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9.03 18:42
수정 : 2013.09.0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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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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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수험생들이 가장 절망하는 순간은 시험 전날 전깃불 나갈 때였다. 학교에선 ‘정전 때문에 숙제 못했다’는 변명이 1순위였다. 1967년 6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작년 약 2만3000달러로 40배 가까이 늘었지만, ‘집집마다 등 하나 더 끄고 공장 150개 돌리자’던 절전 포스터는 지금 다시 내놓아도 낯설지 않을 듯하다. 물론 절전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고충은 한계에 달했다.
발전소 증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발전소며 송전탑까지 지을 곳부터 마땅치 않다. 짓는다 해도 기술적으로 저장이 거의 불가능한 전기에너지 특성상 피크 시간대 외에는 전기가 과잉 생산될 우려도 있다. 국민들이 절전에 동참해온 것은 이런 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전 규제의 비효율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실내온도가 34도까지 치솟는 공공기관들에서는 친절한 민원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요즘 대형건물 대부분이 첨단 중앙지능형 냉난방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다. 냉방이 제대로 안되면 찜통으로 변한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특급호텔에도 절전이 강제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 등 마이스(MICE) 산업을 창조적 산업으로 키우려는 방향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블랙아웃’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산업부문의 전력 과소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전체 전력소비 중 가정용 비중은 14%에 불과한 반면 산업용은 55%나 된다. 가정에서 냉장고만 빼고 플러그를 다 뽑는다 해도 늘어나는 산업용 수요는 감당이 안 된다. 하지만 대기업만 탓할 수는 없다. 70년대 오일쇼크를 호되게 겪으면서 정부가 기름값은 높여 수요를 줄이는 한편, 전기료 인상은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제철·제강소들은 석탄이나 석유로 돌리던 용광로를 전기로로 바꾸고, 항만 부두에서는 대형크레인 연료를 경유에서 전기로 바꿨다. 가격 기능이 왜곡되면서 에너지 사용도 크게 왜곡된 것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는 대기업들이 쓰는 전기료의 현실화가 먼저다.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겨울나기용 전기료까지 인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대기업은 전기료가 오르면 생산을 유지하고 오른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다른 에너지원을 사용할 것인지, 절전설비 시설투자로 비용절감을 꾀할 것인지 어느 쪽이든 이윤 극대화가 가능한 대안을 찾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전기사용량은 전체적으로 줄어들고, 에너지효율성을 높여 비용도 절감할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구조를 조정하고 생산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전력은 2000년대 초까지 전기 생산과 판매를 도맡아 어느 정도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전력산업 민영화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01년 한전 발전부문을 6개 자회사로 쪼개놓은 뒤로 양상이 달라졌다. 민간에 팔리기 쉽게 하려면 여러 개의 자회사로 분할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2002년 시도됐던 남동발전 매각부터 노조의 반대 등으로 실패했다. 이후부터 한전 본사는 자회사들로부터 최소수익은 보장하며 사들인 전기를 대기업에는 손해를 보고 팔고, 반대로 전력수요가 몰릴 때는 대기업 소유 민간발전사들로부터 몇배나 비싸게 전기를 사들이는 기형적 구조가 계속되어 왔다. 한전 본사가 30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끌어안게 된 주된 이유다. 따라서 전력산업의 전반적인 구조 개편은 요금 현실화 못지않게 시급하다.
덧붙여, 정부와 정치권에서 반드시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교육용 전기료 인하다. 안 그래도 사교육에 의해 밀려난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찜통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과 방과후 학교, 야간자율학습은 하나 마나다. 학생, 교사 모두에게 고통이다. 줄곧 인상된 교육용 전기료 부담으로 노후시설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학교들이 전국에 널려 있다. 교육용 전기는 비용 논리보다 공교육 강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전기료가 세금이 아니라 이용 요금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공적 서비스라는 점에서 공익을 먼저 챙기는 것이 제1원칙이 되어야 한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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