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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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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연애] 글로벌 연애녀
▶ 유대인 남자에게 “너네 가족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축하해?”라는 질문을 했다가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크리스마스는 성스러운 날이 아니었던 거죠. 반대로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일부러 더 그 나라 문화에 맞춰 개방적인 척을 했다가 바로 차인 적도 있었죠. 그 사람은 보수적이었던 겁니다. 국제 연애에서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마음이 맞는 게 먼저입니다. 목표물이 생기면 더운 콧김을 내뿜으며 돌진하는 한 마리의 야생마처럼, 나는 연애를 해왔다. 남자의 국적과 피부색을 가리지 않았던 나의 지난 ‘연애 역사’를 꿰뚫고 있는 친구들은 나를 가리켜 ‘글로벌 연애전문가’라 부르기도 한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런 ‘오해’에 대한 일종의 변명이다. 그들에게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며 어쩌면 무모하게 보였을지 모를, 내 연애의 속살에 관한 이야기다. 10년 전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쉬지 않고, 신나게 연애를 시작했다. 나의 첫 남자친구는 서울 토박이였다. 웃는 모습이 선해서 좋았다. 취미도 비슷했고, 성격도 착해 남자친구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첫 이별은 내가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며 찾아왔다. 장거리 연애를 감당하기에는 우리 두 사람 모두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미국 뉴욕에서 만난 두살 연하의 남자친구는 미국 드라마에서나 봤던 유대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스스로 대마초를 팔아 학비를 댈 만큼 씩씩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남자였다. 그와의 이별은 한국 귀국과 함께 찾아왔으니, 역시 태평양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는 서로에게 부담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어쩌다 보니’(일부러 의도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에는 연상의 영국 남자를 만나게 됐는데, 연애의 무게는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사귀는 동안 무던하기만 했던 그는 대학 졸업과 함께 덴마크로 유학을 떠나야 했던 내 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이별을 알렸고, 그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헤어진 뒤에도 친구로 지냈던 과거 남자친구와 달리 그와의 연락은 매몰차게 끊어버렸다. 덴마크로 건너온 뒤 나는 두명의 남자를 더 만났고, 두번의 이별을 되풀이했다. 나이 많은 남자와의 ‘심각한 연애’에 별 관심이 없던 내게 다가온 친구는 다섯살 어린 프랑스 남자였다. 아, 잠시나마 행복했다. 적어도 그 남자가 내 삶에 좀더 깊숙이 들어오려 하기 전까지 말이다. 내 뜻과 달리 연애가 갑자기 진지해지려고 할 때, 나는 또다시 이별을 통보했다. 프랑스 남자와 헤어진 직후 ‘공교롭게도’ 오스트레일리아 남자를 잠시 만나게 됐는데, 내가 ‘글로벌 연애전문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 계기가 바로 이때였다. “한국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를 거쳐 이제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자라니, 곧 연애로 세계정복하겠어!” 쳇,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는데, 적에도 내게 연애란 곧 즐거움이었다. ‘즐거움이 갑’이라는 나의 연애관은 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하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자가 나를 떠났던 결정적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내가 심각한 연애를 멀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평생 함께할 여자를 찾겠다”며 나를 떠났던 것이다. 평생을 함께할 관계, 과연 그게 가능한지 나는 지금도 회의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친구들에게 “6개월간 아무도 만나지 않겠어”라고 선언한 이유도 내 연애관을 한번쯤 돌아보고자 하는 목적이었다. 물론 한국과 미국, 유럽을 오가며 지치고 지친 내 연애세포에 휴가를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한국·미국·영국·프랑스 거쳐오스트레일리아 남자까지…
이러다가 세계정복할 것 같아
연애생활에 휴가 선언했지만… ‘동거 계약서’까지 쓰면서
현재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차북남(차가운 북유럽 남자)
과거 남자들과 전혀 다른 인류
평생을 약속하진 않았지만
오늘도 우리는 행복하다 그 뒤 연애는 좀 달라졌던가. 음, 잘 모르겠다. 연애 중단 선언 2~3주쯤 지났을 무렵의 어느 날, 나는 파티에서 덴마크 남자 ㅅ을 만났다. 쿨한 남자였다. ‘차가운 북유럽 남자’(나는 그들을 차북남이라고 부른다)인 그는 잠시나마 잠자고 있던 내 연애세포를 섬세하게 자극했다. 나는 연애 중단 선언도 까맣게 잊은 채 열정적 사랑을 꿈꾸며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 결코 ‘쉬운 남자’가 아니었다. 차북남에 대해 잘 모르는 여성을 위해 그들의 특징을 조금 소개한다. 첫째, 그들은 자신이 남자라고 여자에게 먼저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다. 클럽이나 펍에서도 먼저 말 걸어주는 남자는 없다. 둘째,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여자를 위해 문을 열어주거나 가방을 대신 들어주지 않는다. 물론 계산은 ‘더치페이’다. 셋째, 독립적인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내 것은 내 것, 네 것은 네 것’이라는 사고가 체질화돼 있다. 넷째, 성과 연애에 개방적인 동시에 육아와 가사에는 헌신적이다. 전형적인 차북남 ㅅ은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면, 애정 표현에 익숙했던 내 과거의 남자와는 아예 다른 인류였던 것이다. 처음 ㅅ을 만났을 때, 이 목석같은 남자에게 ‘내가 지금 너 꼬시는 중이거든?’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참 힘들었다. 집에 초대해 저녁식사를 만들어줬고 나란히 앉아 함께 영화를 봤다. 가끔 천연덕스레 “덴마크어로 돼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라며 번역을 부탁하기도 했다. 저녁 초대와 영화관람은 나름의 효과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번역 부탁에 대해서는 ‘구글번역기가 있는데, 얘는 참 독립적이지 못하군!’이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아, 이런 매력적인 차북남이라니. 차북남과의 연애는 만난 지 5년째인 지금도 진행중이다. 나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ㅅ은 여전히 내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주고 있다. 살림을 합치며 우리가 쓴 ‘동거 계약서’에는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평생을 상대방에게 바친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아니라, 헤어질 경우 함께 장만한 살림을 어떻게 나눌지 그 기준과 원칙을 담았다. 덴마크 남자 ㅅ과 내가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즐거움이 갑’이라는 내 연애관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그리 심각하지도 않은 한 남자와의 연애를 충분히 즐기고 있다. 글로벌 연애전문가? 그런 게 어딨나. 사람 보고 만나지, 어디 국적 보고 만나나. 21세기 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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