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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1 19:12 수정 : 2013.09.11 19:12

1930년대에 신문과 잡지가 우후죽순 생겨날 당시, 글쟁이들에게 원고료라는 게 꽤 짭짤했던 모양이다. 소설가 허준은 원고료 때문에 잡문을 써야 하는 난감한 처지를 어떤 글에서 슬쩍 고백한 적도 있다. 황순원이 잡문 쓰기를 마다한 이유도 그런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작가가 잡지사로 직접 가서 원고료를 받는 일이 허다했다. 그날은 동료 문인들이 자주 가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 있었고, 몇 푼 원고료는 술값으로 날아가기 일쑤였다. 글이란 걸 써서 그 대가로 돈을 받고 그걸 생활비에 보태는 일을 쩨쩨하게 여겼던 것. 다 낭만주의 시대의 일이다. 말년의 미당 서정주는 원고청탁서와 함께 원고료를 직접 집으로 들고 가야 글을 써줬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말하자면 ‘현찰거래’인 셈이다. 어떤 시인은 원고료 받는 일이 신기해서 통장을 따로 만들어두고 가끔 들여다본다고 한다. 글쓰기 노동자로 살아가는 자부심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일일 것이다.

별다른 수입 없이 오로지 원고료만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될까?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국내 문예지의 원고료는 박하기 짝이 없다. 가장 많이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창작과 비평>과 <문학동네>의 경우 시가 1편에 15만원, 단편소설이 편당 150만원이다. 아예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문예지가 태반이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하나의 ‘직업인’으로 당당하게 명함을 내미는 날이 오기나 할까?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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