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6.11 19:16 수정 : 2013.07.01 15:38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평론가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분석이 있었다. 투표율 70%를 넘기면 특정 정당과 후보가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선거일 법정공휴일 지정, 투표시간 연장 요구 등이 선거가 임박할 때까지 잇따랐다. 야당은 투표율 높이기에 목을 맸고, 반면 여당은 선거에 임박해 룰을 바꾸려는 것은 당리당략을 위한 정치공세라고 대응했다. 하지만 막상 개표하고 보니 한편의 개그 프로를 보듯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권자들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의 사고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였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가 정당정치로 대표되는 대의민주제를 택하고 있다. 낮은 투표율은 정당정치에 대한 위협이자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을 뜻한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나서서 투표율이 높으면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망사스타킹을 신고 춤추겠다고 청년층에 호소한 것은 우리나라 2030세대의 의식 수준을 폄하하는 행동이었다. 대신 저마다의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 투표라는 것을 평소에 늘 이들에게 설명해줬어야 했다.

여당 유력 대선후보가 지난해 초 부산 지원유세를 펼치면서 차량 지붕창 위로 얼굴을 내밀고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다가 선거법 위반 논쟁에 휘말렸다. 공직선거법 91조 3항은 ‘자동차를 사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 선관위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로 의도성은 없어 보인다’며 문제 삼지 않았지만, 유사 논란이 또 일어날 소지는 남아 있다.

이러한 규제는 오늘날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이다. 자가용의 보편화로 교통체증도 일상적이다. 출마자들은 빡빡한 일정 중에 최대한 많은 유권자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현실과 유리된 낡은 규제는 선거를 재미없게 만들고 유권자들의 관심만 낮출 뿐이다.

현 공직선거법에는 세세한 규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 물론 상당수는 소위 ‘고무신·막걸리 선거’로 불리며 횡행하던 60~70년대식 금권선거를 막기 위한 조처들이다. 하지만 명함 규격, 어깨띠까지 통제되고 정해진 것 외엔 할 수 없다. 미국 대선에서 보듯이 후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젊은층의 관심을 끌 만한 수단은 모두 규제되다 보니 선거가 점점 재미없어진다.

우리나라는 이제 민주화가 많이 진전됐고, 시민의식도 꽤 높아졌다. 과거에 비해 사회 전반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의 발달로 일상생활과 정치행위 간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선거법은 국민을 어린아이로 간주하고, 국가가 일일이 통제하는 ‘유모국가’(nanny state)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선거 180일 전부터 거의 모든 것들을 제한하는 것이 선거법 93조 1항이다. 즉, 선거가 임박할수록 정치적 행위는 더욱 옥죄어진다.

또한 20대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 정치는 어릴 때 본 뱀장수처럼 ‘애들은 가라’며 10대 청소년들을 쫓아내기 바쁘다. 70~80년대엔 운동권 문화가 대학 문화의 하나였기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관심을 갖는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 문화가 다양해져 그렇지 못하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이해는 성인이 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공공 문제에 관심을 두고 현실정치를 체득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정당정치가 발달한 영국 노동당의 청년조직인 청년노동당 가입 연령은 14살부터다.

투표율을 높이려면 공직선거법부터 현실에 맞춰 다듬어야 한다. 내년엔 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으므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올해를 놓치면 지난 대선 때처럼 당리당략을 위한 개정이라는 오해와 논쟁만 재현될 것이다. 과거 혼탁선거 방지를 위한 좋은 취지의 규제들이라 해도 오늘날 디지털 환경에서 무용한 것은 없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한다. 규제가 민주주의 발전의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선거를 축제처럼 만들고 국민 참여, 특히 2030세대의 투표율을 높일 수 있도록 국회가 선거법 개정을 시도해볼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곽승준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