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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13 19:39 수정 : 2013.09.24 17:10

[토요판/연애] 가치관 다른 남녀

▶ 애인님은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런 존재에게 뭐든 털어놓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요. 그게 친구 뒷담화든 열렬히 지지하는 정당이든 뭐가 되든 말이죠. 그런데 ‘무조건 든든한 내 편’일 줄 알았던 사람이 공감해주지 않을 때면 남보다 더 밉고 야속해집니다.

그와 나는 죽이 잘 맞았다. 눈치가 빠르고 영민해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고, 까칠한 내가 날카로운 말을 해도 상냥하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여느 경상도 사내와 달리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그를 보며 ‘연애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몇달을 행복하게 지내던 그와 내가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싸운 것은 바로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때였다. 봄볕이 따사롭던 어느 주말,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아이스커피 속 얼음을 물고 그에게 물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진지한 토론을 해보겠다는 생각은 결코 아니었고, 그냥 가벼운 대화 소재로 던진 것이었다. 그렇다. 사실 난 그의 평소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로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던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야,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북한 놈들이 어뢰 쏜 거 아냐~!”

그는 국방부 주장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의 오기가 생겼다. 국방부 발표의 허점을 지적하며 프로펠러가 어쨌네, 스크래치 자국이 어쨌네, ‘1번’이 어쨌네 하는 얘기를 꺼내자 늘 따뜻하던 그의 눈빛에 냉기가 돌았다. 그는 하던 게임을 멈춘 채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듯 내 양팔을 붙잡고 말했다.

“애인, 잘 들어. 북한 말고는 그런 일을 벌일 곳이 없어. 우리나라의 주적이 어디야? 북한이지?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 우리 애인 군대 갔다 왔어? 난 ××사단 육군 병장 만기 제대야. 군대 안 갔다 왔으면 모르는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얘기 꺼내지 마.”

내가 조금 더 반박하고 나섰으면 손이라도 올라갈 기세였다. 한참을 가르치듯 얘기한 그는 갑자기 뭔가 짜증스럽다는 듯 물었다. “애인, 근데 연인 사이에 이런 얘기가 왜 필요해?” 나는 반문했다. “왜? 연인 사이니까 당연히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가 말했다. “원래 정치랑 종교 얘기는 가족끼리도 하는 거 아니야~ 무조건 싸움 나거든.”

어라? 이상하다. 우리 가족은 밥상머리에서 정치랑 종교 얘기를 제일 많이 하는데. 우리 관계가 나중에 삐거덕거리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가치관의 차이’라는 단어를 온몸으로 느낀 것도 바로 그때다.

비슷한 일은 그해 5월 말에도 일어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대대적인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나도 그 군중과 함께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싶었다. 뚜렷한 정치색도 확고한 정치적 이념도 없던 나는 노 전 대통령에게는 이상하게도 정이 갔다. 행사가 열리기 몇주 전부터 그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는 의외로 쉽게 승낙했다. 그는 그런 ‘풍경’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온 ‘풍경’이란 단어에 생경함을 느꼈다. 흡사 곱게 자란 금발의 왕자님이 ‘거지’라는 단어를 난생처음으로 입에 올리는 것 같은 낯섦이 느껴졌다.

“천안함 사건 어떻게 생각해?”
당연히 ‘북한 놈’ 짓 확신하는
그에게 국방부 발표 허점 말하니
“우리나라의 주적이 어디야?
우리 애인 군대 갔다 왔어?”

무조건 나만 맞고 그는 틀리랴
하지만 우리는 너무 달랐고
그 차이를 참아낼 수 없었다
가끔 그립지만 후회는 안 한다

추모문화제가 열린 당일, 그와 나는 버스와 지하철을 몇차례 갈아타고 서울광장에 갔다. 수만명의 인파가 노 전 대통령의 동영상을 보며 그를 그리워하고 눈물을 훔쳤다. 나는 잔디에 털썩 앉아 자진해서 음악회를 여는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고 그는 내 옆에 섰다. 그는 멀뚱한 표정으로 이 인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그 혼자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 것 같았다. 문화제가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이제 됐어?”

그 말은 아직까지 내게 상처로 남아 있다. 내 일정에 동행해준 그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잠시 의문도 들었다.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의 기억이 나에게 무척 선명했던 모양이다.

다음 사건은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에서 비롯했다. 그와 함께 영화관을 찾았다. 나는 영화에 완전히 몰입했다. 더이상 흉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스크린을 응시하던 찰나, 옆자리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그의 휴대전화 액정 불빛이었다. 그는 영국 프리미어축구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고 있었다. “쩌억~” 형용하자면 이런 소리가 날 것같이 입을 크게 벌려 하품도 했다. 하품하는 그 입에 휴대전화를 그대로 밀어넣고 싶었다. 남들이 모두 미간을 찌푸리거나 눈물을 흘리며 영화를 보고 있는데 혼자 하품이나 하며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축구경기를 보고 있다니.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 공간에서는 스크린을 봐주는 것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그리고 옆에 앉은 관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조용히 손으로 그의 휴대전화 액정을 가렸다. 캄캄한 극장 안에서도 이 사람이 정녕 내 인연이 맞을까 하는 고민은 점점 커졌다.

몇달 뒤 그와 나는 이별했다. 돌이켜보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무조건 맞고 그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와 나는 사고가, 가치관이, 감정선이 달랐을 뿐이다. 이별을 통보한 것은 나이기에 그때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립다. 사랑에 푹 빠졌던 그때의 내가 그립고, 그런 감정선만 건드리지 않으면 한없이 따사로웠던 그때의 그도 그립다. 하지만 이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너무 달랐고 내가 그 차이를 참지 못했으니까.

얼마 전 추석을 앞두고 집안일을 상의하느라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사촌오빠를 만났다. 오빠가 해준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오빠는 오랜 시간 사귄 새언니와 2년 전 결혼했다. “결혼할 사람 고르려면 가치관이 너무 다르면 안 돼. 그게 정치적 성향이든 삶에 대한 태도든 자녀 교육관이든 뭐라도 같은 게 있어야 해. 하다못해 응원하는 야구팀이라도 같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백발백중 텔레비전 보다가 싸운다 너. 내가 주변 사람들 보니까 만날 티브이 보면서 티격태격하다가 나중에는 체념해서 서로 말없이 티브이만 보게 된다더라. 그렇게 대화 없는 ‘무언(無言)가족’ 되는 거 순식간이다 너. 그러니까 그때 그 녀석이랑 헤어진 건 잘한 거야. 괜히 가을 탄다는 핑계로 이별 노래 들으면서 옛날 생각 하지 마라.”

정치 얘기 좋아하는 30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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