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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극단 ‘친구’ 사무실에서 극단 대표이자 안재우복화술연구소 소장인 복화술사 안재우씨가 인형 ‘메롱이’와 함께 복화술 연기를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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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몸 / 나의 몸
(18) 복화술사 안재우의 입술
▶ 혀와 이를 막고 있는 입술은 사실 몸 안에서 밖으로 밀려나온 것입니다. 사실 몸 안의 피부와 입술의 성질은 같지요. 휘파람을 불고 립스틱을 바르고 키스를 하는 입술은 말을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도 기여를 합니다.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비한 복화술사의 입술은 어떤 점이 다를까요. 복화술사 안재우씨를 만나 복화술사의 입술 활용법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보통 복화술은 입술을 안 움직이고 말한다고만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복화술사의 입술은 움직이고 있는 입술입니다.”
지난 17일 저녁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2층 세미나실에서 복화술사 안재우(47)씨의 ‘행복한 복화술 학교 10기’ 첫 수업이 진행중이었다. 동화구연가, 이벤트업 종사자, 목사 등 약 30명의 남녀 수강생은 안씨의 입술에 주목했다. 2시간30분 동안 안씨는 복화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입술을 활용한 발성을 중심으로 복화술 수업을 했다. 안씨가 손에 든 인형과 대화를 시작했다. 안씨 손에 들린 인형이 생명력을 얻는 신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안녕?”
“안녕?”(인형)
“오늘 기분 어때?”
“별로야.”(인형)
“왜?”
“마(나)음이 아파.”(인형)
안씨는 국내 유일의 전문 복화술사다. 2009년 이후 성인·어린이·가족 대상 복화술 공연을 해왔다. ‘메롱이 아빠의 육아일기’ ‘신기한 소리상자’ ‘마마쇼’ 등 그가 직접 쓴 대본을 토대로 매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09~2010년 전세계 복화술사들이 모이는 축제 벤트 헤이븐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미국에 가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특출한 재능을 갖춘 사람들을 소개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복화술사로 더 널리 알려졌다.
복화술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해 마치 옆에 있는 인형이 말을 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는 기술이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종교와 마술이 결부되어 시작됐다. 배로 호흡해 말한다고 상상해 ‘복’(腹) 자를 붙였다. 고대 문헌에 복화술사는 신을 대신해 신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고대 복화술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우리클레스는 ‘배꼽으로 말하는 예언자’라고 불렸다. 아프리카나 뉴질랜드의 부족 중에는 복화술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고대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복화술은 종교전쟁이 발발한 뒤 침체기를 겪다가 19세기 들어서야 다시 시작됐다. 현재는 코미디언, 공연 전문가들이 주로 사용한다. 복화술의 주무대인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회를 풍자하고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복화술사들이 여럿이다.
국내 복화술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황문평의 책 <한국연예인물사>를 보면 극과 극 사이 약 10~20분 동안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짧은 공연을 하던 전방일씨가 최초의 복화술사라고 나온다. 가수 윤복희씨의 아버지 윤부길씨가 1940년대에 복화술을 공연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중장년층에게는 코미디언이자 사회자였던 ‘후라이보이’ 곽규석씨도 인형복화술사로 기억된다. 국내 유일의 전문 복화술사로
마치 옆의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입술 움직이지 않고 말할 수 있어
ㅁ·ㅂ·ㅍ 입술소리 빼고는
혀를 움직여 발음할 수 있다
“복화술을 하면 가슴속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더 쉬워요
인형이 대신 진심을 전해주죠
운전할 때 가끔 복화술로
화를 풀면 싸움 날 일도 없죠”
“하하하, 일단 웃어 보세요” 이후 국내에서 복화술을 전문적으로 상업공연하는 복화술사로서는 안씨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반 복화술을 알게 된 뒤 미국에서 복화술 관련 서적을 직접 수입해 번역하고 독학으로 익혔다. 최근 인터넷 카페 활동을 하며 모인 ‘복화술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 500여명과 한국복화술협회를 만들었다. 복화술사 안씨에게 복화술 하는 입술이란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신체 부위로 꼽힌다. 입술만으로도 소통을 할 수 있다. 입술을 비쭉 내밀거나 꾹 다물거나 실룩거리는 입짓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몸이 아프거나 겁이 날 때면 입술이 힘없이 벌어지거나 바르르 떨리고 파래지기도 한다. 입술의 변화가 언어를 전달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은 일반적인 설명이지만, 복화술을 할 때 입술은 좀더 기술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보통 공연에서는 인형과의 호흡,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 대본, 현장 분위기 등 공연적 요소가 필수지만 이 중 (기술적으로) 입술을 잘 활용해 말을 전하기가 가장 중요하다. 복화술사의 입술은 고정된 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입술을 자유자재로 움직여야 한다. 복화술을 배우러 온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안씨가 말했다. “복화술은 자기 가슴의 이야기를 입술을 열지 않고, 인형이 대신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예술이에요. 복화술의 장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거죠. 다만 익숙해지고 바로 변용하는 데 연습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저도 20년 가까이 하고 나서야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안씨는 언제나 웃는 인상이다. 늘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웃지 않으면 복화술사가 아니라고 안씨가 수강생들에게 말했다. 안씨는, 복화술은 마술과 같이 속임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며 복화술 방법을 공개했다. 쉽지만 단련하기 어렵다는 걸까. 신비로운 복화술의 세계는 그렇게 열렸다. 안씨가 ‘이것 하나만 하면 50%는 배운 것’이라는 것은 ‘웃음’이었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하하, 일단 웃어 보세요. 얼굴근육이 다 풀릴 때까지 입을 열고 웃으세요. 그리고 입술 주변 근육을 쫙 펼치듯 세게 웃으세요. 이를 앙다물지 말고 약간 벌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다물면 파열음이 생기고 발음이 정확해지지 않아요. 자, 이게 기본동작이에요. 활짝 안 웃으면 입 주변 근육이 씰룩거려 입술이 자꾸 움직입니다.” 그의 입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었다. 표정 변화 없이 그의 가늘어진 입 사이로 인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렇듯 그도 입에 경련이 일었다고 했다. 발음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궁금했다. 안씨가 설명했다. “고정됐다면, 이제 혀로 발음을 만드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할 때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하잖아요. 복화술할 때 입술 대신 혀를 많이 움직여 보세요. 입술소리(두 입술이 부딪쳐야만 나는 소리)인 미음(ㅁ), 비읍(ㅂ), 피읖(ㅍ) 말고는 혀만 움직여도 발음을 제대로 낼 수 있어요. 대신 혀를 더 강하고 정확하게 움직여야 하죠. 혀가 어느 위치에 가야 정확한 소리가 나는지 생각하면서 발음해 보세요.” 예를 들어 발음마다 혀의 위치가 다르다. ‘나’는 입안 천장에 혀를 댔다가 떼야 소리가 난다. ‘라’는 혀가 말려들어가야 하는 식이다. ‘카’는 입천장을 혀가 두들긴다. 복화술사의 입술이 크게 열릴 때 안씨의 입술이 피하고 싶은 발음도 있다. 입술이 없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 미음, 비읍, 피읖 같은 입술소리다. 입술을 부딪쳐야만 소리가 나는 입술소리를, 입술을 고정하고 말하는 복화술로 어떻게 낼 수 있을까. 19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어린이극단 <친구> 사무실에서 만난 안재우씨한테서 추가수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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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24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모피 반대 패션쇼 ‘제2회 사랑을 입다’에서 공연 중인 안재우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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