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23 18:31
수정 : 2014.03.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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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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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에는 이상화의 시비가 있다. 194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세워진 한글 시비다. 내가 제일 처음 본 시비였다. 서울 도봉산 초입에 세워진 김수영 시비는 동판으로 돋을새김한 깡마른 얼굴이 김수영답고, 경남 통영의 남망산공원 안에 있는 청마 시비도 인상적이었다. 직접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주위의 자연과 잘 어울리는 시비는 충북 단양읍의 소금정공원에 있는 신동문 시비 같다. 받침돌 없는 빗돌은 나지막해서 욕심이 없어 보인다.
김수영 시비의 동판은 고물장수가 몰래 떼어가는 수난을 겪었고, 전북 고창 선운사 입구의 서정주 시비는 1980년대에 ‘미당’(未堂)이 ‘말당’(末堂)으로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그의 친일 전력 때문이었다. 시비 걸고 싶은 시비도 있다. 살아 있는 시인을 성급하게 칭송하기 위해 세운 시비,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아 우러러봐야 하는 시비, 고인의 문학적 유산에 비해 빗돌만 크고 우람한 시비, 미적 감각이 전혀 없는 시비……. 내 뜻과 상관없이 곳곳에 내 시를 돌에 새겨놓았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마다 얼굴이 뜨거워진다. 다만 경북 예천읍 흑응산 정상에 있는 시비와 울진군 금강송 군락지 입구의 시비는 예외다. 시비를 위해 의도적으로 쓴 시들이기 때문.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1930년대에 시인 함형수가 먼저 했다.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라는 시에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교수
트위터 @ahndh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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