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0 18:37
수정 : 2014.03.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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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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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기 전에 화단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닿도록 늘어진 개나리 가지도 쳐내고 바삭하게 마른 풀들도 자를 참이었다. 낫을 들고 화단으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화단 안쪽에 웬 짐승의 하얀 유골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 조각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것도 아주 가지런하게 놓인 그 유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고양이 뼈였다. 당장에 달아날 듯, 뒷발로 땅을 박차고 튀어오를 듯, 앞다리를 낮추고 동그랗게 몸을 말고 웅크린 고양이 뼈 한 마리! 마치 살아 있는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수염 한 올, 살가죽 한 장 없이, 얼룩무늬도 벗어던지고 말이다.
그때부터 상상력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짐승이 대체 어디를 급히 가려나? 왜, 이곳에, 혼자 와서 숨어 있나? 꼬리뼈를 살짝 치켜들고 있는 이 고양이는 세상의 소란한 햇빛 따위 작파하고, 약에 취한 듯, 비틀거리듯 쓰러지듯, 이 그늘을 찾아들었을까? 세상의 앞쪽보다는 뒤쪽이거나 아래쪽에 기어이 살고 싶었을까? 이 고양이가 암컷이라면 어린것들이 떼를 지어 엄마를 찾아와 울고불고했을 것이다. 엄마의 골반에 코를 대고 문지르다가 냄새를 맡다가 돌아갔을 것이다. 그때 엄마 고양이는 젖 먹으러 왔다가 앙앙 울며 돌아간 새끼들을 생각하고 죽은 몸을 벌떡 일으키려고 했을 것이다. 죽은 엄마 고양이의 몸에 물큰한 젖이 도는 봄날 오후, 엄마는 죽어서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었을 것이다.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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