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 소설 <9화>
전시회는 아내의 그림을 처분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아내는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화가였을 뿐, 유명세를 탄 적이 없었으므로, 유작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진 못했다.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렀던 장례식을 대신해 아내의 주변 사람들을 초대했다. 조의금을 내고 원하는 그림을 받아 가기로 했다. 그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아내의 유언이 있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오 개월을 지냈다. 마지막 한 달은 친정집에서 보냈다. 진의 집이 공사 중이라 환자에게 유해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진은 변명처럼 느껴졌지만, 환자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기실, 진은 아내의 명목상 남편일 뿐 별다른 힘이 없었다. 아내는 진과 고작 팔 개월가량을 살았을 뿐이었다. 아내와 아내의 가족이 왜 병을 숨겼는지, 어째서, 누구도 자신에게 아내의 병을 귀띔해주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으로 남았다. 진은 다시 혼자로 돌아갔다. 때때로 농락당했다는 억울함에 화가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가도 금세 사그라졌다. 진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무력했다. 입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신체는 누렇게 떴다. 그 이후엔 면회도 거절되었다. 진은 아내의 상태를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 결혼 전 생활로 돌아갔다. 매일 출근했다. 퇴근하면 홀로 맥주를 마시다 잠이 들었다.
허문 벽을 정리하고 이중창을 세운 후, 리모델링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진은 더 이상의 소란을 원하지 않았다. 아내의 남동생에게 장례식과 입관 일자를 전해 들었다. 진은 홀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별의 절차를 밟았으므로, 아내의 부음이 크게 슬프진 않았다.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었다.
진은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오늘의 임무임을 알고 있었다. 아내의 가족과 지인들은 갤러리 한가운데, 여러 개의 책상을 이어 만든 긴 탁자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고인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했다. 진은 노고를 겪지 않았으므로 위로받지 못한 채,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아내의 유년 시절 사소한 사건까지 들추어 사랑스러운 추억으로 미화하는 동안, 진은 자신이 아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그녀는 성실한 아내였습니까?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진에게 물었다. 예, 그런 편이었죠. 당황한 진이 얼버무렸다. 상상이 잘 되질 않는군요. 영원한 자유주의자일 줄 알았는데. 남자는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자의 어투는 묘하게 진을 타이르는 듯했다. 갤러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아내를 잘 아는 사람이거나 잘 아는 것을 과시하려는 이 같았다. 진은 자유주의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진은 다만 유령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사라지고만 싶었다.
아내의 남동생이 케이크를 들고 나타났다. 영이 폭죽을 들고 뒤를 따랐다가 자연스럽게 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케이크가 테이블 위로 올라오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와인 잔을 들었다. 남동생이 생일축하 노래를 선창했다. 곧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축하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전에, 가능하기는 한가. 진은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종반부에 이르자 노래는 연기처럼 맥없이 사라졌다. 폭죽이 터지며 분위기가 일단락될 것을 모두가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폭죽을 쥔 영이 울기 시작했다. 진은 절망적이었다. 지금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영이 눈물을 흘리며 손으로 진의 팔꿈치를 만지작거렸기 때문이다. 진의 얼굴이 타오를 듯 붉어졌다. 영과의 모호한 관계를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진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영이 두고 간 샘플 화장품을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영의 눈물에 당황해 일순 침묵했던 사람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진은 숨통이 트였다. 영 주위로 대학 동창 몇이 티슈를 들고 다가왔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생일선물이라며,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장모와 남동생은 지나치게 고마워했다. CD였다. 그는 생전의 아내가 클래식을 좋아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며 다소 으스대며 말했다. 사람들은 과장되게 놀라워하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남동생은 당장 들어 보아야겠다며 갤러리 뒤편으로 자리를 피했다. 순간 진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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