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29 17:21
수정 : 2014.01.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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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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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가을에 연어는 1만5000㎞의 여정을 마치고 어머니의 강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1월 말, 그때 산란해 놓은 알 속에서 새끼연어들이 깨어나 부화를 할 때다. 강물 속에서 봄을 기다리면서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새끼연어들 중에서는 입신양명을 꿈꾸는 녀석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3~5년 후에는 다시 모천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설이 코앞이다. 연어가 모천의 냄새를 쫓아 돌아오듯이 전국의 고속도로에는 ‘연어자동차’들이 떼를 지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새 우시어/ 새하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1930년대 이용악 시인의 시 ‘달 있는 제사’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일찍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의 제사에는 관습이나 종교 이전의 근원적인 슬픔이 깃들어 있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 빈 호주머니여// 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 그간의 일들을/ 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김사인 시인의 시 ‘코스모스’는 명절이 되어도 고향으로 갈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호주머니는 비어 적막한데 그리움의 촉수는 고향 쪽으로 뻗어 있는 사람들 말이다.
직장에서 승진을 했더라도, 사업이 잘돼 돈푼깨나 만지더라도 제발 고향에서는 거들먹거리지 말자. 큰소리로 떠들지 말자. 돌아간다는 것은 돌아본다는 것이다. 고향은 뉘우치기 좋은 곳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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