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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후(五里湖), 리후(려-범려의 려-湖)라고도 한다.전설에 따르면 범려가 서시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사라진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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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업과 부와 미인을 모두 얻어 ‘인생 삼모작’
치국(정치)으로 돈벌고 치가(경제)로 나라 다스렸다
그 둘을 관통하는 원리는 때를 잘 타는 것 예전에 중국의 한 잡지를 읽다가 우연히 알게 된 소화(笑話)이다. 1980년대에 문화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던 중국의 저명한 작가 왕멍(王蒙)은 이 소화를 자신이 본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극찬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렇게 분석하였다. 첫째는 싸우지 않는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싸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한 상식 문제를 두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 만약 싸운다면 바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씁쓸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건 바로 사칠이 이십팔이라고 주장하다가 도리어 매를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석궁사건’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이런 경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풍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칠이 이십칠이라고 한 자가 거꾸로 무죄로 석방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월왕 구천 도와 오나라 멸망시켜 나도 이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 한바탕 웃었지만 나중엔 고개가 푹 숙여졌던 기억이 난다. 지나고 나면 별 것도 아닌 일에 나도 ‘목숨’을 건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경우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해야 할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최근 무죄로 판명났지만 인혁당 사건의 관련자들은 너무도 애통하게 이미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무조건 예라고 하면서 명철보신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간단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멀리 돌아왔지만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던 범려(范?)라는 사람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범려는 이런 험난한 삶을 잘 헤져나간 인생의 달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중국 사대부(지식인)의 이상이 구현된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다시피 그는 세 번 변신해서 모두 영예를 얻었다. 평생 한 가지 일에서 성공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제 2, 제 3의 인생에서 모두 승리했다. 맨 처음 오월 지방에 패왕의 기운이 있는 천상(天象)을 보고 월나라로 들어가 월왕 구천을 도와 결국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오왕 부차에게 당했던 ‘회계의 치욕’을 갚았으니 그는 유능한 정치가이며 병법에 능한 군사가였다.
그리고는 공성신퇴(功成身退). 오랜 고생 끝에 이룩한 승리를 거머쥔 순간에 “월왕의 관상은 턱이 길고 입술 언저리가 새처럼 뾰족하다. 이런 인물은 고생을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다”고 하면서 과감하게 그의 곁을 떠난다. 제나라로 가서 이름을 치이자피(소가죽이라는 뜻)로 바꾸고 장사를 해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다. 그러나 유명해지자 대부분의 재산을 친구들과 주변에 다 나눠주고 다시 사라진다. 그리고는 사통팔달한 도(陶)라는 곳으로 가서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다시 이름을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막대한 재산을 모은다. 그는 ‘경제’도 잘 아는 대상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분명한 상식 두고 싸우면 대거리하는 사람이 바보
정답이 되레 매맞기 십상 그렇다고 무조건 맞장구쳐야 하나
인생문제 어렵도다 주군인 구천을 잘 모셔 패업을 이룩하게 했으니 유가적 이상을 실천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적절한 때에 물러나와 토사구팽당하지 않았으며, 명성에 구애됨이 없이 은거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큰돈을 벌어 유유자적하게 살았으니 도가적 인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야사에 따르면 월나라를 떠날 때 오나라에 미인계로 보내졌던 절세미인 서시와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만당의 시인 두목(杜牧)도 “서시가 고소(姑蘇)에서 내려와, 배 한 척이 치이(범려)를 따르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범려는 커다란 공적도 이루었고 돈도 벌었으며 사랑하는 미인까지 얻은 인물이었으니 신파무협의 ‘천자’ 진용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그를 거론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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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無錫)에 있는 리위엔, 범려의 정원이라는 말이다. 사진 왼쪽 아래에 있는 작은 조각상은 서시의 조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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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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