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07 18:54
수정 : 2014.01.07 18:54
|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
2003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혁신’이라는 국정 비전을 화두로 던졌다. 우리 경제가 변화 없인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를 전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든 부처마다 혁신담당관을 두고 전도사로 뛰게 하는 것이었다. 혁신을 주도하는 공무원은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시키는 경쟁도 시켰다. 하지만 똑똑한 공무원들에게도 버거운 것 중 하나가 자칫 실패할 수 있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다. 관료제는 속성상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성보다는 안정된 조직문화와 체계를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부 부처와 국책·민간연구소의 전문가들이 모여 혁신을 이야기하고, 2007년엔 ‘비전 2030’이라는 상당한 걸작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내놓다 보니 ‘재집권 전략 아니냐’는 정치적 비판을 받으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미래’라는 화두를 던졌다. 구체적으로 ‘미래 먹거리 발굴’, ‘미래 성장동력 육성’과 같은 표현을 썼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대통령 직속으로 위원회들을 설치해 선봉에서 창과 방패 역할을 겸하게 함으로써 변화에 따를 수 있는 충격에 대한 관료들의 부담도 덜어줬다. 입안 과정엔 분야마다 전문가로 손꼽히는 민간위원들을 적극 참여시켰다. 나아가 “호수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야 건강한 것처럼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1인창조기업이 고르게 성장해야 우리 산업구조가 강해진다”고 강조한 안철수 의원의 ‘산업생태계론’도 접목시켜 저변 확대를 꾀했다. 성과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민간 부문으로의 확산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기존엔 회장 비서실이나 구조본부로 불리던 기업 핵심조직들이 미래전략실, 미래연구실 등으로 바뀌고, 새로운 미래동력을 모색하는 변화를 촉진했다.
현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국정 비전을 띄웠다. 사실 혁신, 미래, 창조는 본질은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모방할 발전모델이 없고, 우리에게 기술과 경험을 전수해줄 나라도 이제 없다. 과거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먼저 움직이는 선도자’(first mover)로 바뀔 때가 된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은 우리나라를 거울삼아 바짝 추격해오고 있다. 우리에겐 더 이상 벤치마킹할 나라가 별로 없는 만큼 우리 스스로의 창의성으로 도약해야 한다. 조직보다 개개인의 창조성이 중요해지고, 모방으로 더 이상 생존하긴 어려운 시대가 됐다.
하지만 유독 ‘창조경제’만 개념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여러 기기와 기술들이 융합되는 시대이기에 새로운 것은 모호해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누구는 휴대전화기라고 하고, 다른 누구에겐 엔터테인먼트 기기이기도 하며, 누구는 경량화된 개인컴퓨터나 전자책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휴대폰으로 출발한 것도 있고, 음원 기기나 콘텐츠 재생기로 출발한 것도 있다. 자동차산업 또한 기계, 전자, 콘텐츠 산업이 융합되면서 앞으로 국내 자동차회사의 경쟁 상대는 도요타가 아닌 구글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즉, 산업간 경쟁 상대도 고전적 산업분류를 뛰어넘게 될 것이다. 이제 공대생들도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인문학적 감수성이 필수적인 시대다.
창조경제가 개념이 모호하게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현 정부에는 ‘창조경제의 전도사’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모든 부처에 혁신담당관을 두어 혁신의 전파자로 삼았고,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을 앞세워 각 부처 장관들과 민간전문가들을 전도사로 삼았다.
한국은 창의력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경쟁국들과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 우리에겐 사람 말고는 별다른 자원이 없다. 구성원들의 창조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갖추지 않고선 정체되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다. 아무쪼록 2014년은 ‘혁신’과 ‘미래’로부터 이어져 온 ‘창조경제’의 실천을 놓고 일년 내내 공방을 벌이고, 이 과정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우리의 청춘들에게 희망을 주는 혁신적 모델을 만드는 창조적인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