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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평화학교’ 학생들과 조진경 교사대표(왼쪽에서 네번째)가 학교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의 일정을 스스로 토론해 결정하는 등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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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조그만게…? 어린이 의견 표현은 그들 권리”
새터민·장애아등 학생 6명, 일과 스스로 결정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어린이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고, 어린이의 의견은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문제 및 결정 과정에 참작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어린이의 자기결정권이다. 하지만 “조그만 게…”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듯,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되는 어린이 권리의 하나다. 경기 안성의 ‘아힘나 평화학교’와 스페인의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은 이 권리의 실현을 극단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학교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사례들이다.
경기 ‘아힘나 평화학교’
‘‘아이들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나라 평화학교’(아힘나 평화학교)는 취재 요청에 응하는 순서부터 남달랐다. 경기 안성시 삼죽면에 ‘아이들이 주체가 된 아이들의 학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취재진이 조진경 교사대표에게 “학교와 학생들을 취재하고 싶다”고 연락하자 조 대표는 대뜸 “아이들이 회의를 거쳐 결정해야 하는 일이니 기다려 달라”고 답했다.
다행히 회의에서 취재요청이 받아들여져 지난 10일 아힘나 평화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들은 교사들이 준비한 점심을 막 먹으려던 참이었다. 잡곡밥과 나물 몇 가지, 학생들이 텃밭에서 기른 상추, 김치찌개를 각자 그릇에 덜어 모두 먹고 난 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기 그릇을 설거지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중·고교 과정인 이 학교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학생은 새터민, 장애아 등을 포함해 6명이다. 대부분의 일과는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다. 대안학교 인가를 받지 못한 탓에 검정고시를 준비하느라 오전엔 시험 과목을 공부하지만, 오후엔 텃밭을 가꾸거나 닭을 기르거나 비디오카메라 촬영법을 배우는 등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한다. 4월 초에는 제주도로 4·3 항쟁을 공부하러 가기도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는 한 주를 돌아보고, 다음주의 활동을 어떻게 할지 등을 정하는 자치회의 시간이다.
학생들은 지역신문인 <안성신문>의 청소년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 29일과 어린이날에는 가까운 평택에서 ‘큰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대추리에 직접 가봤다. 김현철(16)군은 <안성신문>에 “우리 민족이 고통받는 것은 다른 나라로부터 억압을 받기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통일이 돼 미국이 우리 땅에 머물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썼다.
학생들은 이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임수진(14)양은 “이곳에선 누구도 공부를 하라거나, 숙제를 하라는 등의 강요를 하지 않는다”며 “내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며 결론을 내리니 오히려 더 신나고 재밌게 공부하고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와 김종수 아힘나 운동본부 상임이사는 14년여의 대안교육 경험을 통해 어린이가 보호·교육의 대상이나 미성숙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김 이사는 “아이를 ‘위한다’는 단체는 많지만, 아이의 필요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어른의 시각에서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아이들은 금세 주체적인 능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성/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스페인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
어린이 시민회의 통해 공동체 운영 전세계 4만명 이곳서 시민권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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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어린이 공화국 ‘벤포스타’에서 어린이들이 교육·노동·경제 등 모든 일상 문제를 결정하는 주민회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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