데다가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호숫가를 걷다 보니 한 모퉁이에서 서민들이 한적하게 산책을 하거나 체조를 하고 있었고 또 낚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예전에 봤던 광경인데 여전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소박한 서민의 기운이 넘쳐나는 베이징의 정취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데 콩이지(孔乙己) 주점이라는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콩이지를 여기서 만나다니…. 콩이지는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루쉰의 단편소설의 제목이자 그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 아닌가. 아주 짧은 작품이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지만 읽고 난 뒤의 쓸쓸한 여운은 아주 오래 동안 가시지 않는 그런 작품이다. 두루마기를 입고 와서도 돈이 없어 안채에 들어가 앉아서 술을 천천히 마시지 못하고 술청에 서서 마시곤 했던 몰락한 지식인 콩이지. 그는 정말 죽었을까. 그러나 아무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이 없었던 콩이지. 루쉰은 자신이 쓴 단편소설 중에서 어느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콩이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주점의 주인은 그런 콩이지가 못내 불쌍했던 것일까. 아예 그의 이름을 딴 술집이 만든 이유는 혹 <콩이지> 보고 돈 걱정 말고 술 마시라는 뜻은 아닐까. 나중에 확인한 일이지만 이 주점의 주인은 루쉰과 동향인 베이징 대학의 중문과 출신이라고 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베이징대 비정규직 사서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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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엔하이와 허우하이 중간에 위치한 인팅챠오(銀錠橋)에서 바라본 석양. 예전에 왕들은 이곳으로 산책을 나와 시산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곤 했다고 한다. 베이징 10경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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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엔스카이의 얼굴이 새겨진 1914년 당시의 은(인)화 1원. 그러니까 마오는 이걸 8개 받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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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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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잡습니다 지난번 2회째 글 가운데 ‘로스 테릴이 마오를 호랑이 기운(호기)와 원숭이의 기질(원기)를 동시에 지닌 복잡한 인물로 그렸다’는 부분이 나오는데, 원숭이 기질 뒤의 괄호속 한자는 원숭이 후자를 쓴 ‘후기’가 돼야 맞습니다. 편집과정의 실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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