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7.02 19:22 수정 : 2013.07.02 21:51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드래곤 길들이기>라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흔히 용이라고 하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한가지 모습만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용들은 귀여운 것에서부터 포악하게 생겼거나 날개가 꺾인 모습까지 각양각색이다.

우리가 흔히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때도 영화에서처럼 그 모습은 다양하다. 그래도 대체로 가난한 집에서 좋은 대학 가고, 고등학교나 지방대만 나와도 대기업·공기업·금융기관 등에서 안정된 정규직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0~80년대 젊은이들도 그런 용꿈을 꾸며 살았다. 30~40년이 지나 많은 이들이 최소한 개천에서는 벗어났고, 꿈을 이룬 이들도 많다. 80~90년대에는 높은 경제성장에 힘입어 사회 내 수직적 이동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원성취의 상징인 여의주를 입에 문 대룡(大龍)의 꿈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고시에 합격해 판검사나 고위 관료로 오르는 것이었다. 인생 역전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지위 상승까지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보주(寶珠)를 입에 물고 승천할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줄고 있다. 로스쿨 제도가 시행됐지만 한 학기 등록금이 천만원을 넘나들어 ‘돈스쿨’로 불릴 정도다. 고등학교나 작은 지방대를 나오고 가난해도 노력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경우는 곧 아련한 추억이 될 것이다. 사시는 2018년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전면 시행될 예정이지만, 로스쿨 역사 100여년의 미국에서도 이 제도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거대한 기득권 장벽이 된다는 비판이 높다.

제도의 취지와 현실이 다르다 보니 저소득층을 위한 변호사 예비시험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로스쿨 제도를 되돌릴 수 없다면 예비시험 제도이든 다른 방법이든 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길은 반드시 터줘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은 80%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물론 더 공부하려는 이들에게 ‘공부할 필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문제는 대학 진학에 큰 비용이 들고,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학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수많은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 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거나 빚을 짊어지고 사회 첫발을 내딛는다. 그러니 여유도, 패기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학력 인플레이션도 만성화됐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대졸자들이 하는 일의 70%는 지난날 상업고등학교 등 고졸자들이 하던 일이다. 사회 전체에 엄청난 비효율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용의 모습은 고등학교만 마쳐도 공기업이나 대기업으로 갈 수 있도록 소위 ‘신고졸 시대’를 여는 것이다. 특히 대기업·공기업·금융기관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하려면 국회에서 고졸채용할당제 의무화를 고려해볼 때다. 물론 민간의 경제활동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학력보다 능력 중심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공감하므로 사회적 합의점은 도출할 수 있다.

교육 현장의 변화도 필요하다. 최근 산업수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고 있는 마이스터고는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올해에도 졸업생의 90% 이상이 취업했고, 100%에 이르는 학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기업의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그동안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대학에서 길러내지 않는다고 불평해왔다. 하지만 대학은 기업에 필요한 인력만 배출하는 곳이 아니다. 순수학문과 기초학문 발전에도 공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들이 고졸을 먼저 채용하고 필요에 따라 회사에 맞는 인재들에게 대학교육을 지원해주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진화된 자본주의에서는 기업의 공익적 역할이 중요하다. 회사에 맞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라 공익에도 도움이 된다.

학력 인플레이션, 학벌만능주의, 높은 교육비 등 문제가 복잡다단할수록 해법은 가장 간단해야 한다. 중세 철학자 오컴의 면도날 법칙처럼 간단해야 개천에서 용 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국회가 먼저다. ‘고졸채용할당제 의무화법’, ‘선취업 후진학 지원법’이 발의·입법되기를 기대한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곽승준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