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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01 19:38 수정 : 2013.11.15 16:06

[토요판/연애] 고3의 연애통, 그 후

▶ ‘수능이 끝나고 나면 나랑 만나줬으면 해’(<한겨레> 10월19일치 17면) 기사가 나간 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메일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도 고3인데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식으로 시작하는 메일에는 저마다의 설렘, 아픔, 행복, 갈등이 가득했습니다. “괜찮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겐 위로를 전하고, 다른 이들에겐 이해를 구하며 메일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한 시인이 말했습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도 생각합니다. ‘고3이라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고3 연애’를 검색하면 ‘고3 때 연애하면 미친 건가요?’ ‘고3 연애, 헤어져야 하는 거죠?’ 같은 제목의 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남자·여자·고3’으로 나눠지는 대한민국 입시지옥에 살고 있다지만 그들이 외로움을, 사랑을 모를까요….

ㄱ양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독한 첫사랑 때문에 ‘고3, 공부보다 더 큰 대미지’를 받아 아파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단순히 소개팅 사이트에서 만나서 카카오톡에만 있던 사람이었는데 심심해서 연락하게 된 게 어느새 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저희는 흔히 말하는 ‘썸남 썸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외국에 유학 가 있는 상태였고 수능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다더군요. 서로가 서로를 기다려주었습니다. 정말 많은 대화와 공감과 신뢰로 정신적인 무언가를 쌓아갔습니다.”

수능 D-20일에 남친 생겼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복잡한 고3입니다 

엄마 말대로 살고 싶지만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고
몇백번이나 마음먹었지만…

카톡을 보내고 그 대답을 기다리는 달콤한 순간들은 고3 생활의 한줄기 빛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ㄱ양은 상대방으로부터 이유 없이 ‘차단’되었습니다. “차단이라는 건 변명할 수 없는 완벽한 차임이기에 버려졌구나 하는 생각에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습니다.” 괴로움에 ㄱ양은 자기합리화라는 퇴로를 만들었습니다. “내 수능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라고…. 분명 수능 끝나고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 무너져 버릴 것 같네요.”

ㄴ군에게도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수능 따위가 아닙니다.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남자친구가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수능만 끝나 봐라, 바로 번호 따서 고백해야지’라고 계속 생각했죠. 그런데! 수능 D-20일에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페이스북 정보에 연애중이라고 적혀 있는 겁니다. 진짜 완전 하…. 그 실망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수능 전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마음을 정리할까. 그래도 고백이라도 해볼까 계속 그 생각뿐이네요. 정말 복잡한 고3입니다.”

물론 고3보다 더 오래 산 어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겁니다. 사랑은 한때지만 대학은 영원하니 조금만 더 참는 게 현명하다고요. 부모님도 선생님도 어쩌면 자기 자신도 공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고3 연애 고민을 담은 메일의 화두는 ‘연애냐 공부냐, 그것이 문제로다’였죠. ㄷ군도 올해 4월 이과로 전학 온 여학생에게 반해 한달 전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고백을 했습니다. 결과는 뻔했죠ㅎㅎ. 차였습니다. 아니, 차인 게 아니라 보류됐다고 할까요. 그녀는 제가 싫은 건 아닌데 자기는 이런 시기에 맘 놓고 남자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수능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얘기했습니다.” 싫은 건 아니지만 수능을 위해 연애도, 마음도 보류됐습니다.

하지만 ㄹ군은 그 보류라는 게 답답합니다.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데 왜 난 다가갈 수 없는 압박을 받고 살아가야 하나요. 미래를 위해 참아야 한다면, 언제나 미래는 현재가 돼가는데 왜 현재의 마음을 억눌러야 할까요? 엄마는 내가 인생을 멋있게 살길 바라고 저도 그렇게 살고 싶은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몇백번이나 마음먹어도 포기는 절대 안 됩니다.” ㄹ군은 ‘그녀’와 ‘대학’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혼란스럽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수능도 수능이지만 기본적으로 ‘10대의 연애’를 우리 사회는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처벌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교육부 등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국 고등학교 2322곳 중 절반(1190개교·51.2%)엔 이성교제 관련 교칙이 있습니다. 퇴학, 정학, 특별교육, 교내봉사 등의 처벌 규정도 있습니다. 이 규정으로 처벌받은 전국 고등학생 수는 2009년 224명에서 지난해 349명으로 늘었습니다. 처벌받은 이유는 학교 안에서의 과도한 신체 접촉 등과 같은 ‘부적절한 이성교제’입니다. 학칙에서 말하는 ‘불건전한 이성교제 등으로 인한 풍기 문란, 학교 명예 훼손’은 무엇일까요? 10대 연애라면 금기시하는데, ‘건전한 연애’를 배우고 토론할 공간이 이들에게 있었을까요?

조영선 경인고 교사는 “욕망은 억제한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고3 내내 밥만 먹고 공부할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의 1년은 공부하다 좌절하다 놀다가 또 공부하는 출렁거리는 삶의 연속이죠. 이럴 때 오히려 안정적인 커플은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반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설레는 시작 단계는 리스크가 있죠.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제어가 되겠어요? 실현되지 않은 욕망은 늘 그대로 남아 있어요. 억제한다고 풀리지 않아요.” 그래서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사랑과 공부 사이에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져 보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사랑이 꼭 독이 되는 건 아닙니다. ㅁ군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당해온 왕따에서 벗어나기 위해 ㅁ군은 고등학교 입학 뒤 삐뚤어졌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동급생이 생겼고 ‘꼴통 남친’ 두었다는 소리를 듣게 하지 않으려고 공부를 시작했죠. 그와 헤어지고 폐인이 되었지만 “슬픔을 잊을 만한 걸 찾아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공부에 더 매진했습니다. 이미 수시모집에서 우선선발된 ㅁ군은 그와의 기억을 따뜻한 추억으로 생각합니다. “덕분에 행복을 배울 수 있었다”면서요. 좋은 성적보다는 사랑이 누군가에겐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요?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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