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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19 10:01 수정 : 2013.07.08 13:54

김유진 소설 <3화>



중학생이었던 진은 거실 가장자리 이 층으로 이어진 원목 계단을 발견하곤 자신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TV에서나 보던 집이었다. 천장엔 촛대 수십 개를 이어 붙인 듯한 모양새의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는 하염없이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진을 데리고 계단을 올랐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방과 제법 큰 베란다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진에게 이 층을 내어주었다. 두 방 모두 진의 것이라고 말했다. 진은 방이 두 개나 필요하지 않았다. 둘 중 크기가 작은 방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진은 작은 공간이 좋았다. 나머지 방은 빈 곳으로 남겨 두었다. 아버지는 일 층에 짐을 풀었다. 거실 사방에 전면 책장을 놓고는 한가운데에 4인용 소파와 안락의자 하나를 놓았다. 거실 전체가 작은 도서관 같았다. 그는 매일 책에 둘러싸인 채 소파에서 쪽잠을 잤다. 진의 아버지는 십여 년간 소규모 출판사를 운영했다. 평전이나 수필, 종교 서적을 주로 다뤘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헐값에 매각하고는 출판계에서 물러났다. 자금난을 이유로 들었다. 아내가 죽고 이 년이 지난 후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때 이른 은퇴의 까닭으로 자금난보다는 상처(喪妻)에 무게를 실었다.

은퇴한 그에게 남은 것은 책뿐이었다. 천장에 닿을 듯한 책장 위쪽의 책을 꺼내려면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진이 기억하기로, 아버지가 사다리를 사용한 적은 없었다. 진은 이십여 년째 같은 자리에 세워 놓은 사다리가 제구실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진의 아버지는 독서가는 아니었다. 그는 책 자체를 좋아했다. 쌓인 책의 부피감, 각기 다른 표지 디자인이 주는 불규칙성 속의 통일감이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집가에 가까웠다. 항상 더 많은 책을, 가능한 한 오래된, 시장에선 이미 사라졌으나 누군가의 책장 구석에서 잠자고 있을 책들을 원했다. 진의 기억 속에 집은 늘 책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진에게 책은 벽지 무늬 같은 것이었다.

네 개의 방 중 실제로 쓰이는 것은 진의 것 하나뿐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방에 철제 행거를 두고 옷을 걸어 두거나 겨울 이불, 전기장판, 공구함 등 잡동사니들을 가져다 놓았다. 그는 넓고 탁 트인 거실이 편했다. 부자는 나머지 방들을 텅 빈 채로 남겨 두었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았다. 진은 아버지가 어째서 단둘이 지내기에 터무니없이 큰 집을 선택했는지 의문이 들곤 했으나,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다. 둘은 각자의 층에서 개별적으로 살았다. 식사를 같이하는 법도 없었고 딱히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지만, 그것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이상할 것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진은, 아버지가 미성년자인 아들을 두고도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할 방안을 고심한 끝에 이 집을 사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몇 년 후 아버지는 뇌출혈로 죽었다. 진은 닳아가는 세간과 수많은 책, 텅 빈 방들 사이에 홀로 남았다. 그 무렵 진은 거실 한가운데에 서서 아, 하고 소리 내어 보곤 했다. 메아리인 듯 여리게 돌아오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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