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0.06 19:06
수정 : 2013.10.06 19:06
시인 정양(鄭洋)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이름 ‘양’(洋) 자가 너무 커서 나는 쩨쩨하게 살지. 선생은 1942년생이니 올해 일흔둘이시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낸 시집은 겸손하게도 다섯 권. 과작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선생은 긴 다리로 물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왜가리 같다. 정작 물고기 사냥에는 별 관심이 없고 물소리에 가만히 귀를 열어두고 있는 왜가리. 소설가 한승원 선생은 기린 같은 사내라고 했고, 또 절친한 친구 윤흥길 선생은 ‘물견’(물건)이라 했다. 그 이유는 “그는 내 가난한 마음을 윤택하게 하고, 끊임없이 내게 영감을 나누어 주고,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또 때로는 안 그러는 척하면서 나의 가장 아픈 구석을 섬찟 찔러 주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윤흥길의 ‘장마’에 등장하는 구렁이는 정양 선생의 가족사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전쟁 직전까지 선생의 아버지는 여운형계에서 활약하던 사회주의자였다.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아버지는 전쟁과 함께 실종이 되고 마는데, 생사를 확인한 그날을 제삿날로 잡고 지리산에서 흙을 떠와 봉분을 만들었다. 그 세월이 선생에게는 불구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말이 빠르거나 말이 많거나 말을 앞세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최근에 전주를 떠나 자식들이 있는 수도권으로 이사를 감행하셨다. 우리가 너무 많은 말로 떠들었기 때문일까?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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