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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24 19:08 수정 : 2013.09.24 19:08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중고생 자녀를 둔 집에서는 입시 문제가 종종 밥상머리 화제로 오른다. 식사 시간은 길어지고, 부담 백배인 자녀들은 슬며시 자리를 뜨고 싶어진다. 대한민국은 교육열로 일구어온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높은 사교육비는 주택대출과 함께 가계부채와 경제를 악화시켜 온 공범이다.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율 하락으로도 이어진다. 이렇게 된 데에는 부실한 공교육 탓도 있지만,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교육계의 ‘불안 마케팅’도 한몫을 한다.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을 없앤다’는 말은 30여년 동안 줄기차게 나왔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는 공교육이 뛰는 사교육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먼저 붙잡아 놓고, 공교육을 일으켜 뛰게 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정책은 사교육 줄이기가 우선되어야 한다.

흔히 현재의 대입 전형은 수천 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입시 고수들이 보면 대입 전형은 딱 네 가지다. 수능·내신·논구술·특별전형이 전부다. 그런데 수백곳에 이르는 대학들이 그에 붙이는 이름이 다르다 보니 아마추어 눈에는 3000개가 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입시를 너무 단순화하면, 대학 자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인재를 뽑기도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수능·논술 위주로 사교육 시장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나친 전형 간소화보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입시설명회를 많이 늘리는 것이 사교육을 줄이기에 더 효과적이다.

대입제도에 관한 대표적 논쟁은 ‘내신 절대평가냐 상대평가냐’이다. 상대평가는 교실을 무한경쟁으로 내몬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경쟁은 불가피하다. 당연히 변별력이 생기면서 교사들은 편해진다. 설령 전혀 가르치지 않아도 1등부터 꼴등까지 자동으로 줄이 세워지기 때문이다. 반면, 절대평가는 기준을 넘으면 모두 좋은 등급을 받는다. ‘자신과의 승부’라는 교육목적에도 맞는다. 한 학교 내에서는 A등급이 20명이 넘는 반과 5명도 안 되는 반이 선명하게 갈린다. 교사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열심히 가르친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 간 평가도 저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성적 부풀리기가 만연하면 변별력이 떨어진다.

그러면 한번 따져보자. 내신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뀐 이듬해인 2006년 학원 매출이 20% 이상 급증했다. 상대평가라는 무한경쟁 체제에서는 사교육비가 폭증한다. 따라서 ‘변별력 강화냐, 사교육비 잡기냐?’ 사이에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내신을 절대평가하면 예전처럼 우수 학생들이 특목고로 몰리고 사교육 선행학습도 과열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뜯어봐야 한다. 사실 과거에는 선행학습 사교육 없이 특목고에 입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특목고들이 영어, 수학에 과도하게 가중치를 주고 중3 수준을 넘어 고2 수준까지 출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3년간 특목고 입시를 뿌리부터 바꿔놨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거의 없어졌다.

어쩌면 지금의 논쟁들은 부질없는 일일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후면 완전히 다른 교육환경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저출산으로 인해 현재 65만명 정도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38만명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의 반은 문을 닫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아이티(IT)기술의 발전은 입시제도 자체를 바꿀 것이다. 예를 들어, 계속 진화하고 있는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학생 선발에도 이용될 것이다. 예컨대, ‘연극을 좋아해서 연기과에 지원했다’는 학생에 대해서는 연극 관람 횟수 등 소비패턴을 참고할 수 있다. 지금의 입학사정관제는 그것을 사람이 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입학사정관제를 두고 ‘추천서 대필’ 문제가 거론되기는 하지만, 대필과 표절을 잡아내는 ‘유사도 검색’ 기술도 발전하면서 ‘대필하면 오히려 망한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새로운 것에는 일시적인 부작용도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옛날로 되돌리면 혁신은 영영 불가능하다. 과연 우리는 백년대계는 고사하고 십년 뒤면 바뀔 새로운 교육환경이라도 생각하고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하고 있는가.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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