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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28 19:30 수정 : 2014.02.18 11:06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침체된 내수 경기와 일자리 창출 활성화 방안으로 서비스산업의 육성이 자주 거론된다.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력이 제조업에 비해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서비스업을 좋은 일자리로 권하기는 아직 어렵다. 이 부문에 속하는 거의 모든 일자리가 ‘감정노동’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는 고객에 대한 무조건적 친절과 순응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10년 전만 해도 외국을 다녀온 사람들은 ‘선진국은 서비스부터 다르더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서비스는 한국 따라올 곳 없더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과거에는 불친절이 문제였지만, 이제는 과(過)친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서비스산업 확대의 그늘에는 어림잡아도 600만명에 달하는 감정노동자들의 고통이 있다. ‘고객감동’이라는 미명 아래, 감정을 누르고 억지웃음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직업을 ‘웃을수록 병드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개인정보 유출 대란으로 해당 카드사 콜센터 상담원들은 진짜 책임져야 할 높은 사람들을 대신해 수화기 너머로 욕이란 욕은 다 듣고 있다. 고객들의 분노를 제대로 느끼고 현실을 파악할 수 있도록 경제 금융당국 수장들에게도 수화기를 들려 주어야 마땅하다. 청년들의 선망 직업인 항공 승무원이나 호텔리어들도 못된 손님을 만나면 욕설이나 성희롱, 성추행에 시달리긴 마찬가지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원들은 진상 고객으로 가장해 암행에 나서는 본사 직원들을 꿈에라도 또 볼까 두렵다. 이런 ‘미스터리 쇼퍼’(mistery shopper)를 이색 아르바이트로 2030세대들에게 권하는 몰지각한 기업들의 마케팅 행태도 문제다.

관련 입법 필요성에 대한 지지 여론이 비등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감정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입법 발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심적 고통이나 정신과적 증상을 산업재해로 포함하고 고용자의 의무와 책임을 강화하자는 것이 그 취지인데, 그동안 하청업체들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온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발은 국민정서 앞에서 점차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국회도 고민은 있다. 다른 법률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하고, 구체적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산업재해의 정의를 포괄적으로 할 것인가, 특정 직업들로 한정할 것인가’ 하는 입법 기술상의 쟁점들이다. 예를 들어, 학생인권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교권이 약화되면서 학생, 학부모, 학교 관리자 사이에서 상처받는 교사들과 유치원·어린이집 보육교사들도 감정노동자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대중 앞에서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아이돌 스타들도 소속사와의 계약관계상 감정노동자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범위가 넓어질수록 입법은 더 어려워진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재해인지를 판정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을 놓고도 끝없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다. 민간부문에 적용될 법제화가 아직 어렵다면, 한편으로 공공부문부터 실효성 있는 제도를 갖춰나가고 민간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가능한 부문은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다. 지난해 말, 국가인권위가 민간시설 사회복지사, 학교 사회복지사, 사회복지 공무원 28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회복지 공무원들이 타 사회복지사들에 비해 폭언은 80%로 약 3배, 폭행 피해 경험은 2배인 1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의식 변화이다. 새로운 서비스 문화, 서비스 3.0 시대를 만드는 사회적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주문한 대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단순 공급하던 시절의 패러다임을 ‘서비스 1.0 시대’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는 고객의 기분까지 맞춰주는 ‘서비스 2.0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객과 판매원, 민원인과 상담원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한 ‘서비스 3.0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서비스산업이 양질의 고용을 창출하는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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