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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영등포피부목욕관리사협회 제1교육실에서 30년 경력의 피부목욕사 황재상(가명)씨가 때 미는 법을 시연하고 있다. 그의 빠른 손놀림을 한 장의 사진으로는 담아내지 못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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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몸
나의 몸 / 목욕관리사의 ‘때’
▶ 전지현도 김수현도 몸에서 ‘때’가 나옵니다. 그래서 전지현도 김수현도 ‘때’를 밉니다. 그들도 대중목욕탕에 갔다면 이분들께 몸을 맡겼으려나요. 남의 때를 가장 많이 보는 직업, 30년 경력의 목욕관리사를 만나 몸에서 나오는 때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보았습니다. 목욕관리사에게 때는 무슨 의미일까요. 한때는 내 것이었던 때와 이별할 때 왜 우린 그렇게 개운해하는 건지요. 이번주는 ‘때’가 주인공입니다.
좁은 계단을 오를수록 아로마오일 향이 진하게 났다. 지난 5일 아침, 향기는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오래된 건물 4층에 있는 영등포피부목욕관리사협회까지 이어졌다. 비좁은 복도에 맞닿은 사무실의 낮은 천장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복도 오른쪽으로 난 두 개의 작은 방에는 ‘교육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협회 사람들이 이날 있을 ‘세신’(洗身)과 경락 마사지 실습 수업 준비 중이었다. ‘씻을 세’와 ‘몸 신’ 자를 쓰는 세신이란 때밀이를 순화해 쓰는 용어다. 오전 10시20분, 원장 박은혜(55)씨가 ‘제1교육실’인 욕실에서 직접 세신 강의를 진행했다. 붉은 글씨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푯말이 붙은 문을 열자, 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두 개의 평상을 무대로 모두 4명의 중년 여성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때를 밀어주고 있었다. 그들의 몸은 분홍빛 타일과 베드에서 반사된 붉은빛에 물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이 마음을 씻듯 살살,
꼼꼼히 그림 그리듯 때 미세요
발 삐었는지, 어깨가 뭉쳤는지
심리상태를 생각하면서 하면
다음에 또 찾아오게 돼있어요”
“사무직원들 때는 하얗지
기름밥 먹는 이들은 까맣고
고기 많이 먹는 몸 잘 밀리고
채식하는 몸은 잘 안 밀려
허벅지 뒷부분이 때가 많고”
첫날,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 가버린 사건 원장 박씨도 그들처럼 옷을 벗었다. 바가지로 자신의 몸에 물을 끼얹은 박씨는 노란색 때타월을 손에 끼었다.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세신 시범의 시작이었다. “힘으로 하다 보면 지쳐서 몇 명 감당하지 못해요. 몸이 가야 해요. 자, 허리를 딱 펴고요. (옆으로 누운 수강생의 가슴에서 배 방향으로 때를 밀며) 가고 가고, 반대로 가고 가고, (수강생의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때를 밀면서) 손님이 어색하지 않게 손을 놓고 머리 뒤로 돌아. (등 뒤에 선 상태에서) 만약에 배가 나온 사람이다, 그러면 출렁출렁해서 배가 잘 안 밀리잖아. 그러면 수건 깔고 딱 (베드 위로) 올라가. 한 손으로 몸을 딱 잡고 밀어. 쭉~쭉. 쭉~쭉. 한 손을 몸에서 떼지 마세요. 안 그러면 세신이 벌써 끝난 줄 아니까요.” 박씨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수강생들은 어느새 집중하고 있었다. 박씨의 손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몸 구석구석에서 춤을 추듯 미끄러졌다. 손놀림이 빠르지 않은 수강생에게 박씨가 조언했다. “몸의 굴곡대로 따라 미는 게 중요해요. 내가 원하는 사람만 손님으로 오는 건 아니에요. 장관 부인도 오고, 낼모레 돌아가실 분도 와요. 내가 끌고 가야지, 수줍게 말하면 안돼요. ‘뒤로 도세요. 옆으로 하세요’ 당당하게 말하세요. 내가 몸을 가지고 있잖아.” 몸을 가졌다면 마음도 가진 것과 같다는 말처럼 들렸다. 수강생 한 명이 조금 늦게 도착했다. 짝을 맞추려면 실습용 몸이 또 필요했다. 