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18 18:48
수정 : 2014.02.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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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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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 지고 나선다’는 말이 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의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서양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여기서는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다. 이 말은 1800년대 미국 서부개척시대 사람들이 금광 발견 소문을 좇아 서부로 향하는 역마차만 보고도 덩달아 희망에 부풀어 따라나서 미국 경제가 성장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는 경제학에서 여러 현상에 쓰이는 개념으로서 시장에 어떠한 심리가 집단적으로 형성되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확산되는 경우에 자주 쓰인다. 좋은 예가 현물주식이나 선물옵션 시장에서 급격히 가격이 오르거나 급락할 때 정확한 판단 없이 휩쓸리기 쉬운 투자자들이다. 그래서 거래를 일시 중지시킴으로써 과열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발동되는 것이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와 ‘사이드카’(Side Car)다.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들에겐 일종의 진정제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경제는 수요와 공급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혹자는 수요-공급을 조절하는 가격 메커니즘을 과학 법칙으로 신봉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경제에선 집단적 공포나 희망, 신뢰와 같은 심리적 요인이 훨씬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거리의 신호등이 고장 나 당황한 운전자들과 차량들로 도로가 뒤엉키는 것과 같은 상황이 경제에도 종종 발생한다. 경제학에선 이런 경우를 ‘시장실패’라고 하는데, 이때가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방법 중 가장 빨리 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며, 효과도 빠른 것이 경제 수장들의 구두 개입이다. 출렁이는 환율이나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 ‘심상치 않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식으로 말로써 ‘옐로카드’를 꺼내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의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경제 수장들의 리더십과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감이다. 말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경제 수장이 제아무리 개인적으로 똑똑하다고 해도 국민에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면 일이 꼬인다.
사실 한국도 민간부문이 커지면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나마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도구들은 이자율, 정부 재정지출, 세율 조정 등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경제에 주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작아졌다. 게다가 이자율 조정권은 원칙적으로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의 권한이다. 또 정부지출은 경직성 예산 빼면 경기부양에 쓸 수 있는 실탄은 대기업 1분기 영업이익 규모도 안 된다. 따라서 국민들의 희망을 자극하기 위한 경제 수장의 리더십은 나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해외무역 의존도가 90%에 이를 만큼 개방되어 있고, 내수경제는 매우 취약하다. 무역수지 흑자가 아무리 많이 난다고 해도 뒤집어보면 국내 투자가 줄어서일 때도 많고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고는 여전하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그 부작용으로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 수장들은 서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을 할 때 특히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서민들의 삶과 동떨어진 경제 수장이라는 이미지는 한번 붙으면 결코 떨쳐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방송 프로그램명으로 유행한 말처럼 ‘화성인’이 되고 만다. 경제 수장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면 개인 차원의 잘못으로 그치지 않고, 심리가 지배하는 경제 전체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악재가 된다.
결국 국민의 정권에 대한 평가는 본인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따라 매겨진다. 하지만 한국 경제 구조가 확 바뀌지 않는 한 국민의 희망만큼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란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경제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까지 떨어지면 경제정책을 운용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아무리 적절한 근거와 예측을 토대로 ‘올해는 서민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며 청사진을 내놓더라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경제 수장들의 말 한마디, 그래서 중요하다. 정권의 성패마저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곽승준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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