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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6 19:06 수정 : 2013.11.26 19:06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일부 청소년의 게임중독이나 폭력 유발 가능성을 지적하며 정부가 게임산업을 더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지지는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들로부터 나온다. 지금 4050세대도 청소년기를 돌아보면, 부모님 몰래 날이 새도록 무협지나 순정만화책에 빠져본 경험이 있다. 특히, 동네 만화방에서 공공연히 빌려주고 친구들과 돌려보던 무협지의 성적 묘사는 극히 선정적이었고, 활자가 자극하는 폭력의 상상력은 무한대였다. 중고등학교에선 ‘경공법’이니 ‘통배권’이니 무술연마 한다며 아이들끼리 치고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교사와 부모들도 일종의 사춘기 통과의례로 볼 뿐,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진 않았다.

게임에 대한 학부모들의 염려나 정부의 더 강한 단속을 바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문제는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실효성도 낮다는 데 있다. ‘셧다운제’가 대표적이다. 취지와 달리 시행 후, 청소년 심야게임 감소율은 0.3%에 불과했고, 부모 개인정보 도용 사례는 40%나 증가했다. 다른 나라들도 국가가 게임을 마약처럼 규제하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200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선 18살 이하 청소년에 대한 폭력묘사 게임 판매를 금지했지만 대법원 위헌 판결로 폐지됐고, 그리스는 게임 이용을 전면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했다가 2002년 기본권 침해 위헌 판정을 받았다.

법으로 못 막고 규제가 안 통하니 차라리 학교에서 게임문화를 제대로 가르치는 쪽으로 발상 전환을 해보면 어떨까. 적정한 게임 이용과 과몰입 예방, 진단과 치료를 위해 학교에서 최소한 성교육만큼은 게임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선진국 학교들에서의 피임법 교육을 ‘충격적 해외토픽’으로 여기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성적 호기심이나 문제를 쉬쉬하던 시절엔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 문제가 훨씬 심각했다. 하지만 이제 성교육은 당연한 것으로 정착됐고, 적절한 피임법과 성범죄 피해 예방, 피해 신고방법에 대한 이해가 훨씬 높아졌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수시로 정도를 파악해 부모들에게 관심을 당부하고, 이 과정에서 의학적 처방이 필요한 경우도 자연스럽게 식별될 수 있다. 또 프로게이머를 막연하게 동경하게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애환이나 고충을 듣는 기회도 마련해주는 것이 좋다. 게임에 중독됐다가 극복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을 듣고 스스로 과용의 부작용을 깨닫게 하는 것도 큰 효과가 기대된다.

교사와 학부모들에게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를 물어보면 게임의 폭력성이나 심리정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는 15~20%에 그치는 반면, 50% 이상이 수면이나 운동 부족 등 자녀의 신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대 이유로 꼽는다. 즉 많은 부모들의 바람은 장시간 의자에 앉아 모니터만 들여다보기보다 밖에 나가 뛰놀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놀거리가 많이 없어졌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해야 할 진짜 역할은 이 대목이다. 청소년 여가 활용 프로그램을 더 개발하고, 학교에선 체육시간을 늘려야 하며, 체육계는 청소년 스포츠클럽과 주말리그를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게임업계의 자성과 변화다. 게임의 막대한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 이면엔 폐해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진 청소년이 공부에 등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사행성 게임에 빠진 성인들 중엔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게임이 왜 ‘공공의 적’처럼 몰리는지 억울하다고만 해선 안 된다. ‘버핏세’의 예를 떠올려보자. 워런 버핏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투기성 헤지펀드로 막대한 갑부가 됐지만, 경제위기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는 ‘부유세’의 대명사가 본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선구적 역할도 했다. 진화하는 자본주의 아래선 사회공동체에 대한 보답과 공공 기여가 기업의 생존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산업을 진정한 창조경제의 꽃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도 게임업계가 학교 게임교육에 대한 투자와 공헌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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