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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6 10:04 수정 : 2013.07.08 13:52

김유진 소설 <8화>



아내는 집을 고치자고 했다. 집은 낡고 어두웠지만, 세월의 손때가 묻어 고풍스러운 멋이 났고, 무엇보다 튼튼했다. 아내의 예술가적 감수성을 자극할 만한 조건으로 충분했다. 아내는 각종 리모델링 서적을 들고 와 진에게 보여주며, 오래된 집을 세련되게 고쳐 비싼 값에 되파는 것이 유행이라는 말로 설득하려 했다. 진은 아내에게 그런 계산속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진은 집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극적이지도 않았다. 집은 너무 오래 살아 지겨운 감도 있었고, 그만큼 익숙하기도 했다. 아내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진은 상황에 순응하기로 했다. 공사는 아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아내는 유학 시절 알고 지낸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데려왔다. 그는 한옥을 개축해 만든 빈티지한 카페로 히트를 쳤다고 했다. 아내가 보여준 인테리어 잡지에 실린 사진상으로는 조금 유치해 보였다. 주로 원목을 이용했지만 제각기 색과 무늬가 달랐고, 원색 타일로 곳곳에 포인트를 주어 아기자기한 느낌이 났다. 진은 인테리어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으므로 말을 아꼈다. 나무는 종과 가공법의 방식에 따라 색이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디자이너는 거실의 한쪽 벽면을 모두 트고 이중창을 달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의 책은 방으로 피신했다. 방진 마스크를 쓴 시공업자들이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와 망치로 콘크리트 내벽을 부쉈다. 오래된 파벽돌은 그 자체로도 비싼 값에 팔거나 인테리어에 재사용할 수 있었기에 한결 조심스럽게 다뤘다. 먼지 때문에, 진은 퇴근 후엔 이 층으로 도망치듯 올라갔다. 그즈음 진은 통곡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산중의 밤,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 뒤로 부드러운 빛을 발하던 별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잊은 것이 수없이 많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공사는 중지되었다.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지병이 있었다. 아내에게 병이 있는 것을 몰랐던 이는 진이 유일했다.

아내가 살아남아 늙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면, 꼭 지금 장모의 얼굴과 같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진이 갤러리에 들어서자, 볼이 푹 꺼진 장모가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장모는 뼈와 가죽밖에 남은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깡말랐다. 검은색 플레어스커트에 폭이 넓은 벨트로 허리를 옥죄고 있었다. 한껏 부풀린 머리카락 때문에 막대사탕 같았다. 장모는 시계를 보았다. 진은 늦지 않았다. 장모는 진이 입은 양복이 못마땅한 듯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진은 장모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암세포처럼 피로가 번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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