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17 19:05
수정 : 2013.12.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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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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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동북아균형자론’이라는 외교비전을 제시했다. 학자들 사이에선 평가가 엇갈렸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대국들로 둘러싸인 작은 한국이 어떻게 균형자가 될 수 있겠느냐는 비판과, 그래도 자주적 외교 시도라는 긍정적 의견이 있었지만 대체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나름의 확고한 소신이 있는 듯했다. 우선 멀리 있는 강대국을 끌어들여 인접 강대국을 견제한다는 외교의 기본 원론은 변함없는 것 같았다. 구체적 실행계획으로 그는 지지자 상당수가 반대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먼저 성사시키면 중국, 일본과의 외교에서도 균형자적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80% 정도 이뤄진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로 인계됐다. 2013년 동북아 정세는 다시 요동치고 있다. 영토, 역사, 경제, 안보 문제가 뒤얽히고 융합된 채로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동북아를 둘러싸고 남북한, 중국, 일본, 미국 등 각국 간 역학관계도 흔들리고 있다.
2009년 일본은 54년 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되면서 새로운 대미관계를 모색해볼 기회가 있었다. 하토야마 정권은 ‘탈미’(脫美)와 ‘아시아 중시’를 표방하고, 후텐마 미 공군 기지를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시키고자 했다. 이를 두고 미-일 갈등이 생기면서 그 반사이익은 실용외교를 표방하던 이명박 정부가 얻었다. 미국의 동북아 동맹축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온 듯했다. 한-미 관계가 두터워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까지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국내 반일감정의 직격탄으로 당시 청와대 비서관이 사퇴하는 선에서 중단됐다. 일본은 다시 자민당 정권으로 넘어가 국수주의로 질주하고 있고, 미-일 관계는 중국 견제를 위해 다시 공고해졌다.
우리의 군사안보는 한-미-일 동맹이 중심이지만,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국은 중국이다. 한국은 일본을 제치고 대중 수출 1위국으로 부상했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분의 1이 중국행이다. 우리나라 동북아 전략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중국 고위 인사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먼저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와 선린관계를 맺으며 여진, 거란, 말갈, 돌궐 등 북방민족을 견제해왔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론이다. 그러다가 중국이 한반도에 적극 개입하게 된 첫 계기로 그는 임진왜란을 꼽았다. 명나라가 군사를 보낸 것은 ‘한반도와 일본, 북방이 하나가 되면 중국에 치명적’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두번째 계기는 한국전쟁이라고 한다. 냉전체제로 들어서면서 강력한 한-미, 미-일 동맹이 구축되자 위협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 최고위 인사의 인식은 중국이 왜 성(省) 하나 규모도 안 되는 북한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북한의 핵개발 전까지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1991년 작성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노무현 정부의 ‘대북평화번영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등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빗장을 더 단단히 걸면서 남북기본합의서에 바탕을 둔 남북관계는 흔들리고 통일정책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오늘날 한국의 20대는 과거와는 달리 다른 세대에 비해 통일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고, 자신이 낼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대 비율도 가장 높다. 중국과 일본 청소년들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늘고 있다. 미래세대들의 이러한 변화는 향후 동북아 국가들의 대북정책 변화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이제 동북아에서 우리의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 할 시점이 됐다. 훗날 우리 후손들이 ‘응답하라 동북아 2013’이라고 하면, 동북아 격동기에 균형을 잡고 통일을 생각하며 미래를 치밀하게 준비한 해로 평가할 수 있도록 말이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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