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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1 19:18 수정 : 2013.06.17 15:24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젊은이라면 한번쯤 읽어본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기득권의 성을 깨뜨리라는 헤세의 메시지는 당시 청년들에게 큰 울림이었고, 투쟁의식을 가진 청년세대들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산업화의 주역이 되었다.

2011년 우리 젊은이들 사이의 베스트셀러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미래에 대한 청년들의 불안감을 위로하려는 책들에서는 이른바 ‘스펙 쌓기’를 멈추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라는 충고가 대종을 이루었고, 다정한 공감의 힘도 듬뿍 담겨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여전히 아프다. 가장 중요한 의식주 문제부터 해결하기 힘들다. 20~30세대에게 진보-보수 이념이나 진영논리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실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러한 변화는 세대를 특징짓는 말의 변천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과거엔 정치적·이념적 기준에 따라 6·3세대, 긴급조치 9호 세대, 5·18세대 등으로 불렸지만, 오늘날엔 등록금 천만원 세대, 비정규직 세대, 3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등 경제적·실용적 구분법이 훨씬 더 공감을 얻는다.

최근 필자가 만나본 청년유니온, 백수연대 등 청년단체 대표들은 하나같이 기성세대의 어설픈 위로나 충고보다는 자신들만의 역할을 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주역들이 과거의 공적을 내세워 각계각층에서 기득권을 지키고 있기에 도저히 낄 자리가 없다는 말이다. 자신들에 대한 공감도 좋고 힐링도 좋지만, 차라리 헤세처럼 일어나 투쟁하라고,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기득권의 담장을 무너뜨리라고 북돋워주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한다.

오늘날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성 정치권에서부터 사다리를 내려주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에겐 현안이 있고, 그들만의 역할도 있어 왔다. 과거 정치권에서는 청년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기회도 주었다. 70년대 학생청년운동의 주역이었던 김근태, 손학규, 김문수, 이재오, 이부영 같은 인사들이 정치권에 입문하기까지는 이들을 독려했던 정계 원로들이 있었고, 80년대 운동권의 주역이었던 이인영, 송영길, 김민석, 김영춘 등 이른바 386세대들도 기존 정당들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였다. 지금과 달리, 과거 한국의 기득권층은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다.

정부도 청년 문제에 대한 솔직한 진단이 필요하다. 실질적인 정책은 정확한 현실 파악에서부터 나온다. 우선 한국의 청년실업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어 왔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15~24살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9살까지 잡는다. 1년9개월 병역의무를 고려한다고 해도 4년의 차이는 국제간 비교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통계와 현실 간의 엄청난 괴리는 유럽발 재정위기의 진앙지 중 하나인 스페인과 비교해 보면 더 명확히 드러난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청년고용률(15~29살)은 23.1%로 발표되어 24살까지만 조사한 스페인의 24.1%와 비슷했다. 그러나 고용률에 있어서는 비슷하게 낮음에도 스페인 정부는 청년실업률을 46.4%로 밝힌 반면, 우리 정부는 9.6%에 불과한 것으로 발표하여 통계의 허구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기로는 아들 셋 중 한 명이, 딸 셋 중 두 명이 집에서 놀고 있다고 한다.

요컨대, 정치권에서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청년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설 수 있도록 사다리를 충분히 내려줘야 한다. 또한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경제주체들과 정확히 공유해야 청년실업 문제를 바르게 치유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득권의 성을 깨뜨리고자 하는 청년들의 의지다. 파울루 코엘류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명문을 빌려 청년들에게 고하고 싶다. “당신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줍니다.” 청년들이여 파이팅!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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