원장 박씨를 비롯해 교육실에 모여 있던 수강생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어쩔 수 없이 옷을 벗은 채 비어 있던 평상 위에 누워야 했다. 지각한 수강생 김선미(가명·56)씨는 7년 전 2년 동안 서울 논현동에서 때를 밀어본 경력 목욕관리사다. 사고로 건강이 나빠진 남편 대신 이 일을 하며 치매가 온 시어머니를 모셨다. 자식들 모두 번듯하게 자란 지금은 남은 인생 동안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협회를 찾았다. 주말에는 외국인이 많이 오는 이태원으로 아르바이트를 갈 예정이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식 세신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유행이다. 김씨의 손길이 몸에 닿자 취재하느라 긴장하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김씨는 자신(들)을 ‘이모’라고 지칭했다. “이모들이 마음이 편해야 손님도 편해. 나도 처음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냐. 나라도 일을 해야 했으니까 목욕탕 주인한테서 세신을 배웠지. 근데 첫날에 일이 났어. 날씬한 아가씨였거든. 나도 처음이니까 많이 떨려서 나도 모르게 손의 힘이 셌나 봐. 아가씨가 벌떡 일어나 가버려. 왜 그렇게 아프게 하냐고, 그런 것도 모르냐고. 그래서 나도 속이 상해서 택시 타고 집에 와버렸어. 그래도 우리가 이해해야지 싶어. 다 여기 누우면 공주 대접 받고 싶어하니까.” 오른쪽 다리에서 시작해 몸통까지, 왼쪽 다리에서 시작해 몸통까지 때를 밀었다. 그다음은 양옆으로 눕고 뒤로 누웠다. 일본어로 ‘시아기’라고 부르는 마감질을 시작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다시 한번 다리부터 등까지 때수건이 지나갔다. 슬쩍슬쩍 보이는 김씨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자식도 아닌데 남의 때가 더럽다고 느낀 적 없는지, 때가 많이 나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자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때가 나와야 재밌어. 때가 더럽긴 왜 더러워. 그런 생각 한번도 안 해봤어. 돈이라 생각하면 왜 못 밀어.” 수업을 마치며 원장 박씨는 다시 한번 수강생들에게 강조했다. “살과 살이 밀착되는 건 뭔가 다른 느낌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듯 살살. 흰 도화지에 그림을 꼼꼼히 그리듯이 때를 미세요. 이 손님이 등산하다 발을 삐었는지, 김장하느라 어깨가 뭉쳤는지 심리상태를 생각하면서 하면 다음에 나를 또 찾아오게 돼 있어요. 서비스로 경혈을 눌러주고 주물러주면 더 좋아하겠죠.” 남의 ‘때’는 이들에게 돈이다. “뭐긴 뭐여. 여태 먹고살게 해준 고마운 것이죠, 뭐. 하하하.” 5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만난 30년 경력의 목욕관리사 황재상(가명·60)씨에게도 ‘때’는 먹고살게 해준 고마운 존재였다. 전라남도 바닷가 마을이 고향인 황씨는 젊은 시절 인천에 자리를 잡았다. 장사도 하고 배를 탔다. 30대 초반, 결혼한 뒤에는 배를 탈 수 없었다. 서울 간 동창이 이 일을 소개했다. 지금처럼 전문화된 학원은 없었다. 동네 목욕탕에서 기계 일을 보는 사람이 때도 밀었는데, 그 사람에게 배워서 일을 시작했다. 일하면서 시련도 많았다. 대형 찜질방이 생기면서 동네 목욕탕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1000만~2000만원의 자릿세를 내고 가게를 냈더니 목욕탕이 돈만 받고 문을 닫은 적도 있다. 문신하고 목욕탕에 와서는 으스대는 질이 나쁜 사람들에게 해코지도 많이 당했다. “25년 전인가. 어떤 사람이 돈을 안 내고 도망가길래 내가 쫓아가서 잡았어요. 반바지 챙겨 입고 달렸지. 한 300m 달렸을 거야. 잡으니까, 안마를 안 해줘서 그랬대. 아니, 바쁜데 안마까지 해줄 수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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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피부목욕관리사협회에서 세신·경락마사지 등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과 박은혜 원장(오른쪽). 박 원장은 목욕관리사라는 직업에도 전문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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