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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5 19:26 수정 : 2013.10.15 19:26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 복지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2010년 말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로 시의회와 갈등을 빚기 시작하면서였다. 예산 의결권은 시의회에 있고, 당시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한 민주당이 다수였기 때문에 시장도 막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주민투표에 정치생명까지 걸었지만, 투표율 미달로 이듬해 사퇴했다. 급식 문제에 시장직까지 건 것은 과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복지논쟁에 불을 지핀 것은 공이라면 공이다.

하지만 오 전 시장은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복지 경쟁을 예고하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대선 복지공약에서 새누리당은 민주당 못지않았다. 노인복지는 더 파격적이었다. 민주당은 2017년까지 기초노령연금을 2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올리겠다고 했고, 새누리당은 같은 수준으로 기초연금을 도입해 노인 외에도 중증장애인까지 즉시 확대하겠다고 했다. 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봤던 과거와 비교해보면 330년 넘게 건재한 영국 보수당의 유연성을 연상케 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노인복지 공약을 그대로 실행하려면 강력한 관문 두 개를 통과해야 했다. 첫 관문은 보건복지부다. 여당은 공약에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통합운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4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은 2020년께 1000조원, 그 10년 뒤엔 2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돈은 국민연금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대한 규모인 만큼 복지부로서는 신줏단지처럼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복지부가 관리하게 된 취지는 꼭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 국민기초생활 안정을 목표로 자유에서 의무 가입으로 바뀌었다. 규모가 늘자 2003년부터 국민연금의 소관 문제를 놓고 부처 간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는 국가경제 차원으로 관리하며 수익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복지부는 국민연금이 경제부처 손에 들어가면 경기부양 등 다른 용도로 쓰일 우려가 크다고 반론했다. 첨예한 논쟁 끝에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아 복지부가 관리하게 됐다. 따라서 복지부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완강히 거부하는 입장이다. 자칫 관리주체로서의 의의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관문은 기획재정부다. 특히 기재부 예산실에는 대한민국 최고 경제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의 절대사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나라 곳간이 비는 것을 막는 일이다. 곳간지기 눈에는 국가예산이 쓰이는 기초연금과 개인이 돈을 붓는 국민연금은 완전 다른 개념이다. 따라서 기초연금을 국가재정으로 충당하려면 나라살림에 무리가 크다고 보며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선호하는 입장이다. 현재 청와대 경제수석실에는 예산을 관리하던 전 경제기획원(EPB) 출신 관료들이 포진해 있다. 기재부와 청와대 간에 나라 곳간에 대한 강력한 방어라인이 구축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관련부처들의 상반된 입장을 비교해보는 것은 지금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 논란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열쇠다. 3선 의원 출신으로 정무 감각이 있는 진영 복지부 장관이 왜 무기력하게 사퇴했는지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복지부의 국민연금 사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3년 전 오세훈 시장이 복지논쟁에 불을 붙였던 것처럼 복지부 수장으로서 인수위 단계부터 논쟁을 세게 벌여 보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복지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또 노인복지는 단연 꼴찌이므로 복지예산은 계속 늘려야 한다. 현실적 문제는 지난 3~4년간 복지지출이 오이시디 국가들 중 가장 빠르게 늘어왔다는 데 있다. 특정 부문 지출이 급증하면 국가재정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복지논쟁이 계속되면서 국민들도 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에 대한 논쟁은 더없이 좋은 기회다. 미래세대까지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지논쟁, 앞으로도 많을수록 좋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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